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희생자 아닌 일반재판 재심 사건 해 넘도록 ‘감감무소식’

재심 청구 3개월, 심문기일 50일 가깝도록 검찰은 의견조차 없어

2023-01-03     이동건 기자

제주4.3특별법상 특별재심과 직권재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고(故) 한상용 재심 사건이 결국 해를 넘겼다. 4.3특별법 전면개정에 따른 명예회복 과정에 첫 선례로 남을 사건이라서 도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고(故) 한상용의 자녀 한모씨가 2022년 10월4일 재심을 청구한 이후 해를 넘긴 2023년 1월3일까지도 개시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15일 심문기일 이후 50일 가까이 지났지만, 검찰은 별다른 의견조차 내지 않았다. 

심문기일에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초까지 한상용 재심 사건에 대한 의견을 밝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특별재심 사건에서 심문기일이 끝난 뒤 1~2주 정도 지나면 의견을 제출했던 모습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성산읍 수산리에 살던 한상용은 1949년쯤 남로당원을 도왔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기소돼 1950년 2월28일 법원에서 징역 2년형에 처해졌다.

옥살이를 하다 만기출소한 한상용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다. 한상용의 아내는 물질과 농사로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 2017년 7월 생사를 달리한 한상용은 3남매를 뒀다. 

아들 한씨는 아버지가 술을 마시기만 하면 4.3 당시 고문에 시달려 허위 자백한 사실을 계속 말해줬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법정에서 한씨는 “아버지는 갖은 고문에 시달렸다. 목숨을 잃은 사람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저 ‘네’, ‘네’라고만 대답했다”고 증언했다. 

일반재판을 받은 한상용은 4.3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아 4.3특별법상 특별재심 대상이 아니다. 특별재심은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중앙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된 4.3 피해자여야 한다.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단장 이제관, 합동수행단)’이 추진하는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도 아니다. 합동수행단은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2530명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최근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지시로 일반재판 피해자까지 직권재심이 확대됐지만, 4.3희생자로  결정된 피해자를 우선순위에 두면서 한상용은 직권재심을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처지다.

한상용은 4.3특별법상 특별재심·직권재심에 해당되지 않아 형사소송법상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한다. 

최근 명예가 회복된 생존수형인 박화춘(1927년생) 할머니와도 또 다른 사례다. 박 할머니는 직권재심 대상자지만, 4.3희생자가 아니라 특별재심 혜택을 받지 못해 형사소송법에 따른 재심 절차를 밟았다. 

제주도와 4.3유족 등은 박화춘 할머니나 고(故) 한상용처럼 평생 4.3 피해 사실을 숨겨 살면서 4.3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피해자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4.3중앙위원회가 지속적으로 회의를 열어 희생자 선정 절차를 밟는 이유다. 

박화춘 할머니와 고(故) 한상용 둘다 4.3 희생자가 아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생존 여부다. 생존자인 박화춘 할머니가 법정에서 털어놓은 4.3 당시 고문 피해 사실 등은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의 주요 증거로 인정됐다. 

아들 한씨가 망인인 아버지(한상용)가 생존해 있을 때 말했던 얘기를 법정에서 대신 증언했지만, 검찰은 ‘증언의 신빙성’을 두고 고심하고 있는 분위기다. 

4.3특별법 전면개정 이후 특별재심과 직권재심 모두에 해당되지 않는 첫 사례로, 아들 한씨의 증언을 받아들이면 추후 비슷한 사례의 재심 사건에서도 무조건적으로 증언을 인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벌어진 4.3사건 특성상 4.3 유족과 단체 등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상용과 비슷한 피해자가 워낙 많아 ‘화해와 상생’이라는 4.3 정신에 따라 재심을 통해서라도 피해자들의 명예라도 회복시켜줘야 한다는 목소리다.

향후 제주4.3 재심의 나침반이 될 수 있는 한상용 재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법조계는 물론 도민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