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예산은 없고 간섭·무시만 있다” 오영훈 도정 문화예술행정 향한 질타

제주민예총·제주예총, 문화 예술 정책 토론회 24일 공동 개최 “정책 실종” 한목소리...약속한 패널 등 문화정책과 불참 눈총

2024-07-24     한형진 기자

“모 공립 박물관으로부터 운영위원으로 참여해달라고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물관장님에게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오영훈 제주도지사 비서실에서 저를 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유도 모르겠고 그냥 빼라고 합니다. 대체 지사 비서실에서 박물관 운영위원까지 간섭을 합니까?”

토론자로 나선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갑갑한 심정을 토해냈다. 다른 문제적 사례까지 밝히면서 오영훈 제주도정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정의 문화예술 분야에 있어 예산·정책 모두 실종됐지만 간섭만 남아있다는 뼈아픈 비판이 나왔다. 도정이 문화·예술계를 자치·분권 차원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면서, 예술을 사회적 가치이자 공공재로 인식하는 관점의 변화 역시 수반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제주민예총, 제주예총은 24일(수)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문화예술정책 토론회-민선 8기 제주도정 문화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오영훈 도정 출범 이후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문제점들을 짚고,(관련 기사 : [취재수첩] 오영훈 지사의 여사님은 왜 제주문예회관 무대인사에 등장했나) 개선점을 논의하고자 마련했다.

이날 토론회는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진행했다. ▲현 단계 지역문화예술정책의 진단과 전망(발표자 :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염신규 소장) ▲문화예술 정책의 자율성 위협하는 행정관료주의-제주문학관 사례를 중심으로(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김동윤 교수) ▲분권과 자치의 제주 문화도정을 상상하다(부산문화재단 정책연구센터 원향미 선임연구원)에 대해 발표했다.

제주민예총, 제주예총은 24일(수) 오후 2시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문화예술정책 토론회-민선 8기 제주도정 문화정책 무엇이 문제인가’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토론은 김명수 제주민예총 이사가 좌장을 맡아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 김선영 제주예총 회장, 이상철 제주국제관악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장, 이철구 한국음악협회 이사장, 박진희 상상창고 숨 대표 등이 참여했다.

토론회는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분석하는 거시적인 관점부터, 제주 안에서 분출되는 분야 별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미시적 관점까지 살폈다.

토론회 현장은 예총과 민예총 구분 없이 각 장르에 종사하는 지역 예술인들이 골고루 참여하며 눈길을 끌었다. 타 지역에서 온 참가자도 민예총과 예총이 합심하는 모습을 타 지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다면서 높이 평가했다.

오영훈 도정, 문화·예술인을 수평적 파트너로 존중하는가?

발제자 염신규 소장은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업무계획을 살피면서 “시민을 대상화 하는 현금성 지원, 바우처 지원은 확대됐으나 정작 시민들이 직접 문화의 주체로 참여하는 생활예술 지원과 정책은 위축돼 버렸다. 지역의 문화생태계를 만들어내는 지역문화 정책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관광정책과 개발 지향 사업이 남았다”고 비판했다.

염신규 소장은 “특히, 현장 중심의 문화정책을 만들어가는 기본 토양이 되는 문화·예술 관련 거버넌스가 정책 전반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행정에 의해 기능적으로 조정되고 감독되는 문화정책과 사업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상황”이라고 윤석열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현재 지역문화정책으로 제시되는 전략과 과제는 그 부분에서 매우 취약하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는 상향식 의제설정을 표방하고 있으나 전형적으로 하향식·공급형 문화정책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며 “자율성·능동성의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사업 단위로 바라보는 관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개선을 촉구했다.

원향미 선임연구원. ⓒ제주의소리

원향미 선임연구원은 ‘문화 분권·자치’의 관점에서 경기도 문화자치 기본 조례와 제주도 문화자치 실천 조례를 소개했다. 

경기도는 2021년 전국 최초로 문화자치 기본 조례를 제정했다. 제정 이후 문화자치 관련 사업을 시행했는데, 대표적으로 양주예총이 사업 주관단체가 돼 ‘양주시 문화자치 협의체’를 구성해 지역기반 문화예술활동을 수행하는 사례를 꼽을 수 있다. 제주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화자치 실천 조례를 2023년 12월 제정했다.   

원향미 선임연구원은 “두 지역의 문화자치 조례는 적극적으로 지역의 자율성을 강조한 문화자치 기반을 제시한 법규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화자치를 위한 의제들을 직접 문화 주체들이 제안할 수 있는 경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조치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행정영역에서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이나 계획 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절차에만 그치고 문화현장에 기반한 정책의제를 제기해 공론의 기회를 만드는 장치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재 제주 문화·예술 현장의 이슈의 원인은 행정과 민간주체들 간의 신뢰관계 부족, 수평적 관계 미형성이라고 생각된다. 여전히 민간 영역은 행정이 주도해서 정책을 내놓으면 따라야 한다는 불평등한 입장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역문화분권과 자치를 강조하면서도 지역 현장 주체들에게는 분권과 자치의 동등한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 문제가 오늘의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닐까 싶다”라며 “문화자치 실천 조례라는 제도적 기반을 활용해 지역 예술인들이 문화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마음대로 운영하는 제주문학관 ‘파행’

김동윤 교수는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정의 성공을 바란다”고 운을 떼면서 “세부 공약 가운데 ‘지역예술인 창작활동 지원’과 관련해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지적되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행정 관료주의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중론”이라고 피력했다.

김동윤 교수. ⓒ제주의소리

김동윤 교수는 제주도정의 ‘2025년 문화 분야 보조금 운용 혁신’ 계획을 두고 “심한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윤석열 정부의 과학기술계 R&D 예산 삭감으로 인한 파동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화예술 보조금을 ‘눈먼 돈’으로 취급하는 것이나 ‘R&D 카르텔’이라는 대통령의 언급이나 그 발상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특히 제주문학관 운영이 민선 8기에서 “파행” 상태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김동윤 교수는 기존 위원장 사정에 따라 2023년 1월 19일부터 제주문학관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그런데 임기 종료인 10월 19일까지 9개월 동안 제주문학관 운영위원회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다.

그해 8월 28일 제주도에 운영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지만 여러 이유를 들며 미뤄졌고, 9월 23일에야 열렸지만 당연직 위원인 제주도 문화정책과장과 간사인 문학관 업무담당 사무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주문학관 명예관장의 지시는 학예사를 비롯한 공무원들이 이행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관련 업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문학 전공자가 아닌 학예사나 직원이 프로그램을 자의적으로 협의 없이 운영하는 경우도 있었다. 공무원들이 도청만 바라보면서 제주문학관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을 가진 문학인들이 매우 많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김동윤 교수는 “제주문학관에는 팀장급(사무관)의 학예연구실장을 문학전문가(박사급)로 위촉해야 한다. 학예연구실장이 있어야만 명예관장을 제대로 보좌하고 도정과의 협의도 원활히 하는 가운데, 독립적인 문학관 업무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행정 관료주의가 만연하다는 점을 민선 8기 제주도정에서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 문화예술정책의 입안과 집행에서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수렴되지 않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라고 본다. 전 도정보다 후퇴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야말로 소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당부했다.

정책 실종된 오영훈 도정 문화예술 행정

토론자 박진희 대표는 “예술을 사회적 가치로, 공공재로 인식하는 철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술 창작활동에 대한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팔길이 원칙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도구적, 기능적 수단으로 구조화될 우려를 경계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박진희 대표는 “첫째는 지역사회의 변화하는 생태계를 인식하고 지역의 변화에 맞는 문화예술정책 구체화, 둘째는 문화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수용할 수 있는 공론장 활성화, 셋째는 문화의 민주화와 문화민주주의 두 가지 정책 전략의 균형, 넷째는 지원체계의 실효성과 성과관리에서의 성과지표에 대한 고민이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고려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토론자들. ⓒ제주의소리

토론자 김동현 이사장은 “오영훈 도정의 대표 문화·예술 공약으로 제주역사문화지구, 제주역사관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약은 문화예술 공약이 아닌 도심 지구단위 계획이자 시설 계획”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김동현 이사장은 “지금의 오영훈 도정의 문화예술 정책은 축적이 아닌 이벤트, 행사 등의 일회성 보여주기에 매몰되는 듯 하다”며 “문화예술섬 조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정책 수립이라는 장기적 관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뼈 있는 조언을 남겼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를 인용하면서 “지난 2년 동안 오영훈 도지사의 공식 발언 빈도 중에서 ‘문화’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며 “도정 책임자의 언어 빈도 분석은 문화에 대한 현 도정의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책 없는 문화행정’, 현 도정을 바라보는 솔직한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김선영 회장. ⓒ제주의소리

토론자 김선영 회장은 탐라문화제에 대한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밝혔다. 제주도는 최근 탐라문화제의 명칭과 성격을 개편하고자 제주예총에 이메일로 통보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관련 기사 : 제주도, 탐라문화제 명칭 ‘탐라국 글로벌해양문화축전’으로 변경 추진)

김선영 회장은 그동안 언급된 탐라문화제의 문제점에 대해 ▲집행위원회의 구조적 개선 필요, 실무 추진위원들의 전문성 확보 ▲재정 확충, 재정자립도 향상 ▲지역주민의 주도적인 참여, 주민에 의해 계승·발전하도록 예산 지원 필요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개선 방안으로 “우선 공동체 참여를 통한 제주인의 삶의 원형을 발현하는데 중점을 두는 축제로 변화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예술인 중심의 추진 조직에서 벗어난 제주인의 다양한 문화를 담아낼 수 있는 범도민적 기구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면서 “축제기획 단계부터 성과 보고까지의 장기적인 전담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한 축제위원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영 회장은 “제주지역의 기업체나 기관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하며, 탐라문화제를 대표하는 상징 프로그램 개발이 있어야 한다”며 “행정기관의 대폭적인 재정 지원과 축제기금 조성, 지역축제에 대한 문화체육관광부의 재정지원 확대에 따른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 무형문화재의 관광 상품화도 요구된다”고 짚었다.

토론자 이상철 위원장은 신산공원 내 영상문화진흥원 북쪽 분지가 야외공연장의 최적지라고 추천했다. 바닥만 정비하고 잔디만 심어서 야외공연장으로 활용하자고 제주시에 제안했지만, 난데없이 나무가 심어지고 체육시설이 들어서서 아쉬움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도민들의 음악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신산공원 서쪽 저류지를 가변형이 가능하다면 야외공연장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이상철 위원장은 “오등봉공원 민간특례개발사업으로 음악당을 건립하는데, 이미 같은 규모의 제주아트센터(슈박스형 종합공연장)가 있기 때문에, 기능적 목적을 달리하는 전문 공연장(빈야드형 콘서트 전용홀 등) 건립이 필요하다”며 “공간은 이미 확보됐으니 건축은 서두르지 말고 긴 안목에서 시간과 예산, 의지와 노력을 담금질해 제주의 예술적 자존심과 랜드마크가 되는 세계 수준의 콘서트홀이 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자유토론 순서에서도 성토는 끊이질 않았다.

양전형 제주문인협회장은 “14년 전부터 제주문인협회와 제주작가회의가 공동으로 위탁 운영한 제주문학학교가 올해 아무런 설명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없어졌다. 그 동안 도민들을 대상으로 교육, 강연 등을 최선을 다해 운영했는데 너무나 분하고 실망스럽다. 이대로 가면 제주문학학교를 폐교할 수밖에 없다. 제주도 문화정책의 민낯”이라고 분개했다.

이밖에 “제주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오늘과 같은 자리를 더 확장시키고 활성화하자”, “입장을 정리해서 공식적으로 도청에 제안하거나 민원을 제기하자”는 의견이 이어졌다.

토론회 모습. ⓒ제주의소리
토론회 모습. ⓒ제주의소리

소통하자고 자리 마련했는데도 회피하는 제주도 “한심”

이날 토론회는 김양보 문화체육교육국장이 토론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외 출장으로 불참했다. 대체할 문화정책과 공직자마저도 빠지면서 실망감을 자아냈다. 

김양보 국장은 사전에 제출한 자료에서 “문화예술 분야 보조금 지원 대상자에 대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보조금 지원을 받지 못한 문화예술단체에서는 소외감을 표현하고 있다”며 “이를 해소해 보다 많은 문화예술인들에 창의와 기회의 터전을 제공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공모사업 비중을 확대해 투명하고 균형 있는 보조금 운영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명시했다.

토론자 이철구 이사장은 “오늘 토론자로 문화체육교육국장이 참여하기로 했는데 불참했다. 도청에는 문화정책과장이 없느냐, 사무관은 없느냐, 주무관은 없느냐. 이런 태도는 우리 예술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서 무시하는 것”이라며 “예술인 한 명 한 명, 단체 회원 모두 표를 가지고 있다. 결집해서 우리 힘을 보여주자. 지원을 하던 안 하던 우리의 길을 걸어가자”고 강력하게 성토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모 예술인도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오죽하면 이런 자리까지 만들어서 소통을 하자는데, 국장이 아니면 과장·팀장이라도 와서 귀를 기울여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 오영훈 도정 문화·예술 행정이 문제다, 못한다고 말은 많이 들었는데 이 정도로 한심할 줄은 몰랐다”고 혀를 찼다.

토론회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