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유족 한 짊어진 김창범 신임 회장 “미래 준비할 것”
[소리 -人터뷰] 김창범 신임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제주4.3 정명-가족관계 등 과제 산적 “더 늦기 전 명예회복 이뤄야”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최대비극 중 하나인 4.3에 대한 진상규명과 희생자 및 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상이나 이념의 그릇된 잣대가 아닌,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문제로 4.3을 바라보고 화해와 상생을 위한 정의로운 발걸음을 옮긴 지도 35년이 됐다.
그동안 감춰야만 했던 역사 속에서 가슴 깊은 곳의 한(恨)의 응어리를 풀어내지 못했던 유족들은 유족회 활동을 바탕으로 조금씩 세상에 억울함을 드러내며 스스로 지난날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있다.
도민사회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해결되고 있지만, 올해 75주년을 맞는 제주4.3은 여전히 직권재심, 가족관계 특례, 보상금 지급, 추가진상조사 보고서 발간, 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미국의 책임과 역할 규명, 4.3 정명 등 많은 과제가 쌓여있다.
[제주의소리]는 이 같은 무거운 과제를 짊어진 채 앞으로 2년간 4.3유족회를 이끌어 갈 김창범(58) 신임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취임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자 “앞으로 (4.3을 위해)고생해달라는 말로 듣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유족회를 이끌게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김 회장은 유족분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계실 때 하루라도 빨리 명예회복을 이룰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관련해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4.3피해자 2530명을 대상으로 하는 ‘직권재심’처럼 일반재판 피해자들도 직권재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내용을 특별법에 담고 싶다고 피력했다.
지난해 12월 28일, 일반재판 4.3피해자 10명에 대한 재심청구서가 검사 직권으로 청구되면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으나, 이는 특별재심, 직권재심과 다르게 청구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일반재판 피해자까지 직권재심 확대를 검찰에 지시, 대검찰청이 이를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는 하나 유족들은 언제 입장이 바뀔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김 회장은 4.3피해자들을 위한 재심 과정에서 법원과 검찰의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명예회복도 그만큼 늦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김 회장은 “길게는 6년까지도 내다보고 있는 재판인데, 특별법을 통해 인원이라도 확충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며 “조금이라도 빠르게 청구를 진행해 돌아가시기 전에 명예회복을 이루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또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 관련 내용도 법제처가 시행령을 마련, 조만간 대통령령으로 공포될 예정인데 담지 못했던 조항이 있어 다시 개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가족관계가 올바르게 정정돼야 소외되는 분 없이 명예회복을 이루고 배·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임기 동안 역점에 둘 사업에 대해서는 △공익재단 설립 △자립기반 토대 마련 △4.3유족회 공법단체 법적 지위 획득 △4.3특별법 개정 이후 후속 조치 정상적 추진 △직권재심, 특별재심 무죄판결에 따른 형사보상청구소송 지원단 구성 △생존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복지지원 확대 등을 내세웠다.
특히 고령화되고 있는 유족회의 앞날을 위해 미래세대가 참여할 방안을 고민하고 유족회가 자립할 수 있는 초석을 쌓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공익재단’ 설립 의사를 밝혔다.
배·보상금을 받은 4.3피해자들이 유족회에 후원한 돈을 공익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공익재단을 설립하고 싶다는 것. 재단을 해 자립능력을 키우는 등 유족회의 미래를 밝혀나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제75주년 4.3희생자 추념식과 관련해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최근 벌어진 4.3 교육과정 배제, 4.3폄훼 인사 진실화해위원장 및 4.3중앙위원 임명 등 4.3흔들기 논란 우려를 잠재워 달라는 말이다.
김 회장은 “윤 대통령 인수위는 제주 7대 공약으로 4.3의 완전한 해결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최근 많은 논란을 자초했고 제주사회는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부처럼 4.3을 홀대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74주년 추념식에서 당선인 신분으로 제주를 찾아 4.3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온전한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아픔을 국가가 책임있게 어루만지겠다고 했는데 올해 추념식에 참석해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추가진상조사 보고서 발간이나 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 4.3평화공원 활성화 등 사업도 유족회 중심 사업은 아니지만 많은 관심을 갖고 힘을 보태겠다”며 “또 미국과 유럽 시민단체 연대 협력을 통해 미국의 책임과 역할 규명에도 앞장서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어 유족회와 제주도재향경우회가 2013년 두 손을 맞잡은 ‘화해와 상생’ 선언 10주년을 맞아 다양한 사업을 알차게 준비하겠다고도 했다. 매해 합동 참배와 순례를 통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드높이는 두 단체의 행동은 과거사 청산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김 회장은 또 “무엇보다 4.3은 정명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 구체적인 논의는 아니라도 시작은 해야한다. 그래야 몇 해가 걸려서라도 정리될 것”이라며 “유족회의 새로운 미래 청사진을 다시 그려나가야 할 시점에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김창범 회장과 러닝메이트인 이상언 상임부회장은 2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 2025년 1월 31일까지 2년 동안 4.3희생자유족회를 이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