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전진-후퇴 반복한 4.3, 尹정부 ‘시대 역행’ 우려 스멀스멀
4.3교과서 내용 배제-극우인사 임명...보수정권 '4.3흑역사' 재현 우려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입니다.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지난 4월 3일 당선인 신분으로 후보 시절 약속했던 제주4.3희생자추념식 참석 약속을 지킨 윤석열 대통령은 4.3특별법 개정의 차질없는 후속조치 이행을 통한 '4.3의 완연한 봄'을 약속했다. 보수정당 출신 대통령의 첫 추념식 참석은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제주 7대 과제로 제주4.3 완전한 해결'을 공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기도 전에 제주4.3을 둘러싼 잡음이 잇따르고 있다. 4.3을 후퇴시키려는 정부의 행보가 노골화되며 보수정부의 '4.3홀대 ' 흑역사가 재현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교육부가 '2022 개정교육과정'을 행정예고하면서 학습요소로 포함된 제주4.3사건을 삭제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교육부는 한국사 중 '대한민국 수립과 6.25전쟁'이라는 소주제의 학습요소에는 제주4.3사건이 포함돼 있던 것을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행정예고를 통해 '냉전체제가 한반도 정세에 미친 영향을 파악하고,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을 탐색한다'고 뭉뚱그렸다. 이 행정예고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제주4.3을 교과서에서 반드시 다뤄야할 근거가 사라지게 된다.
제주 지역사회는 전방위적으로 이를 반대하고 있다. 교육계는 물론,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도의회, 제주4.3유족회 등이 일방적으로 수정 고시된 교육과정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제주4.3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지역사회 노력의 결과물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제주4.3을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폭동'이라고 폄훼한 이력을 지닌 우익 인사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도 논란이 인다. 김광동 신임 진실화해위 위원장은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4.3을 '남로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 정치 세력의 반란'으로 규정한 뉴라이트 계열의 대안교과서를 집필한 인사다.
김 위원장은 2011년 6월29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4.3사건 교과서 수록방안 공청회'에서도 4.3을 "남조선로동당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에 의한 폭동"이라고 발언하며 논란을 키웠다. 근현대사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 등의 실체를 규명하는 국가기구인 진실화해위에 우익 인사가 임명되는 것에 대해 지역사회의 반발이 일었지만, 이는 묵살됐다.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에는 4.3을 폄훼해 온 극우 성향의 인사가 위원으로 위촉되면서 논란을 키웠다. 정부는 최근 4.3중앙위원에 김태훈 전 한반도 인권과 평화를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회장을 임명했다.
한변은 그동안 4.3과 관련해 극우적 입장을 고수해 온 단체로, 4.3평화기념관 전시금지 소송 등을 진행하거나, 정부가 채택한 4.3진상조사보고서를 폄훼하기도 했다. 특히 김 위원이 회장으로 있던 지난해 8월에는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식 발언을 문제 삼아 손배소를 제기하는 등 꾸준하게 4.3을 왜곡했다.
4.3은 정부의 정치적 이념·성향에 따라 후퇴와 전진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보수 정권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4.3중앙위원회가 열린 것은 2011년 단 한 차례 뿐이었다. 당시 정부는 4.3진상조사위가 제시한 후속과제를 이행하지 않았다. 4.3중앙위와 국회가 의결한 제주4.3평화공원 3단계 사업비 120억원을 5년간 집행하지 않았고, 4.3희생자 추가 인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4.3특별법 개악이 시도됐고, 제주4.3지원단은 다른 과거사 사례와 묶여 통폐합됐다.
박근혜 정부 4년은 MB정권 보다 그나마 나았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2014년 제주4.3을 국가추념일로 공식 지정했고, 묶여있던 4.3평화공원 3단계 사업 예산을 집행하기도 했다.
다만 국가추념일 지정은 이미 2013년 4.3특별법 개정 당시 부칙으로 명시됐던 내용이고, 4.3평화공원 예산도 더이상 미룰 당위성이 없게된 때라 정치적으로 선택했을 뿐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국가 차원에서 4.3희생자의 재심사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것도 박근혜 정부였다.
보수정권 9년은 정부 차원에서도 4.3홀대가 노골적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비호 아래 민간 차원의 4.3흔들기도 극에 달했다. 4.3을 폄훼하는 소모적인 대립은 4.3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 여겨졌던 윤석열 정부의 4.3에 대한 시각도 우려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진전을 보이고 있는 4.3특별법 개정 후속조치는 사실 문재인 정부 당시 여야 합작으로 이뤄낸 성과였고, 4.3희생자-유족에 대한 보상금 지급 역시 전임 정부에서 결정된 사안을 집행하는 정도에 그친 상황이다.
아직 제주사회 내부에는 보수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적지 않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당장 도민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4.3교육과정 배제' 문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결정이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