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돌던 ‘생태법인 도입’ 논의 잰걸음...제주특별법 개정-개별법 제정 ‘저울질’
생태법인 제도화 워킹그룹 가동, 조례 제도화 등 우회안 모색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생태계 보호를 위해 자연에 법인을 적용하는 일명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도입 가능성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 첫 시작으로 제주 연안의 국제보호종인 '제주남방큰돌고래'에 생태법인을 부여하는 안이 도출될지 주목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지난 2일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워킹그룹' 3차 회의를 갖고 생태법인 도입 가능성을 논의했다. 워킹그룹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위원장으로 학계(생태, 문화, 철학, 언론), 법조계(변호사, 로스쿨 교수), 전문가(돌고래, 해양) 등 10명으로 구성돼 3월 14일부터 운영되고 있다.
워킹그룹은 이날 회의를 통해 생태법인 도입을 위해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는 안, 개별법을 제정하는 안 등을 두고 가능성을 타진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생태법인 창설안 △특정 자연물 법인격 부여안 등이 논의됐다.
'생태법인 창설안'은 핵심종 또는 핵심생태계의 지정을 통해 생태법인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으로, 2017년 뉴질랜드 정부가 북쪽섬 왕가우니 강에 법인격을 인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특정 자연물 법인격 부여안'은 특정 매개체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현 시점에서는 과거 제주도 전 해역에서 발견됐지만 개체 수가 줄어 현재 120여마리만 관찰되는 제주남방큰돌고래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법 개정·제정 외에 조례를 통한 생태법인 제도화 방안도 논의됐다. 제주특별법 개정에 따른 위임 조례를 제정하는 안과 제주남방큰돌고래의 권리를 보장하는 독자적인 조례를 제정하는 안 등이 대표적이다.
생태법인(生態法人, eco legal person)은 생태헌법의 범주에 속한 개념으로, 인간 이외의 존재 중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대상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재산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재단법인', 단체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시단법인'과 같이 자연에 법인을 부여하는 것으로, 기존 법치주의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도입해 자연에도 법적 권리 주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당장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돌고래가 자신의 권리를 직접 행사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법인격이 부여되면 기업이 국가·개인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듯 동식물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주체가 된다.
이미 국내외에서도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민법상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어 동물의 법적 지위를 개선하려는 법 개정 움직임과 헌법재판연구원의 '자연의 권리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 등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지난 4월 유엔(UN) 총회가 기념하는 '2023 국제 어머니 지구의 날' 행사에서 제주의 생태법인 제도화 추진 사례가 소개됐고, 제18회 제주포럼을 통해 국제사회에 '생태법인 제주포럼' 조직을 제안하는 등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강민철 특별자치제도추진단장은 "연내 생태법인 제도화를 위한 제주특별법 개정안 등을 마련해 도민 공론화를 이끌고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며 "제주남방큰돌고래의 생태법인 제도를 성공적으로 도입해 제주의 최대 자산이자 경쟁력인 생태자연환경을 지켜나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