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영웅’ 故 문형순 서장, 별세 57년만에 국립묘지 영면

유일하게 민간 공동묘지서 잠들다 국립 제주호국원 이장

2024-05-10     이동건 기자

정권의 학살 명령 거부한 진정한 경찰 '문형순'

문형순 서장의 영현이 영결식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제주4.3 때 무고한 학살 명령을 거부한 경찰영웅 문형순(文亨淳, 1897~1966) 서장이 국립묘지에서 영면했다. 

10일 경찰은 제주시 오등동 제주 평안도민 공동묘지에 있는 문형순 서장의 묘를 파묘해 화장한 뒤 유골을 국립제주호국원에 안장했다. 

경찰영웅 중 유일하게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문형순 서장이 국립호국원에 안장되는 순간이다. 

이날 경찰 뿐만 아니라 해군과 해병대, 4.3유족, 이북5도도민회 등도 참석해 문형순 서장에게 예우를 다했다. 

4.3 때 학살명령에 대해 ‘부당(不當)하므로 불이행(不履行)’이라며 거부한 문형순 서장 덕에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 강순주(94)씨도 직접 참석해 문형순 서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문형순 서장에게 경례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이충호 제주경찰청장은 조사를 통해 “문형순 서장은 4.3때 총살 명령을 거부해 소중한 생명을 구했고,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을 겪으면서 외압보다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경찰의 본보기가 됐다. 제주 경찰도 불의와 부당에 굴하지 않고 국민만 바라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애숙 제주도 정무부지사는 추도사에서 “의로운 경찰 문형순 서장의 고귀한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제 자리를 찾아 영면할 수 있게 된 문형순 서장에게 예우를 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제주도도 문형순 서장을 본 받아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역대 경찰영웅 중 유일하게 국립묘지에 모시지 못한 마음의 짐이 이제야 가벼워진 것 같다. 영웅을 존중하고 기억하자는 노력에 대한 보상같아 더욱 뜻깊다. 경찰은 영웅에 대한 예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형순 서장의 학살 명령 거부로 목숨을 부지한 강순주씨가 헌화와 분향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문형순 서장의 유골은 호국원 양지 바른 곳에 묻혔고, 강순주씨와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등이 허토해 감사를 표했다.  

1897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난 문형순 서장은 독립운동가의 요람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해 1920년대 만주 일대에서 일제에 저항했다. 의용군과 고려혁명군 군사교관 등으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식 군대인 ‘광복군’으로도 복무했다.

광복 이후 경찰에 입직한 문형순 서장은 제주에서 기동경비대장과 모슬포경찰서장 임시서리, 성산포경찰서장, 경남청 함안경찰서장 등을 역임했다. 

4.3이 겹친 시기 문형순 서장은 모슬포경찰서장과 성산포경찰서장 때 예비검속 등을 이유로한 도민 학살 명령을 거부하면서 수백명의 목숨을 살렸다. 

해병대원들이 문형순 서장 영결식에서 조총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2년 지리산전투경찰대 소속으로 참전했고, 이듬해 제주청 보안과 방호계장으로 퇴임했다.   

퇴임 이후 문형순 서장은 제주에서 쌀 배급소를 운영하면서 베풂을 실천하다 1966년 6월20일 제주도립병원에서 후손 없이 홀로 생을 마감했다. 

문형순 서장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은 무려 6차례나 거부됐다. 독립운동가 문형순과 경찰영웅 문형순이 동일인물이라고 입증할 수 있는 기록이 부족하는 이유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찾던 중 제주 경찰은 문형순 서장이 지리산전투경찰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토대로 한국전쟁 참전유공 국가유공자로 신청했고, 지난해 12월 국가보훈부에서 최종 선정됐다. 

별세 57년만에 문형순 서장이 국가유공자로 결정되면서 국립제주호국원 안장이 추진돼 올해 5월10일 최종 안장 절차가 마무리됐다. 

10일 새벽 문형순 서장의 묘를 파묘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문형순 서장의 유골이 국립제주호국원에 묻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창범 4.3유족회장이 문형순 서장 유골함에 허토하고 있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