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지성의 지혜와 거국중립내각 구성이 필요하다

[소리시선] 정치가 계속 뒷걸음질 친다면, 부담은 국민과 미래세대에게

2024-04-17     윤용택

‘소리시선’(視線)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 편집자 글

이번 총선의 표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무지와 무능과 불통의 국정운영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현 정권을 불신임하였다. 앞으로 3년은 지난 2년과 달라야 한다. / 사진=다음

우리 헌정사상 유례없는 야당의 압승으로 22대 총선이 끝났다.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이 짙었다. 선거과정에서 후보자들은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야당에서는 정권심판을, 여당에서는 이(李)‧조(曺)심판을 외쳤다. 유권자들은 현 정권에 대해 엄혹한 평가를 내리면서, 제주도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하였고, 전국적으로는 범야권이 192석을 차지하면서 여당인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데 그쳤다.

지난 2년 동안 여소야대 국회에서 어렵사리 통과시킨 법안들을 대통령은 9차례나 거부권을 행사했다.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야당을 철저하게 배척하면서 국정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정치, 경제, 교육, 의료 등 우리사회의 각 분야에서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고, 국민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국민은 더 이상 그러한 윤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매서운 회초리를 들었다. 야당이 압승이라고는 하지만, 개헌, 탄핵, 거부권재의결을 하는 데 8석이 부족하다. 그러기에 대통령이 국정운영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 3년도 지금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사회는 급변하고 있다. 지구적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인공지능(AI)과 생명의료 분야에서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국내외 산업구조와 사회문화가 바뀌고 있다. 예전의 정답이 더 이상 그것이 답이 될 수 없고, 기존의 관점과 해결책으로는 문제가 점점 더 꼬일 뿐이다. 각 분야에서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요구하면서, 우리는 네비게이션 없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떠나야 하는 처지에 있다. 제주속담에 “쇠눈이 크덴 헤도 의눈이 크다(소 눈이 크다고 하지만 의논이 크다)”는 말이 있듯이, 복잡다단한 난국을 헤쳐 나가려면 집단지성의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다. 노년층, 장년층, 청년층이 처한 위치와 가치관이 사뭇 다르다보니 세대간 갈등이 심각하다. 영호남 사이의 지역간 갈등이 뚜렷하고, 제주도에도 산남북의 불균형으로 인한 갈등이 여전하다. 빈부 양극화로 인한 계층갈등, 청년층의 남녀갈등도 우리가 풀어야 과제이다. 그러한 갈등들을 풀기 위해서는 공론화를 통한 대안마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사회적 문제들이 공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판적 언론에 족쇄를 채우고, 소통을 부르짖는 이들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로운 대안을 찾는 조직과 단체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있다. 그게 정답일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백척간두에 서 있다. 이대로 가다간 나라가 소멸될 정도로 출산율이 낮다. 게다가 일자리와 주거공간이 없다보니, 청년들은 결혼, 출산, 육아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우리사회는 머지않아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인구절벽 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감당하기 힘든 물가상승과 가계부채로 서민의 삶은 피폐되고, 부자감세 정책으로 국가부채는 급증하고 있다. 기후위기, 생태위기, 정보기술혁명은 기존 경제구조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시대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국민의 삶의 질과 국격이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이번 총선의 표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들은 연이어 터지는 대형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방비, 무대책, 무책임, 치솟는 물가와 비관적 경제지표, 민주주의 훼손, 외교안보의 불안, 그리고 무지와 무능과 불통의 국정운영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현 정권을 불신임하였다. 앞으로 3년은 지난 2년과 달라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평론가들이 윤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을 볼 때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럴 경우 현 정권뿐만 아니라 우리사회는 참으로 불행하고 미래는 암담하게 될 것이다.  

정치인은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면서, 현재의 갈등을 조정하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세계는 앞을 향해 내닫고 있는데 우리만 뒷걸음질 친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국민과 미래세대가 떠안게 된다. 국민이 이번에 야당에 크게 힘을 실어준 것은 국정운영에 공동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이제는 거대야당도 단순한 정권비판을 넘어서 교육, 의료, 주거, 일자리, 인구, 지역불균형, 청년정책 등을 비롯한 각종 민생과 현안들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또 다른 회초리를 들 것이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못 볼 뿐이다. 변화, 갈등, 위기의 시대를 순항하려면 집단지성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윤대통령이 거대야당과 타협하여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 / 윤용택 제주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