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에 대한 국민의힘 공식 입장 뭐냐” 물어도 대답 못하는 김재원 최고위원
20일 4.3평화공원 찾아 “아픔 함께 하기 위해 나서겠다”... “공천 위한 사과냐” 비판
“4.3기념일은 격이 낮은 기념일”이라고 4.3추념일을 폄훼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이 제주4.3유족 앞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공식 입장이 뭐냐”, “당 차원의 입장 표명과 폄훼·왜곡 재발방지를 마련해달라”는 요청에는 “개인적인 이야기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변을 회피하며 참석자들의 공분을 샀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20일 오후 1시 30분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유족회와 4.3단체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날 방문은 본인의 4.3추념일 폄훼 발언을 사과하기 위한 목적이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75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 불참 논란에 대해 “대통령은 보통 삼일절과 광복절 정도 참석한다. 4.3 기념일(추념일)은 이보다 격이 낮은 기념일 내지 추모일인데 무조건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을 공격해대는 자세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에 제주4.3희생자유족회를 포함해 도내·외 70개 단체는 “국민의힘 태영호, 김재원 최고위원은 21일까지 4.3 망언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 사죄와 공식적인 입장 발표가 없으면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제소하고,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조치를 철저히 강구하겠다”며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사죄 시한 하루를 앞두고 제주를 찾은 셈이다.
간담회는 4.3평화재단 4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김창범 회장과 이상언 상임부회장을 비롯해 4.3유족회 주요 임원들, 4.3평화재단 고희범 이사장, 4.3연구소 허영선 소장, 제주민예총 김동현 이사장 등 성명서에 참여한 70개 단체 대표들도 일부 참여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첫 발언으로 “4.3유족 여러분들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그 상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많은 잘못을 했다. 저의 잘못으로 상처 입으신 많은 제주도민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그 아픔을 함께하고 또 더 나아가서 제가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너그러이 저를 봐주신다면 제가 지금까지 몰랐던 것들까지 전부 다 찾아서 유족과 도민 여러분들의 아픔을 함께 하는데 나서겠다.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보다 세세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명확한 대답을 회피하며 분노를 자초했다. 특히 태영호 최고위원을 포함해 계속 반복되는 국민의힘의 4.3 폄훼·왜곡 발언을 문제 삼으며, 당의 공식 입장과 재발 방지 방안을 물었지만 답변을 회피했다.
이상언 부회장은 “4월 3일 발언과 지금을 비교할 때 심정의 변화가 있게 된 계기가 무엇이냐. 진정성 있는 사과인지 의심스럽다”고 물었다.
이에 김재원 최고위원은 “그날 발언은 나름대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신문기사를 참고해 그대로 읽은 것인데 나중에야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평소에 다른 생각이 있던 건 아니었다. 부주의했다”고 사과했다.
김동현 이사장은 “최고위원이 유족에게 사과하러 왔다면, 공당의 대변인이 ‘우리 당의 입장은 무엇이다’라고 재발 방지 논평 정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야 사과를 받을 수 있지 않겠냐. 우린 정치인 김재원의 자숙을 위한 그림 배경으로 온 것이 아니”라고 성토했다.
그러나 김재원 최고위원은 “앞으로 우리 당이 계속 노력하겠다. 이게 당의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당의 입장까지 말씀을 못 드려서 죄송하다”며 “3일 제 발언 이후 일찌감치 사과하는 것으로 지도부에 보고했고 협의했다. 일정 조정 문제로 방문이 늦어졌다. 제가 우리 당의 입장을 들고와서 발표할 그런 사정은 아니”라고 재차 이번 사과가 개인적인 목적임을 강조했다.
앞서 김재원 최고위원은 지난 11일 외부에 알리지 않고 4.3평화공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고희범 4.3평화재단 이사장이 “오늘 방문한 목적이 무엇이냐. 김재원 최고위원 자체가 지도부 아니냐. (당의 입장까지) 확실하게 밝히고 가셔야 사과로 받아들이지, 이렇게 왔다 가면 유족과 도민, 국민들이 사과로 보겠냐”고 비판했다. 김동현 이사장도 “본인이 당에서 징계를 받으면 총선에 나가지 못하니 어떻게든 공천을 받으려고 사과 아닌 사과하러, 그림이 필요하러 온 것 아니냐. 이게 사과냐”고 비판에 가세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현 이사장, 허영선 소장을 포함한 일부 유족회 임원이 반발하며 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자리를 지킨 유족들은 “(태영호, 김재원 최고위원을) 고발하겠다”고 성토했다.
“돌아가서 (국민의힘 안에서) 4.3을 폄훼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할 수 있는 법을 제정하는데 앞장서실 수 있느냐”는 유족회원 질문에는 “그런 부분을 포함해서 제가 알게 된 4.3유족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원칙적으로 동의했다.
김창범 유족회장은 “먼 길까지 와서 4.3 유족과 대화 시간을 가졌는데, 유족들 마음이 지금도 풀리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을 고려해주시고, 내일까지 (당의 공식 입장을) 발표해주시길 바란다”고 김 최고위원에게 요구했다.
간담회를 마친 김 최고위원은 현영화 국민의힘 제주도당 4.3특위위원장(전 제주4.3희생자유족회 제주시지회장)과 함께 4.3평화공원을 참배했다. 다른 유족회원, 관계자들은 동행하지 않았다. 분향 장치도 작동하지 않아 분향하지 못했다.
김 최고위원은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유족들의 마음을 푸는데 앞장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앞으로 많은 분들과 협의해서 진행하겠다. 윤석열 대통령 (제주)공약 사항을 이행해달라는 분들도 있어서 여러 가지를 챙겨보겠다”고 밝혔다.
‘일부 당원들이 김재원 최고위원을 징계해달라는 요청을 당에 제출했고,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서 김재원 최고위원을 징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입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유족 사과는 징계 요청이 발의되기 훨씬 전부터 계획했었다”며 “제가 이 점에 대해서는 말씀 드리는게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