극우 주장 ‘Ctrl+C→Ctrl+V’ 검찰 복붙 사상검증 논란…애타는 제주4.3 유족

검찰, 총리 산하 기관 심의 거쳐 4.3 희생자 결정 김민학·문옥주·이양도·임원전 문제제기

2022-09-04     이동건 기자
올해 7월26일 사상검증 논란 재심 사건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 김 위원 뒤로 검찰이 문제를 제기한 4.3 피해자 4명에 대한 자료가 보이며,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빨간 밑줄) 자료가 첨부돼 있다.

[기사보강 4일 오후 5시] 제주4.3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과정에서 검찰이 사상검증을 제기하는 바람에 재심 개시 등 절차가 늦어지면서 희생자 유족들을 애태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구된 고(故) 김영창 등 68명에 대한 재심 사건이 제주지방법원 형사4-1부 심리로 진행된 두 차례 심문기일(올해 7월12일, 7월26일)을 끝으로 40일 넘게 지났지만, 개시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당 사건에서 검찰이 재심 청구인 68명 중 4명에 대해 ‘사상검증’ 문제를 제기하면서 재심 개시가 늦어지고 있다.  

4명은 故 김민학(1922년생), 故 문옥주(1919년생), 故 이양도(1927년생), 故 임원전(1920년생)이다. 이들은 모두 국무총리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미 4.3 희생자로 결정된 피해자들이다. 

 극우 단체 4.3 폄훼 자료 Ctrl+C(복사), Ctrl+V(붙여넣기)한 검찰

검찰은 김민학에 대해 남로당 핵심 간부이자 월북 후 남파 간첩으로 활동했고, 문옥주는 형무 수감 중 월북해 사회주의 활동을 하다 중국으로 탈출한 인물로 주장했다.

또 이양도는 남로당 북촌리 조직부장으로 경찰 후원회장을 살해한 인물로, 임원전은 한림읍 대림리 폭도대장을 역임한 인물로 봤다. 

검찰은 극우단체인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의의 4.3 당시 남로당 간부 명단과 모 언론의 ‘제주 4.3 공원 내에 있어서는 안 될 4.3 폭동 주모자들의 위패’ 기사, ‘4,3의 진정한 희생자는!’ 책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들은 보수 성향 단체로 분류되며,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는 이명박 정권 당시 박승춘 전 보훈처장이 만든 단체다. 박 전 보훈처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6년 동안 보훈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 전 처장은 재임 당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해 논란을 자초한 바 있으며,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는 안보 교육과 강연 등을 명분으로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공개 비판하는 활동을 했다. 

심지어 국가정보원이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운영 자금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박 전 처장은 국정원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4.3의 진정한 희생자는’ 책자는 제주4.3을 언급하는 극우 성향의 단체가 발간했다. 이들 단체는 제주4.3 평화공원에 불량 위패가 있다며 공원 야외에서 집회를 열고 모형 위패에 불을 붙이는 등의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2014년 3월20일 극우성향의 자칭 '4.3사건바로잡기대책회의' 소속 100여명은 제주4.3평화공원 앞에서 ‘제주 4.3추념일은 폭동의 날 추념일’이라며 희생자 위패 모형을 만들어 불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까지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4.3 공원 내에 있어서는 안 될 4.3 폭동 주모자들의 위패’ 기사에서 해당 언론의 편집자주는 다음과 같다. 

이 자료는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에서 104명의 문제가 있는 위패를 추적하여 문제의 이유를 밝혀낸 것을 발췌한 것이다. 각종 자료와 증언을 통해 드러난 바로는 제주4.3평화공원의 불량위패는 최대 수 천여 기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제주4.3정립연구․유족회에서 자료조사와 채증을 통하여 수집한 불량위패 명단은 90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제주 4.3 공원 내에 있어서는 안 될 4.3 폭동 주모자들의 위패’ 기사는 극우 성향의 단체의 주장을 그대로 담았다고 볼 수 있다.

4.3을 폄훼해온 극우성향 단체의 자료를 검찰이 그대로 '복붙(복사+붙여넣기)'하며 4.3 희생자에 대한 검증 자료로 이용된 상황이다. 

 검찰 주장 조목조목 반박한 4.3 전문가

극우단체의 주장을 내세운 검찰의 김민학과 문옥주, 이양도, 임원전에 대한 활동 이력 전제 자체가 틀렸다.  

월북한 뒤 남파 간첩으로 활동했다는 김민학의 경우 제주에서 평범하게 살다가 생사를 달리했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김민학은 조용히 농사만 지었으며, 희생자 결정 과정에서 국정원과 경찰 등에 사실조회 요청까지 했지만, 간첩이라는 근거가 없다고 답변했다. 

월북해 사회주의 활동하다 중국으로 탈출했다는 문옥주는 일본에서 살았다.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이념의 굴레에 또 빠질 수 있다는 걱정에 일본에서 평생 고향 제주를 그리워하다 숨을 거뒀다.

임원전을 기억하는 지역 주민 대부분은 ‘훌륭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지역사회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주경야독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보탬이 된 인물이다. 

임원전이 남로당 활동 이력에 문제가 있었다면 군경 토벌대에 대규모 학살을 당한 한림읍 주민들은 학살의 원인이 된 임원전을 원망해야 하지만, 토벌대를 원망하고 있다. 

이양도의 경우 관련된 기록이나 증언이 많지 않지만, 임원전과 비슷한 사례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올해 7월26일 사상검증 논란의 4.3 재심 사건 증인으로 출석한 김종민 4.3중앙위원회 위원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하면서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당시 김 위원은 “신빙성 없는 자료에 언급된 수괴급 인물 등은 저자의 자의적인 생각이 많이 포함됐다”며 “어떤 한 사람의 주장이 곧 사실이 되지 않는다. 각종 문헌과 여러 사람의 진술을 종합해야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에 대한 문제제기의 기본적인 팩트 자체가 틀렸다. 틀린 팩트로 이들을 검증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민족 대명절 추석 앞둬 유족 눈물 닦아줄까

일부 극우 세력의 주장을 되풀이한 검찰의 사상검증으로 재심 개시가 늦어지면서 유족들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당시 제주도민의 1/10 가량이 목숨을 잃은 4.3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컸던 사건이다. 한 지역에서의 집단 학살 규모로는 전무후무한 우리나라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다. 

이념의 굴레 속에서 4.3 당시 목숨을 잃은 군인과 경찰 등은 대부분 순직으로 처리돼 명예를 지켜 왔다. 사실상 재심 절차는 군경 토벌대에 의해 희생당한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절차다.

4.3과 관련된 문서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징역형을 산 피해자들의 판결문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례가 허다하다. 

생존자들의 증언이 중요한데,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기억의 오류가 많다. 김종민 위원이 단 한 사람의 주장이 사실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 이유다. 

4.3 피해자에 대한 생존자들의 기억이 조금씩 다른데, 증언 속에 공통적으로 포함된 정보를 사실로 인정해야 한다. 

현재 검찰은 극우단체 등의 극소수 주장을 들이밀어 지역주민들로부터 인정받던 당시의 청년 지식인들에 대해 무리한 사상 검증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사상검증 논란의 재심 사건은 올해 7월 마지막 심문을 끝으로 40일 넘게 지났음에도 재심 개시 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재심 사건에서는 ‘개시’ 결정은 매우 중요하다. 재판부가 재심을 통해 사건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건에 대해서 ‘개시’ 결정이 이뤄진다. 

검찰이 문제를 제기한 4명을 포함해 68명 전원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 재판부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으로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줄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