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탐라대 ‘설익은 활용안’ 전격 발표 왜?...‘경찰 토지 맞교환’ 설 종식
완강한 오 지사 토지 활용 방향성 제시...경찰 주도 '연동 청사' 교환 논의 무산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7년째 방치돼 있던 옛 탐라대학교 부지 활용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세부적인 계획에 있어 아직 설익은 방향성을 발표한 것은 세간에 나돌기 시작한 '경찰청사 부지 맞교환' 설을 종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영훈 지사는 16일 오전 옛 탐라대 부지 현장에서 부지 이용계획을 발표했다. 기존 '교육기관 유치'에 머물러있던 토지 이용 방안을 보다 폭넓게 적용해 신산업 유치에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서귀포시 하원동 옛 탐라대 부지는 31만2217㎡ 규모로, 제주도가 2016년 6월 재정난이 심화된 학교법인 동원교육학원으로부터 415억9500만원에 매입했다.
애초에 열악한 산남지역 교육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마을주민들이 광활한 토지를 헐값에 내준 곳이었으나, 대학 운영이 원활치 않자 학교재단은 수십배의 차액을 남기고 제주도에 토지를 되팔았다.
이를 공공자산 확보 차원에서 사들인 제주도는 그간 해외대학 유치를 위해 노력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16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수산대학 유치를 추진했으나 실패했고, 2019년에는 세계 100위권 내에 있는 미국의 대학 유치를 협의했지만 이 역시 불발됐다. 빈 건물 관리비용만 해마다 수천만원씩 소모되면서 표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도 차원의 부담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 방향성 밝혔지만, 구체적 계획 없는 '청사진' 제시 수준
오 지사의 이날 발표는 그동안 한정지어졌던 부지 이용 방안의 폭을 넓혔다는데 의미가 있다. 오 지사는 부지활용 방안의 대원칙으로 크게 △경제적 효과 극대화 △새로운 미래 성장 기여 여부 △하원동마을 주민 수용성 등 세가지를 내세웠다.
단 △호텔, 리조트, 아울렛 등 단순 관광 목적 사업 △공장 등 환경 오염물질 유발 사업 △주변환경 개발 제한되는 사업 △부지를 매각해야 진행될 수 있는 사업은 제외하는 등 활용 방향성을 구체화 했다.
이날 제주도가 발표한 옛 탐라대 부지 활용 방안은 민선8기 도정의 역점 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상장기업 20개 유치·육성 전략과도 맞물리고, 산남북 균형 발전, 산업 구조 고부가 가치화 차원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 오 지사는 현장에서 해당 산업단지 내 그린수소, UAM, 항공우주산업 등의 유치 가능성을 제시했다.
다만, 이날 발표는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하는 수준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부족했다는 평가다.
어떤 기관을 유치할지, 어떤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는지, 어느 정도의 기업을 유치할 것이며, 기존 대학 건물의 활용방안 등 세부적 구상에 있어서는 부족한 점이 엿보였다.
오 지사 스스로도 취재진의 질문에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단계는 오지 않았다. 조만간 설명드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한다"고 말을 아꼈다.
이는 경찰 발(發)로 갑작스럽게 언급되기 시작한 '연동 청사 맞교환' 가능성을 일축시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급물살 타던 경찰총장 발 '토지 맞교환', 道 급제동
옛 탐라대 부지와 제주시 연동 옛 제주경찰청사 부지 맞교환 논의는 지난달 27일 노형동 신청사 개청식 당시 제주를 찾았던 윤희근 경찰청장의 발언으로 촉발됐다.
윤 청장은 지역현안을 보고받는 과정에서 연동 옛 경찰청사 부지와 서귀포시 옛 탐라대 부지와의 교환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는 단순 아이디어 차원으로 알려졌지만, 제주청 차원에서는 윤 청장의 제안을 상당히 무게감있게 받아들였다는 후문이 뒤따랐다.
제주도가 연동 옛 경찰청사를 필요로 했던 것은 사실이다. 도청 1청사와 2청사 사이에 위치한 옛 경찰청사는 제주도의 고질적인 사무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혔다.
1980년 건설된 제주도청사의 경우 꾸준한 조직 확장으로 인해 일부 부서가 큰 길 건너 건설회관에서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 신세다. 경찰청사를 사들여 건물 신축 시 이 같은 문제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양 기관은 최근 들어 실무적 차원에서도 의견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전까지 미온적이었던 경찰 측이 윤 청장의 의견 제시 이후 적극적으로 의견 교환을 주도해 왔다. 도와의 거래를 원활히 하기 위해 각 지에 퍼져있는 해안소초 부지 활용 가능성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입장에서도 옛 탐라대 부지 활용안을 찾지 못한 채 묵혀놓느니 경찰에 일임할 수 있었다. 경찰은 해당 부지에 경찰대학, 경찰인재개발원, 경찰대교육진흥재단, 국립경찰병원 분원 등이 몰려있는 충남 아산시와 같은 '제2의 경찰타운'을 조성할 계획으로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수 천명에 달하는 경찰인력이 이 부지를 드나들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었다. 소위 말해 '계산이 서는' 상주인구를 유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리트가 있던 셈이다.
◇ "등가교환 성립 안돼", "하원주민 마을 반대"
반면, 이 같은 배경에도 불구하고 오 지사의 반대는 완강했다.
지난 13일 이상률 제주경찰청장과의 만남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리였다. 이날 오 지사의 방문은 지난달 신청사 개청식에 참석하지 못했기에 경찰의 초청에 응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실무 차원에서 사전에 논의되지 않았던 '토지 맞교환'이 갑작스레 테이블에 올라오자 오 지사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순 거부가 아닌, 불쾌한 감정까지 여과없이 표출했다는 후문이다.
오 지사가 경찰 측의 제안을 되물린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단순 등가교환으로 연동 청사 부지와 옛 탐라대 부지의 차이가 상당하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표면적으로는 제주도가 2016년 옛 탐라대 부지를 사들일 당시의 토지가는 415억9500만원이었다. 연동 제주경찰청사 부지의 장부가액은 지난해 기준 374억원 가량이지만, 감정평가액은 400억원 안팎으로 형성될 것으로 예상됐다. 숫자로만 보면 맞교환 가능성이 제시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제주도는 옛 탐라대 부지의 잠재 가치를 보다 크게 책정했다. 400억원이라는 평가는 이를 '교육부지'로 남겨놓았을 때의 평가일 뿐 용도변경 시 활용 가치가 더욱 오를 것으로 평가했다. 이에 반해 연동 경찰청사 부지는 청사로서의 거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최초 토지를 내줬던 하원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방법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 지사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옛 탐라대 부지는 서귀포의 지역균형 발전과 산남 아이들의 미래 성장을 위해 써달라는 하원마을 주민들의 염원이 담긴 소중한 땅이다. 마을의 대규모 자산인 공동목장을 제공한 큰 뜻을 온 도민이 기억하고 있다"며 "지역주민 수익 창출과 주변지역 관리방안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창주 하원마을회장도 취재진과의 대화에서 "오 지사와 주민들과 대화 과정에서 경찰 측의 활용방안 얘기가 나왔는데, 마을에서도 그 부분은 반대라는 입장을 굳혔다"고 말했다.
마을회는 '경찰 타운'이 조성될 시 자칫 이 부지가 고립되는 시설이 될 수 있고, 군부대와 같은 성격을 띄게 될 것을 우려했다. 애초에 부지를 내준 취지가 '교육용'이었다는 점도 섣불리 경찰에 활용안을 넘기기에 꺼려지는 대목이었다.
오 지사가 분명한 입장을 밝히면서 '토지 맞교환'은 단순 설 수준에서 정리될 전망이다.
경찰 측 관계자 역시 "제주도만이 아니라 다른 기관과도 옛 청사 활용과 관련해 논의를 할 수 있다. 도유지에 국한하지 않고 사유지라도 고려해 여러 의견을 들어보겠다"고 유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