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돌고래에 법인격 부여” 논의 본격화, 현 법체제서 가능한가?
'해양생태계 보호방안 자문회의' 개최, 생태법인 가능성 토론
멸종 위기에 놓인 '제주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 도입을 위해 공적 차원에서의 논의가 본격화됐다.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겉돌던 논의가 제도권에서 다뤄지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13일 오전 10시 30분 제주도청 한라홀에서 '해양생태계 보호방안 마련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했다. 김희현 정무부지사가 주재한 이날 회의는 관계공무원과 해양생태계 전문가 등이 참석했다.
생태법인(生態法人, eco legal person) 제도는 인간 이외의 존재 중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존 법치주의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도입해 자연에도 법적 권리 주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생태법인 제도는 자연의 권리를 보다 보편적이고 개방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기후·생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실용적인 법제도적 대안으로 분류된다. 최근 해외에서는 특정 생태계의 자연의 권리를 인정한 법률이 제정되고, 관련 판례가 남겨지기도 했다.
이 같은 정책은 오영훈 제주도지사의 정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오 지사는 도정 출범 당시 '사람과 자연의 행복'을 제주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제시했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해양자원 보호 및 바다 자치권 확보'를 주요 공약으로 선정했다.
또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도민보고회에서는 "청정 제주의 생태환경을 더욱 빛내겠다"며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시범사업 추진, 생태법인 제도화 방안 마련 등을 통해 제주의 우수한 자연생태적 가치를 지켜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진희종 제주대학교 강사는 "제주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생태법인 제도의 도입은 제주해양생태계의 건강성 유지는 물론, '사람과 자연이 행복'이라는 오영훈 도정의 목표에 직결되고, 제주바다 자치주권 강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가치정립, 제도설계, 정책 수립, 여론수렴 등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진 강사는 생태법인으로서의 남방큰돌고래에 대해 "돌고래의 온전한 삶을 지탱하는 데 필요한 법적 권리를 보유하고 대리인을 통해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돌고래 서식지 보호, 해양오염 방지, 난개발 방지 등에 대한 연구와 지침 설정, 보호정책 등을 추진할 수 있다"고 의의를 부여했다.
특히 "자연을 대하는 인간 인식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자연을 단지 인간의 이용 대상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와 공존의 대상으로 제도를 재정립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자연의 행복에 기여하는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가 등 생태법인 제도 도입 과정에서의 다섯가지 질문을 쟁점으로 제시했다.
장수진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MARC) 대표는 "생태법인의 도입은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받는 동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안"이라며 "적절한 보전의 지속 가능성과 제주 해양생태계 보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효과를 분석했다. 이를 위해 "장기 생태 연구를 바탕으로 한 변화 양상의 파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기존 법체계의 근본을 흔드는 생태법인 도입은 의지만으로 도입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현실적 제언도 뒤따랐다.
박태현 지구법학회 회장은 "자연의 권리를 제도로 고현하려면 인간만이 권리주체고 자연은 자원, 자본 등 권리객체라는 법체계의 전제가 바뀌어야 하다"며 "자연은 '자연적 실체'로서 법 주제로, 즉 'legal person'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박 회장은 "무엇보다 국가의 객관적 가치질서인 헌법에 자연과 자연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선언해야 한다. 현행 헌법은 자연을 인간의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위한 '환경'으로만 보지만, 자연은 생명의 원천으로서 적절한 지위가 부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권리 보유자로서 자연적 실체의 인정에 국내적 접근법, 곧 특정 생태계에 권리를 인정하는 모델이 도입돼야 한다"며 "자연의 권리 조항을 헌법에 두고 있는 에콰도르의 모델을 따르기에는 경제발전 양식이나 법체계의 조정 부담이 클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생태계 권리를 인정하는 뉴질랜드 모델이 적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