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뒤틀린 가족관계 어떻게 입증해 정정할까? “무엇이든 싹 다”
가족사진, 족보, 엽서, 친인척부터 마을 원로 인우보증(鄰友保證)까지
4.3 때 멸문지화(滅門之禍) 수준의 피해가 잇따르면서 제주에는 가족관계가 뒤틀린 사례가 많다. 가문을 중시하던 시기,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친인척 중에서 4.3 때 죽거나 행방불명된 피해자의 자손(양자)으로 들어간 경우가 많다. 반대로 살아남은 가족들이 ‘연좌제’를 피하기 위해 다른 집의 가족이 되는 등 뒤틀린 가족관계의 사례도 다양하다.
4.3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던 침묵의 세월이 지나 4.3 진상규명이 이뤄지면서 수많은 유족들이 가족관계를 바로 잡으려 했지만, 정정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DNA 검사 등 누가보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과학·객관적 증거가 중요한데, 4.3때 행방불명된 사람이 너무 많다. 어디로 갔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어 DNA를 확보할 수 없는 실정이다. 70여년이 지나면서 생존해 있는 피해자나 1세대 유족마저 극소수다.
[제주의소리]는 4.3 유족들을 위한 호적 정정을 위한 특례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지적해 왔고, 대법원이 규칙을 개정하면서 올해 여름부터 4.3 피해자들의 가족관계 정정의 길이 열렸다.
대법원규칙(4‧3특별법에 의한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 개정으로 ‘희생자’로 한정된 호적 정정 대상자가 ‘유족’까지 확대됐다.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가 관련 자료를 토대로 심의·결정하면 가족관계가 정정되는 구조다. 현재 4.3으로 가족관계가 뒤틀린 사례는 최소 200건으로 추정된다.
이로인해 유족들은 실제 가족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빙자료를 준비해 제주도 4.3지원과나 제주·서귀포시 자치행정과, 각 읍면동 주민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첫 시작 단계라서 어떤 입증 자료가 필요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 어떤 자료라도 4.3중앙위 판단에 도움될 수 있다면 제출하는 것이 좋다.
어린 시절 찍은 가족사진이나 족보를 비롯해 주고받은 편지나 엽서 등도 가능하다. 누구의 아들, 딸 등이 새겨진 묘지 비석 사진조차도 도움되는 자료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정정하려는 가족 관계와 관련된 모든 물건, 기록물이 입증 자료가 된다.
4.3 때 수많은 마을이 불에 타면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유족들이 상당해 가족 사진 등이 남아있는 유족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유족들은 매년 희생자의 제사를 지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사진 등을 준비할 수 있다.
인우보증(鄰友保證)은 가족관계를 정정하려는 모든 유족들이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인우보증은 특정 사실을 가까운 관계의 사람이 증명·보증한 서식이다.
희생자의 가족이 맞다는 친인척의 인우보증은 물론, 4.3 때 마을 상황을 기억하는 이웃 주민의 인우보증도 필요하다. 4.3 피해 당사자는 물론 1세대 유족마저 이미 고령에 접어들어 생존자가 남아있을 때 인우보증을 서둘러야 한다.
이 같은 자료가 제출되면 사실조사와 제주4.3 실무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4.3중앙위원회 심의로 이어진다. 4.3중앙위원회가 가족관계 정정을 결정하면 신청인은 행정시와 각 읍면에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신청할 수 있고 4.3특별법과 가족관계 등록사무처리규칙에 따라 최종 정정된다.
모든 친인척들의 도움이 있어야 평생 다른 가족으로 살아온 4.3 피해자와 유족들의 뒤틀린 가족관계를 정정할 수 있다.
6일간 이어지는 올해 추석 연휴는 가족관계 정정을 위해 갖고 있는 물건, 기록물이 뭐가 있는지 함께 고민하고, 누가 인우보증할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는 자리가 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