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제압용 윽박?”...도정질문 중 ‘급발진’ 오 지사 언행에 뒷말 무성
오영훈 답변, 반복된 '감정적 대응' 논란...도의회 내부 불쾌감 표출
"거 참, 무서워서 질문이나 할 수 있겠어요?"
"이제 지사 눈치까지 보게 생겼네"
16일 속개된 제426회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임시회 2차 본회의장에선 때아닌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오영훈 제주도지사와의 도정질문 중 발생한 충돌을 바라본 도의원들의 촌평이다.
이날부터 19일까지 사흘간 진행되는 이번 도정질문은 민선8기 제주도정이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서 지난 2년 간의 성과를 되돌아보고, 남은 2년 간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측면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녔다.
제주 제2공항, 행정체제 개편, 관광다변화 정책, 교육발전특구, 지역의료시스템 개선 등 중대한 현안을 앞두고, 날카롭게 벼린 질문공세가 예상됐다. 그렇기에 도정질문 초장부터 터져나온 오 지사와 도의원 간의 언쟁은 뒷말이 무성하다.
문제의 장면은 국민의힘 강상수 의원이 '한라산 케이블카'와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에서 터졌다. 강 의원은 교통약자의 관광 편의성 증진을 위해 한라산 케이블카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오 지사는 도정의 역점 정책인 UAM과 충돌되는 지점이 있다며 반대 의사를 폈다.
아무리 제주개발사에 해묵은 논쟁거리인 한라산 케이블카 사업의 타당성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오 지사의 태도는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강 의원이 "(UAM이라는)유행에 꽂혀 진행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있다.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케이블카와 UAM 사업을)병행했으면 좋겠다"는 주장에 오 지사는 하와이 헬리콥터 관광을 제주 시장에 접목하며 반론을 폈다.
발언을 이어가던 중 강 의원이 "잠깐만요, 잠깐만..."이라며 말을 끊자 오 지사는 "지금 답변하고 있지 않나. 얘기 좀 들어주고 그 다음에 얘기해도 되지 않나"라며 분을 냈다. 강 의원도 자신의 발언을 거두지 않자 이에 질새라 오 지사는 "질문을 하셨으면 답변 시간도 보장을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언성을 높였다.
사용된 단어를 떠나 오 지사의 태도나 언성은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질문자인 강 의원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본회의장의 분위기도 급격히 얼어붙었다.
감정이 채 식지 않은 상황에서 한라산 케이블카와 관련된 언쟁은 급하게 마무리됐지만, 이후의 질의응답이 제대로 진행될리 만무했다.
회의를 진행하던 김경학 제주도의회 의장은 "의장이 질문과 답변 내용에 대해서 관여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되지만, 도민 여러분들께서 보기 때문에 질문하시는 의원도 절제된 방식으로, 또 하고자 하는 질문은 하지만 답변 시간도 보장해 주고, 답변하는 지사도 신중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답변에 응해줬으면 한다"고 중재에 나서기까지 했다.
도정질문은 제주도지사가 공적인 자리에서 도정의 정책과 방향성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특히 영상 기록까지 오롯이 남는다는 점에서 선택하는 단어나 언행, 제스처, 태도 역시 중요한 메시지가 된다. 감정이 앞선듯한 도지사의 발언이 빈축을 사는 이유다.
공교롭게도 이 장면은 꼬박 1년 전인 지난해 4월 도정질문과 절묘하게 겹친다. 당시 제415회 임시회 도정질문이 막 시작된 제2차 본회의에서 오 지사는 김창식 교육의원의 질문에 불쾌한 심경을 여과없이 표출했다.(관련기사-초장부터 ‘기싸움’ 치달은 제주 도정질문...출산율 질의 중 높아진 언성)
출생률 개선 정책과 관련한 김 의원의 지적에 오 지사는 통계수치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파고들며 "왜 자꾸 그렇게 질문하시나?", "질문의 방식이 잘못됐다", "자료를 제출해라"라며 고조된 언성으로 답변을 이어갔다. 이를 지켜보던 제3자는 "지사가 면박을 줬다"는 표현을 쓸 정도였고, 현장의 한 도의원은 지사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뜻하지 않게 이 두 사례는 도정질문의 포문을 열면서 벌어진 '기선제압용'이 됐다. 언쟁을 벌인 상대들이 오 지사와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아니라는 점도 매우 공교로운 대목이다.
재선 제주도의원과 재선 국회의원을 거치며, 의회 시스템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점은 오 지사의 강점이다. 평소 오 지사도 "두 번의 도의원과 두 번의 국회의원 경험을 살려 제주도의회와 협력하면서 일하는 도정을 만들고 제주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겠다"며 의회주의자임을 자임하곤 했다.
그랬던 오 지사의 부적절한 태도에 대해 도의회 내부적으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문제를 삼는 분위기다.
A의원은 "지사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도정 질문의 주도권은 민심을 대변하는 의원들에게 있는 것이지 않나"라며 "매번 도정질문 때마다 고압적인 태도를 보면, 도정질문조차 자기 홍보의 시간으로 활용하려드는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어 "막말로 지사가 의원 시절에 도지사 답변태도가 이와 같았다면 문제 삼지 않았겠나"라며 "공식적인 자리라면 더욱 말을 조심했어야 했다. 지사 개인의 정치에 있어서도 좋은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B의원은 "자칫 지사의 답변 태도가 도민들에게 '불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냉정하게 도의원들에게도 이런 자세를 보이면 도민들이 무서워서 지사를 찾아갈 수나 있겠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질의응답 과정에서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지사가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신경질적인 언행이 고착화될 수 있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