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반목 딛고 ‘화해와 상생’, 제주4.3 정신 드높인 유족회-경우회

[신년기획] 화해와 상생 선언 10주년 (상) 4.3의 정신, 65년 만에 손잡고 화해한 원로들

2023-01-09     김찬우 기자
반목과 갈등이 심했던 제주4.3유족회와 전직 경찰로 구성된 제주재향경우회가 4.3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을 내세워 조건 없이 두 손을 맞잡은 지 10년이 흘렀다. 두 단체는 화해선언 이후 해마다 합동 참배와 순례 등을 이어오며 도민화합에 앞장,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가 됐다.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천명한 화해와 상생 선언 10주년을 맞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제주의소리]가 세 차례에 걸쳐 톺아본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2013년 8월 2일 오전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화해와 상생으로 제주발전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3년 8월 2일은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이분법에 갇혀 서로의 주장을 내세워 등을 돌리고 살아온, 묵은 원한으로 반목과 갈등이 심했던 기나긴 세월을 서로가 보듬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 아래 피의 광풍이 몰아쳐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한 1948년부터의 제주4.3 이후 65년 만에 4.3유족회와 제주경우회가 두 손을 맞잡고 화해와 상생을 외쳤다.

누구랄 것 없이 제주섬에 있던 모두가 피해를 겪은 4.3이었지만 철천지 원수로 살아왔던 이들 단체가 두 손을 맞잡고 4.3의 정신인 화해와 상생을 외친 것이다. 

올해는 두 단체가 이념을 내려놓고 조건 없는 화해와 상생으로 도민화합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한 지 10년째다. 

10년 전 두 단체는 조건 없이 화해와 상생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유족회는 군경 전사자의 넋이 안장된 충혼묘지를 찾았고, 경우회는 4.3위령제에 참여해 희생된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다. 

유족회와 경우회는 당시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자유수호에 기여하고 사회봉사 활동을 추구하는 경우회와 4.3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후손이 모인 유족회가 손을 잡았다”고 선포했다. 

이들 단체는 제주 발전을 견인해야 할 두 단체가 과거 상처만을 부둥켜안고 상대방의 주장을 묵살 해왔다고 반성, 앞으로 화해와 상생으로 제주 발전에 동참하겠다고 천명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제주시충혼묘지와 제주4.3평화공원을 합동 참배하는 등 지금까지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두 단체의 화해선언을 계기로 해마다 여야정당과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합동 참배가 이어졌다. 사진은 2015년 8월 2일 제주4.3평화공원. 왼쪽부터 당시 강지용 새누리당제주도당 4·3특별위원회 위원장, 이문교 4.3평화재단 이사장, 현창하 경우회장, 정문현 4.3 유족회장, 이연봉 새누리당 제주도당위원장. ⓒ제주의소리
지난해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합동순례 일환으로 목포형무소 옛터를 찾아 4.3영령들을 기렸다. 목포형무소에는 제주4.3 당시 600여 명이 수감된 곳으로 4.3 관련 수형인들이 가장 많이 수감된 곳으로 파악된다. ⓒ제주의소리

화해 분위기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 씨와 2만5000여 명의 관중이 지켜본 전국체전 대회장에서도 피어났다. 

2014년 10월 28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95회 전국체육대회 개회식에서는 당시 정문현 4.3유족회장과 현창하 경우회장이 나란히 성화봉송 주자로 나섰다. 화해와 상생의 정신을 전국에 드높인 것이다.

일부 보수 논객이 제주지역 일간지에 두 단체의 공동 기자회견을 비방하는 기고문을 실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는 등 숭고한 정신을 폄훼하려는 시도가 잇따랐지만, 이들 두 단체는 굴하지 않았다. 

극우 보수단체가 4.3희생자를 재심사해야 한다며 왜곡을 일삼는 가운데서도 화해와 상생 2주년 당시 현창하 경우회장은 “중앙에서 절차에 따라 엄격한 심사가 진행되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며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 

두 단체는 ‘화해와 상생을 위한 합동순례’도 추진했다. 4.3과 경찰 관련 역사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영령들을 위무하는 행사를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두 단체의 행보는 갈등 해결의 모범적 사례로 손꼽힌다. 

화해와 상생의 가치 실현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면서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경찰청장도 4.3영령들에게 공식적으로 애도와 유감을 표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제주4.3평화공원을 방문해 헌화와 분향을 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50년 8월30일 해병대 정보참모 해군중령 김두찬이 서귀포경찰서장에게 보낸 예비 구속자 총살 집행 의뢰의 건. 당시 문형순 서장은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고 썼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당시 수장이었던 민갑룡 경찰청장은 지난 201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4.3 추념식에 참석했고 이듬해 5월에는 제주4.3평화공원을 직접 찾아 “제주4.3사건의 아픔을 통해 경찰의 지난날을 반성하며, 유가족의 염원을 이정표로 삼아 민주·인권·민생경찰로 굳건히 나아가겠습니다”라고 방명록에 썼다.

4.3 당시 부당한 국가권력의 명령을 거부하고 민간인들의 목숨을 지켜낸 경찰 영웅도 있다. 예비 검속자들에 대한 총살 명령을 “부당함으로 불이행”하겠다며 학살을 막아낸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 이야기다. 

문 서장은 1949년 모슬포경찰서장 당시 좌익 혐의를 받던 주민 100여 명이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자수시킨 뒤 훈방해 목숨을 살렸다. 

명령을 거부하면 본인도 총살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도민을 살리기 위해 학살 명령을 거부한 그는 2018년 ‘올해의 경찰 영웅’에 선정돼 후배 경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유족회와 경우회가 손을 맞잡기 10여 년 전 이미 도민들은 “죽은 이는 모두 눈을 감고, 산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며 이념의 벽을 넘어 모든 이들의 혼을 모시기도 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에는 2003년 주민들이 모든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는 영모원(英慕園)을 마련했다. 위령단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4.3희생자 위령비가, 왼쪽으로는 위국절사 영현비와 호국열사 충의비가 마련됐다. 

4.3희생자와 애국선열, 호국영령을 함께 모셔 화해와 상생이라는 의미를 드높인 것이다. 영모원 비석에는 “지난 세월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 용서하는 뜻으로 모두가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모두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라고 적혔다.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비문이 새겨진 영모원 위령단은 지역주민들이 화해의 통합을 시도한 의미있는 장소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2020년 제72주년 4.3추념식 참석을 위해 제주를 찾았을 당시 영모원을 찾기도 했다.

최근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 4.3 관련 기술 근거를 없애려는 시도가 이어지는 등 이른바 4.3흔들기가 되풀이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따르고 있다. 

그러나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드높여 손을 맞잡은 굳건한 화합 정신이 유지된다면 아픔을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도민 모두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제주4.3이 진정한 해원을 이룰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한편, 정의로운 제주4.3 해결을 위한 밑거름을 쌓은 현창하 전 경우회장은 9일 별세했다. 일포는 10일 부민장례식장 4분향실에서 진행된다. 9일 조문은 10분향실에서 가능하다. 

김창범 제주4.3유족회 상임부회장은 “제주의 미래세대에 아픔을 물려줄 수는 없다며 일부 반대 여론 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화해와 상생을 위한 큰 결단을 내리신 분”이라며 “유족회에서도 존경하는 분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영모원 전경. ⓒ제주의소리
여기 와 고개 숙이라.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여기 와서 옷깃을 여미라. 해방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 6.25의 아픔이 한반도에 닥치기도 전에 이 죄 없는 땅, 죄 없는 백성들 위에 아직도 정체모를 먹구름 일어나서 그 수많은 목숨들이 지금도 무심한 저 산과 들과 바다 위에 뿌려졌으니, 어느 주검인들 무참하지 않았겠으며 어느 혼백인들 원통하지 않았으랴. 단지 살아있는 죄로 소리내어 울지도 못한 마음들은 또 어떠했으랴. 죽은 이는 죽은대로 살아남은 이는 살아있는대로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허공에 발 디디고 살아오기 어언 50여년... 아버지보다 오래 살고 어머니보다 나이 들어서야 여기 모인 우리들은 이제 하늘의 몫은 하늘에 맡기고 역사의 몫은 역사에 맡기려 한다. 오래고 아픈 생채기를 더는 파헤치지 않으려 한다. 다만 함께 살아남은 자의 도리로 그 위에 한 삽 고운 흙을 뿌리려 한다. 그 자리에서 피가 멎고 딱지가 앉아 뽀얀 새살마저 살아날 날을 기다리려 한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두가 희생자이기에 모두가 용서한다는 뜻으로 모두가 함께 이 빗돌을 세우나니 죽은 이는 부디 눈을 감고 산 자들은 서로 손을 잡으라. 이제야 비로소 지극한 슬픔의 땅에 지극한 눈물로 지극한 화해의 말을 새기나니, 지난 50여 년이 길고 한스러워도 앞으로 올 날들이 더 길고 밝을 것을 믿기로 하자. 그러니 이 돌 앞에서는 더 이상 원도 한도 말하지 말자. 다만 섬나라 이 땅에 태어난 이들은 모두 한 번쯤 여기 와서 고개를 숙이라.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