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받는 ‘생태법인’ 논의, 헌법재판연구원도 ‘생태헌법’ 당위성 뒷받침
민선8기 제주도정이 제주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멸종위기종 '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부여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 차원에서 생태법인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은 김선희 책임연구관은 최근 '자연의 권리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논문을 통해 자연의 권리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기존의 인간중심적인 환경법이 기후위기와 환경파괴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다는 자각에 따라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인 생태중심주의(ecocentrism)의 가치를 모색하기 위해 수행됐다.
특히 자연의 권리는 생태헌법으로의 전환과 깊이 관련된다는데서 출발했다. 생태헌법이란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생태적 지속가능성, 인간의 쾌적한 환경을 향유할 권리, 자연의 권리, 공공신탁법리와 세대 간 형평원칙 등의 생태원칙을 명문화한 규범'이다.
제주도가 도입을 준비하는 생태법인(生態法人, eco legal person)과 맞닿아있는 개념이다. 생태법인은 생태헌법의 범주에 속한 개념으로, 인간 이외의 존재 중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기존 법치주의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도입해 자연에도 법적 권리 주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김 연구관은 먼저 자연의 권리에 대한 실정법적 제도화와 관련 사법판결 사례를 소개했다. 2010년 유럽연합의 '어머니 대지의 권리에 대한 세계선언', 에콰도르 헌법상의 '자연의 권리와 환경보호조항', 뉴질랜드의 '테우레웨라법'과 '왕가누이강법' 등이 대표적이다.
또 자연의 권리를 법원 판결로 인정한 사례로 2016년 콜롬비아 아트라토강 결정, 2018년 콜롬비아 아마존 판결, 인도 겐지스강 및 야무나강 판결, 2019년 방글라데시 투라그강 판결 등을 나열했다.
김 연구관은 "오늘날의 기후위기는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를 기반으로 한 환경법의 한계와 생태중심주의로의 전환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했다"며 "아직 자연의 권리의 개념, 보호범위 등에 대한 이론 형성은 초기에 있지만, 자연의 권리론은 향후 생태계 보호를 위한 국가와 국민의 의무를 강화시키고, 기후변화 완화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앞선 사례와 같이 자연의 권리는 국제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며, 이미 자연의 권리를 헌법, 법률, 조례의 형식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사법부의 판례를 통해서도 자연의 권리가 인정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연구관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연의 권리주체성 인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중심주의적인 환경권을 넘어 국가와 국민의 생태계 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개정이 제안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헌법상 환경권에서 상정하는 환경은 인간에 중점을 둔, 인간을 위한 자연환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그러면서 "헌법개정이나 법률제정은 매우 어렵고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환경파괴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오늘날 상대적으로 발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사법부의 적극적 역할이 기대된다"고 제언했다.
한편, 제주특별자치도는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위한 워킹그룹을 구성하고, 오는 11월까지 계획 수립 및 도민공론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2월 국회의원 당시 '제주남방큰돌고래 보호를 위한 생태법인 입법정책 토론회'를 주최해 생태법인 공론화의 첫 걸음을 내딛었고, 지난해 10월 취임 100일 도민보고회에서는 "생태법인 제도화 등을 통해 제주의 우수한 자연 생태적 가치를 지켜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