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대 마을목장 생태적 가치 끝까지 지켜낼 것” 미래세대가 주인
[공동기획-탐나는가치 맵핑(1)] 마을공동목장 ㉓/ 제주시 평대공동목장 갈수록 줄어드는 축산계원, 임대 사용중인 목장용지 매입·운영방안 고민
“제주 땅값은 계속 오르다 보니 임대료도 만만찮다. 공시지가는 계속 오를텐데, 그래도 미래 세대에게 마을의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옛 마을목장 모습 그대로를 최대한 지켜야 한다”
제주 동쪽 구좌읍 평대리 주민들의 큰 고민 중 하나는 옛 마을목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평대공동목장 부지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할지다. 마을 축산계를 중심으로 운영 중인 마을목장의 운영 주체를 마을회가 직접 맡을지, 현재 임대 사용 중인 마을목장 부지를 추후 취득할는지 등 여러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환경적, 생태적 가치가 무궁무진한 마을목장을 난개발로부터 지켜내 미래세대에 전해줘야 한다는데 마을주민들의 뜻이 똘똘 뭉쳐있다.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와 [제주의소리]가 함께하는 ‘탐나는가치 맵핑(mapping)’ 마을공동목장 도민체험단이 지난 15일 구좌읍 평대리 평대마을목장을 찾았다.
이날 탐방은 고홍기(55) 평대리장과 김홍관(59) 평대리 축산계장의 안내를 통해 오전 10시부터 마을목장 일원에서 진행됐다.
평대리 마을은 동동과 중동, 서동으로 나뉜다. 과거 목축문화가 성행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동동 주민들은 평대공동목장과 멀어 하도리나 세화리에 있는 목장을 이용하기도 했고, 중동과 서동 주민들을 중심으로 돗오름(돝오름) 일대(약 16.5ha)와 대머들 일대(약 16.9ha)에서 소와 말을 방목했다.
현재 평대공동목장은 속칭 '대머들' 일대를 뜻하며, 평대 주민들은 재단법인 고양부삼성사재단 소유의 부지와 공유지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도내 다른 마을공동목장들의 경우 마을이나 주민조합 소유의 공동목장부지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평대리 마을목장은 고양부재단 소유의 부지를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것.
평대공동목장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는 제주 전체적으로 마을공동목장조합이 집중적으로 설립되던 시기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주민들의 평대공동목장 이용이 활발했다. 마을 전체 350여가구 중 축산계원만 60여가구에 이르렀고, 가구마다 소 4~5마리를 키웠다. 축산계가 아닌 가구도 농경을 위해 필수적으로 소를 키웠던 당시를 생각하면 1000여마리의 소들이 떼 지어 움직였다.
고홍기 평대리장과 김홍관 축산계장도 어린 시절 대머들에서 풀을 뜯어먹고 무리지어 마을로 돌아가던 소떼의 모습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 농촌에 경운기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소(牛)’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밭을 갈거나 무거운 짐을 날랐던 소는 각 가정의 소중한 자산이었지만, 경운기가 소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대부분 식용으로 생산되고 있다.
나라마다 소고기에 대한 인식이 다른데, 우리나라는 마블링(marbling)이라고 불리는 육질 사이에 박힌 지방질인 근내지방이 있는 고기를 선호하는 사람이 많다.
마블링을 위해 우리나라의 식용소 대부분은 축사에 갇혀 잘 움직이지도 못하며 자라고 있다. 소와 말이 목장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면서 풀을 뜯어먹으면 근육량이 많아 마블링이 적다는 인식으로, 전국의 목장 부지가 사라진 계기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
제주 역시 마찬가지며, 평대리도 바뀐 산업환경에 따라 조금씩 축산계원 감소를 체감하고 있다.
고홍기 평대리장은 “어릴 때부터 마을 어르신들이 '비자림과 평대공동목장은 마을의 귀중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비자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더 이상 마을이 개입할 수 없게 됐고, 평대공동목장은 고양부삼성사재단으로부터 임대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전에도 주민들이 고양부재단에서 평대공동목장 부지를 매입하려 했지만, 당시엔 마을내 여러 절차 등 문제로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의 땅값이 계속 오르면서 지금은 매입도 쉽지 않고 갈수록 목장 임대료도 오르고 있어 고민이 많다”고 덧붙였다.
평대리 축산계는 초창기 마을목장 임대를 위해 종잣돈을 모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후손 중 일부는 다른 지역으로 떠났지만, 고향에 남아있는 후손들을 중심으로 축산계원 자격을 승계해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아직까지 평대리의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은 평대공동목장이 유일하다고 말한다.
주민들은 마을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건물을 짓는 사람들에게 마을 경관을 위해 건물 높이를 다소 낮추도록 권유해 함께해 왔지만, 사적 재산이 중요해진 요즘에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실제로 평대리의 해안가에 이미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어 평대공동목장은 평대 주민들에게 마지막이자 유일한 옛 추억의 장소다.
고홍기 이장은 “각 가정의 주요 재산이었던 소가 이제는 대부분 식용으로 쓰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블링을 좋아해 좁은 축사에 가둬놓고 키우는 소가 대부분인데, 원래의 모습이 잊히면 안된다. 목장을 뛰어다니는 소와 말들의 풍광은 제주의 경관 가치와도 연관됐다”고 강조했다.
김홍관 축산계장도 “목장에서 자유롭게 크는 소들이 계속 송아지를 낳고, 송아지가 좀 자라면 계속 키울지, 식용으로 키울지를 농가가 판단하도록 하는 등 제주의 목축 문화를 이어갈 정책이 필요하다. 물론 목장 부지가 충분히 확보돼야만 가능한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평대 주민들은 “마을목장도 지속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유명무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환경의 변화와 농업의 기계화로 마소 방목문화가 사라지니 초지는 자연스럽게 잡목과 풀들이 우거져 목장의 기능을 점점 상실하고 있다. 평대 주민들이 마을목장 활용방안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이유다.
끝으로 고홍기 평대리장이 탐나는가치맵핑 마을목장 프로젝트 참가자들에게 단언했다.
“지금 평대마을목장은 고양부재단과 평대리 축산계가 임대 계약을 체결해 있는 상태다. 평대공동목장을 옛 모습 그대로 매입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7~8년전부터 마을회가 함께 고민하고 있다. 갈수록 축산계원이 줄어들고 있는데, 마을의 목장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생태적, 환경적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현재의 옛 모습을 난개발로부터 그대로 지켜내고 미래 세대에 물려주는 방안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우리 세대에서 평대공동목장 부지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일은 단연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