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의 국제적 해결 “미군정 책임 끝없이 요구해야”

국회의원-4·3단체, 17일 국회서 토론회 허상수 교수, 미국 대응기구 구성 제안

2023-01-17     김정호 기자
17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제주4·3에 대한 한국사의 역사적 평가를 넘어 미국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을 바탕으로 국제적 해결 과제로 확장시켜 가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송재호(제주시갑)·김한규(제주시을)·위성곤(서귀포시) 의원과 제주4·3단체는 17일 오후 2시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제주4·3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 1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날 행사에서 허상수 전 성공회대 교수는 ‘4월3일 대사건의 국제적 해결을 위한 과제’ 발제를 통해 4·3의 세계화를 강조했다.

허 교수는 미국 정부와 군부대가 4·3 당시 제주에 개입한 점을 언급하며 군사작전과 탄압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1945년 9월9일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15일까지 미군정은 3년간 남한을 군사 통치했다. 제주는 1947년 3·1절 발포사건 직후 미군정의 개입이 더욱 심화됐다.

미국이 진상조사단을 제주도에 파견했지만 제대로 된 조사도 없었다. 오히려 1947년 3월14일 조병옥 경무부장이 제주 관련 포고문을 발표하면 3·1절 발포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했다.

이듬해 4월3일 무장봉기가 일어나자, 미군정은 4월17일 제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59군정중대장 맨스필드(John S. Mansfield) 중령을 통해 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명령했다.

1948년 5월1일 우익청년단의 오라리 방화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경비대에 총공격을 명령하면서 진압수위를 끌어 올렸다. 제주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겪으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허 교수는 “미군정은 1947년 3월부터 제주를 불순세력으로 매도하고 타격과 파괴의 대상으로 날조했다”며 “이 과정에서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방식들이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1948년 4월 무장봉기 이후 산으로 간 사람들을 공산주의자로 단정하고 초토화작전을 벌였다”며 “도 전역에서 대규모 학살이 자행됐지만 미군정은 이를 은폐해 왔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는 물론 사법부와 의회를 상대로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책임 추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미국 의회를 향해서는 결의안 채택이나 청문회 개최 등을 요구하고 미국 법원에 대해서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집단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허 교수는 “미국 정부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외교부를 통해 공식적인 요구 사항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입증하기 위한 양국간 공동조사가 우선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주에서는 도지사를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범도민 추진기구가 필요하다. 학자와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연구와 전시 등을 통해 4·3을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