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국가폭력 첫 보상, 역사적 순간 앞에 왜 유감 쏟아져야했나
[초점] 4.3후유장애인 보상금 '차등지급' 논란, 심의 연기에도 1구간 17%뿐
제주4.3희생자와 유가족의 오랜 염원인 국가폭력에 의한 보상금 첫 지급이 확정되는 역사적 순간 앞에서도 제주사회는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70여년의 고통을 감내해 온 4.3후유장애인에 대한 보상금이 차등 적용된 데 대해서는 일제히 아쉬움 내지는 유감을 토로하고 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 산하 보상심의분과위원회(위원장 김종민)는 27일 오후 2시 제주도청 2층 회의실에서 회의를 가졌다. 이날 심의에는 분과위 위원장을 맡은 김종민 전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을 비롯해 양조훈 전 4.3평화재단 이사장, 정연순 변호사, 허영선 4.3연구소장, 현덕규 변호사 등 5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위원회는 이날 1차 보상금을 신청한 304명 중 먼저 지급을 신청한 220명과 후유장애자 77명, 생존수형인 3명 등 300명에 대해 총 252억5000만원의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이미 9000만원 이상의 4.3사건 관련 국가 보상을 받았거나 국가 유공자로 결정된 희생자 4명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만, 심의 과정에서 불거진 후유장애 희생자에 대한 차등지급 논란은 4.3특별법의 평등성과 보편성을 위배한 결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 구속력 없는 '장해등급'에 목 멘 심의...최대 보상금 지급 후유장애인 13명 뿐
정부는 4.3특별법 제16조 보상금 지급기준에 따라 사망자나 행방불명자에게는 보상금 최대치인 9000만원을 지급하고, 그외 후유장애인에 대해서는 장해(障害) 등급, 노동력 상실률 등을 고려해 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사망 또는 행방불명 희생자에 대한 9000만원의 보상금 지급 결정은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사안이다. 법 조문으로 명시된만큼 굳이 심의위원회의 결정이 없어도 이들에게는 최대 금액의 보상이 이뤄지게 된다.
의견이 엇갈린 것은 후유장애인에 대한 보상 기준이었다. 심의에 오른 후유장애인은 77명이다. 이날 심의 결과는 지난 7월 희생자로 인정받아 추후 추가 심의를 받게되는 후유장애인 17명의 심사 결과에도 반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4.3특별법 시행령에 따르면 후유장애 희생자는 14개인 장해등급을 3개 구간으로 구분해 1구간(제1~3등급)은 9000만원, 2구간(제4~8등급)은 7500만원, 3구간(제9~14등급)은 5000만원을 상한으로 뒀다.
4.3특별법은 후유장애인에 대해 '장해등급, 노동력 상실률 등을 고려해 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명시했다. 즉, 장해등급은 고려사항 중 하나일 뿐, 구속력을 지니지 않는다는 의미다. 장해등급만으로 보상급 지급기준을 정한다면 굳이 분과위를 열어 심의를 거칠 이유도 없다.
지난 9월 열렸던 심의가 한 달 가량 미뤄졌던 것 역시 후유장애인 심사 대상자들의 피해 사실을 보다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분과위는 후유장애인 개개인에 대한 추가 조사와 사진 등이 첨부된 보고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했다. 가령 '좌측 대퇴부 중상'이라는 식의 텍스트 만으로는 판단을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최종 심의 결과, 심사 대상이었던 후유장애자 77명 중 최대 보상금인 9000만원을 지급받는 1구간 희생자는 13명(17%)에 그쳤다. 7500만원이 지급되는 2구간 희생자는 41명(53%), 5000만원이 지급되는 3구간 희생자는 23명(30%)으로 결정됐다.
최대 보상금을 지급하는 1구간 희생자가 전체 17%에 그친 것에 대해 이날 회의에 참여한 위원 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다. 법으로 정한 장해등급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과 70여년 전 피해일 뿐더러 희생자의 대부분이 유년 시절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보다 완화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혔다.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다수결에 의해 지급기준이 결정되면서 1구간 희생자의 수가 줄었다. 짙은 아쉬움을 넘어 유감이 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 제주사회 "환영" 뒤 "유감"..."차등지급, 인간존엄 평등성에 반해"
실제 4.3을 둘러싼 제주사회는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4.3보상금 첫 지급 결정이 발표된 직후 쏟아진 주요 기관 및 관련 단체들의 입장은 대부분 결이 같다. 4.3명예회복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환영의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후유장애 희생자에 대한 차등지급 논란에 있어서는 유감을 표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4.3희생자 국가 보상금 지급 대상자 확정을 환영한다"면서도 "그러나 생존희생자에 대한 보상이 4.3 당시 시대적 상황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의견을 덧붙였다.
제주4.3유족회도 "국가보상금 지급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하며,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 헌신하고 있는 각계각층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며 "다만 심의 과정에서 불거진 후유장애 희생자에 대한 차등지급 논란에 대해서는 우려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 4․3특별법의 보상에 관한 내용에는 인간 존엄의 평등성과 보편성을 반영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기에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차등지급은 이러한 근본취지를 역행하는 것"이라고 보다 신랄한 평가를 내렸다.
제주4.3연구소, 제주민예총, 제주통일청년회,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공동 논평을 통해 "보상금심의분과의 결정으로 오는 11월 4.3 희생자에 대한 첫 국가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한다"며 "그간 4.3특별법 개정 과정 등을 통해 4.3 국가보상금 지급과 관련해 '선별 보상, 차등 지급'을 반대해왔음에도 심의위에서 후유장애인에 대한 차등지급을 결정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평생을 죽음보다 더 한 고통과 상처를 안고 살아온 후유장애 희생자들에 대한 장애등급을 3구간으로 나눠 차등 지급하기로 결정한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며 "70년 넘는 세월동안 장애인으로 받은 차별과 멸시, 부모의 학살 현장을 목격한 정신적 상처가 어떻게 2, 3구간으로 가볍게 보상될 수 있겠는가"라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정치권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과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갑)은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두면서도 "생존 후유장애자에 대한 보상금 결정이 4․3 당시는 물론 70여년의 세월동안 발생한 정신적인 피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 등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 최종 권한 일임받은 심의위, '재심의' 가능성 배제 못해
이날 심의분과위의 보상금 지급 결정은 4.3중앙위원회의 결정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심의 일정이 밀리면서 올해 편성된 국가보상금이 불용 처리될 상황에 놓이자 4.3중앙위는 분과위에 권한을 일임했다.
이로 인해 추후 대상자를 선별하는 별도의 절차 없이 곧바로 보상금 지급 절차가 이뤄진다. 이날 보상금 지급 결정이 확정된 300명의 희생자에게는 보상급 지급 내역 통지서가 발송되고, 당사자는 30일 이내 제주도청 또는 읍면동으로 보상금 지급을 청구하면 된다.
다만, 제도적으로는 보상금 지급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될 경우 청구권자에 한해 한 달 이내에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구간, 3구간 등으로 분류된 후유장애인 당사자가 재심의를 요구한다면 새롭게 심의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보상금 지급 실무를 맡고 있는 제주도 관계자는 "올해 안에 1차 보상금 신청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목표를 하되, 4.3중앙위의 일정에 맞춰 행정절차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