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핵 배치” 폭탄 던진 국민의힘...도당은 ‘정쟁거리 전락’ 안간힘
[종합] 국힘 북핵특위 '핵배치' 논의 파문...당 내부서도 특위-도당 해명 엇갈려
여권발 '제주 핵무기 배치' 파문이 지역사회를 들끓게 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정치적 해법을 제시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관련 사안을 정쟁거리로 치부하며 파문 진화에 나섰지만, 오히려 논란을 키우는 양상이다.
논란의 진원지는 지난 26일 열린 국민의힘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위원장 한기호 의원) 회의다. 이 회의에서 다뤄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특위 최종보고 및 건의사항' 문건에는 "북한의 핵공격 임박 시 미국 핵무기의 한반도 전진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국내 핵무기 배치 시에는 제주도가 최적지라는 내용이 따라붙었다. 나머지 지역은 거리가 짧아 북한의 선제공격에 취약하고, 미사일 방어도 곤란하다는 것이 제주를 최적지로 판단한 이유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제주도를 전략도서화하는 검토의 필요성도 포함시켰다.
특히 특위는 제주도에 미국 전략폭격기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 건설 및 핵무기 임시 저장시설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제주 제2공항 건설 시 이를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실제 한기호 위원장은 이날 회의 직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제주도 같은 경우 공항을 새로 만든다고 하면 그 공항이 우리가 전시에 북한 핵을 억제하는데 필요한 대형 수송기가 이착륙이 가능한 정도까지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액면으로만 판단할 시 제주 제2공항을 거점으로 한 군사기지화의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 당 내부서도 엇갈린 해명...특위 "논의됐지만 미채택", 도당 "논의조차 없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국민의힘도 즉각적인 해명에 나섰다. 다만, 논란의 문건이 "국민의힘에서 만든 문건이 아니다"라는 주장을 펴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최초 해명은 한기호 북핵특위 위원장 명의의 정정보도 요청이었다. 한 위원장은 해당 자료를 통해 '제주 핵 배치' 가능성을 논의한 것은 맞지만 일부의 의견에 불과했고, 최종보고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채택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회의 특성상 비공개로 이뤄져 다소간의 오해 소지가 있었던 것에 양해를 구한다. 특위의 공식 입장이 아닌, 북핵·미사일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과 그 예를 드는 과정에 발생한 표현의 오류"라고 거듭 해명했다.
즉, 논의 과정에서 다뤄졌던 제주 입지 안이 최종 보고서에는 제외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제주도당은 한술 더 떠 이 같은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북핵특위 명의의 관련 문건도 시중에 나도는 불분명한 정보를 뜻하는 속어인 '찌라시'로 취급하며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했다.
허용진 국민의힘 제주도당 위원장은 제주 전술핵 배치 등이 언급된 관련 보도를 '100% 오보'라고 규정했다. 허 위원장은 "해당 문건은 국민의힘에서 만든게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런 문서를 배포한 적이 없다는 점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장 공람을 전제로 전날 특위에서 채택된 최종 보고서를 공개했다. 도당이 공개한 보고서와 사전에 입수된 보고서는 모든 내용이 같았고, '제주'가 명시된 내용만 쏙 빠졌다. 핵무장 전진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그 최적지가 제주도라는 문구만 제외시켰다.
그럼에도 허 위원장은 특위에서 제주 입지와 관련해서는 "논의된 적조차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련 문건의 출처가 어디었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도 "그건 나도 모른다.", "나한테 물을 일이 아니잖은가"라며 발뺌했다.
◇ "오영훈, 왜 폭설로 자리 비웠나" 뜬금 없는 정쟁구도 전락 시도
관련 현안을 '정쟁 구도'로 전락시키려는 구태도 연출됐다.
허 위원장은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과정에서 나온 한 개인의 해프닝을 바로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는 오 지사와 민주당 제주도당의 일치단결된 모습에 아연실색 혀를 내두르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오영훈 지사에 대한 도민사회 갈등이 도를 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제하며 "일기예보 상황을 면밀히 파악해 출타해야 함에도 지난 20일 서울을 방문한 오 지사는 제주에 강풍과 폭설로 인해 4일 동안 제주를 비웠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이로 인해 제주도의회 본회의 불참은 물론 강풍과 폭설로 인한 재난안전 컨트롤타워로서 역할을 전혀 하지도 못해 많은 도민들로부터 빈축을 샀다"고 덧붙였다.
오 지사의 행보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핵 배치' 논란과 하등 관계 없는 이슈를 끌어다가 정쟁 도구로 삼은 것이다.
허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상대당을 어떻게 하면 깎아내리고 근거없는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면서 대도민 분열 상황을 만들려 하지 말라"며 이율배반적인 촌평을 남겼다.
◇ 야권-시민사회 중심 지역사회 반발 확산
지역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오영훈 도지사는 사전에 입수한 해당 보고서 내용을 인용하며 "세계평화의 섬 제주를 전략적인 핵배치 요충지로 만들겠다는 내용은 제주와 도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내용"이라며 "있을 수도 없고, 검토조차 없어야 할 사안"이라고 분을 냈다.
이에 더해 오 지사는 지난 10월 31일 한기호 북핵특위 위원장 주재로 열린 '북핵위기대응 세미나'를 언급하며 "제주를 아예 군사기지 섬으로 만드는, 제주인의 자존심을 짓밟는 무책임한 방안이 여당 내에서 논의돼 왔다"며 "사실상 제주를 군사의 섬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권을 비롯한 시민사회의 비판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송재호(제주시 갑), 김한규(제주시 을), 위성곤(서귀포시) 국회의원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의힘의 행태는 제주도민 권리와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을 철저하게 짓밟고 무시한 반민주‧반민족적 작태"라고 힐난했다.
이들은 "국민의힘은 제주를 미국 전술핵무기의 전진기지로 삼는다는 발표를 하는 과정에서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철저히 무시했다"며 "국민의힘의 생각 속에 제주는 단지 자신들의 허황된 정치의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고 날을 세웠다.
정의당 제주도당도 "제주를 한낱 군사적 전략기지로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제2공항을 순수 민간공항이 아니라 미국 전략폭격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로 건설하겠다는 언급 등은 군사공항을 겸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국민과 도민을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집권여당은 도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지금의 작태를 당장 멈추라"고 경고했다.
도내 복수의 시민사회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제주제2공항강행저지비상도민회의는 "제주를 핵전쟁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국민의힘 계획은 즉각 철회돼야 하고, 도민사회에 공개 사과해야 한다"며 "핵전쟁 소용돌이에 한반도와 제주를 밀어넣는 행태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