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영리병원 역사 훑은 판사들 ‘의료 공공성’ 훼손 우려 인정
[분석] 항소심 재판부, 녹지병원 ‘내국인 진료 제한’ 소송 기각·각하 배경은? “의료공공성 훼손 우려 있어 행정청인 제주도가 폭넓은 재량권 가져” 판시
녹지국제병원 허가 조건인 ‘내국인 진료 제한’이 위법하다는 소송에서 재판부가 제주도의 손을 들어준 데는 의료 공공성 훼손 우려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행정부는 15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개설 허가조건취소청구의 소송’에서 녹지 측이 승소한 1심을 취소하고, 녹지 측의 모든 주장을 기각·각하했다.
녹지 측은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는 일반적인 의료기관과 마찬가지로 기속재량행위에 해당돼 조건을 내건 제주도의 처분은 무효라고 주장해 왔다. 환자를 고를 수 없도록 하는 의료법과 응급의료법에관한법률이나 제주특별법 등에 따라 내국인 진료를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취지다.
반면, 제주도는 행정의 재량권을 인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관련 기록을 검토한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의 역사와 영리병원 논란의 역사를 모두 훑었다.
의료보험제도와 요양기관 지정제도, 의료기관 개설 주체 제한 등 법 제정과 개정의 역사를 봤을 때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공공’에 중점을 뒀다고 판단했다.
또 2002년부터 시작된 영리병원과 관련된 논란을 하나하나 되짚으면서 법 개정 취지를 해석했다.
2002년 12월30일 제정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경제자유구역법)’에 따라 외국인은 보건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경제자유구역에 ‘외국인 전용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5년 법이 개정되면서 외국인은 복지부장관의 허가를 받아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고 바뀌었다.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에 대해 상당 기간 찬·반 논의가 이어진 상황에서 제주특별법에 경제자유구역법의 영리병원 관련 조항이 그대로 반영돼 ‘의료법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설립한 법인은 제주도의 허가를 받아 제주도에 외국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다’는 조항이 담겼다.
재판부는 영리병원과 관련된 법 조항에서 ‘외국인 전용’을 제외한 개정 취지는 외국인 의료기관이 적정한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선진외국병원을 유치하는 것일 뿐이라고 봤다.
법 취지 자체가 ‘외국인전용 의료기관’으로 제한됐다가 ‘내·외국인 대상 의료기관’까지 개설할 수 있도록 확대한 것이지 무조건적으로 내·외국인 대상 의료기관만 허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제주특별법에 따른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와 건강보험 의무가입제 완화·폐지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보건의료체계의 중대한 공익성 등을 고려할 때 행정청인 제주도가 영리병원이 미칠 불확실한 파급효과 예측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만큼 허가 처분에 대한 폭넓은 재량을 가진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녹지국제병원이 추진될 때부터 현재까지의 기록을 모두 검토한 결과, 녹지 측이 ‘외국인 전용’으로 병원을 운영할 것처럼 밝힌 바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가 없다”며 피고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히자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 운동본부’는 즉각 논평을 내고 “오늘 판결은 영리병원이 공공의료 체계를 상당 부분 훼손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당한 의미를 가지는 판결”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환영 입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