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 컨테이너서 공연하고, 작품 판매하는게 제주도 핵심 예술복지 정책?”
제주도 예술인복지 시스템 연구용역 결과 발표, 일명 ‘제주예술포차’ 논란 “경력에 도움도 안되는 최악 구상” 질타...용역진 “제주도 아이디어” 해명
제주도가 유명 관광지나 전통시장에 컨테이너를 놓고, 유료 공연을 하며 미술작품도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예술인복지 핵심사업’으로 제시해 논란이다. 공연·미술인들 모두 “최악의 구상”이라고 혹평했다.
문제의 내용이 등장한 것은 제주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추진한 ‘제주도 예술인복지 지원 시스템 구축 연구용역’이다. 2일 오전에 열린 용역 결과보고회에서는 2024년부터 2028년까지 5년 동안 97억7400만원을 들여 추진하는 ‘제주도 예술인 복지시스템 사업안’이 공개됐다. 용역은 홍익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맡아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진행했다.
용역진은 예술인복지 사업으로 19개 추진과제를 제시하면서, 그 중에서 4개를 핵심사업으로 꼽았다.
핵심 사업은 ▲제주예술활동교통비 지원 ▲예술인자립기반소득 ▲제주 예술인복지센터 서귀포센터 개소 ▲제주예술포차 도입이다.
제주예술포차는 일명 ‘제주족은전방(제주구멍가게)’이라고 불리는 사업이다. 용역진은 “시각·공연을 포함한 예술상품을 판매하면서 자립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제주예술포차는 도내 유명 관광지, 전통시장, 축제 등을 찾아 이동형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공연과 시각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단순 소개가 아닌 ‘판매’에 목적을 두고 있다. 용역진은 시각 예술품의 경우 현장 판매, 공연 예술의 경우 자발적인 관람료 지불로 예술인들이 수익을 얻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제주예술포차에서 발생하는 매출의 10%를 예술인복지기금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도 덧붙였다.
도입 첫 해인 내년에는 이동형 컨테이터 10대를 운영한다. 컨테이너 1대 당 예술가 5명 정도가 투입된다. 2028년에는 이동형 컨테이너를 50개까지 늘린다.
제주예술포차에 배정한 예산은 약 30억원. 예술인복지 시스템 전체 예산(97억7400만원)의 30% 수준이다.
문제는 야외 관광지에 컨테이너를 놓고 공연하며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활동이 과연 예술인 복지에 부합하는지, 현재 제주 예술계에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이번 용역 과정에서는 제주 거주 예술인 548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조사 결과 ‘예술인복지 증진을 위해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정책’으로 87%가 ‘지원’을 꼽았다. 지원에는 창작준비금, 예술인 파견지원, 돌봄 지원, 의료비 지원, 생활안정자금융자 등이 포함한다. ‘지원’ 다음으로는 예술인에 대한 기회소득제도(51.6%), 예술인 일자리 창출(43.1%) 등이 뒤를 이었다.
‘제주에 새롭게 필요한 예술인복지 사업’을 묻는 질문에는 ▲창작공간 지원(52.6%) ▲도외 지역 예술인 창작활동 교통비 및 여행자보험 지원(35.2%) ▲생애주기 별 예술인복지 지원 사업(35.2%) 등을 꼽았다.
6차에 걸친 예술인 대상 라운드테이블에서도 “창작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특히 장기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전문가 토론 역시 참가자 대부분이 “창작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예술 현장은 창작 지원 확대, 창작공간 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요구했는데, 이동형 컨테이너 투입은 합당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려워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대중공연예술인 A씨는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공연 예술인들에게 후려치는 액수가 아닌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제주예술포차에 참여시킨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수십억 들여 컨테이너를 제작해 가져다 놓느니 그 비용으로 차라리 소극장을 만들거나 지원하고, 창작 지원을 더 강화하는 것이 합당하다. 자신의 예술성을 키울 수 있는 창작에 힘을 실어줘서 예술인들을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설과 음향 장치를 가져다 놓는 것은 버스킹(야외공연)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다”고 부정적인 의사를 전했다.
시각예술인 B씨 역시 “이동형 컨테이너 전시는 이미 서울권에서 숲이나 공원을 중심으로 많이 시도했던 사업이다. 처음에는 잠깐 주목을 받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이 낮고 전시 여건도 좋지 않아 예술인 참여도 점차 떨어져 사업 자체가 흐지부지 됐다. 제주 작가들도 참여한 경우가 있는데 마무리가 썩 좋지 않았다. 이미 타 지역에서는 사장된 사업을 제주에서 왜 다시 하는지 의문”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그러면서 “공연도 비슷하겠지만 미술 쪽은 커리어(경력)가 핵심이다. 그런데 전시도 아니고 아트페어도 아닌 컨테이너 전시 판매는 커리어에 도움이 안되고 발품은 발품대로 많이 드는 정말 최악의 아이디어”라며 “물론 제주 안에 전시공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컨테이너 구입에 쓸 비용으로 제주 미술작가들의 발목을 잡는 타 지역 전시 운송비용을 대폭 지원해서 제주 밖으로 진출하게 도와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분위기가 제주에 아직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컨테이너에서 얼마나 작품을 사겠냐”고 비판했다.
제주예술포차에 대한 질문에 용역진은 “용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주도청이 제주예술포차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해명했다.
제주도 문화정책과장은 결과보고회에서 “용역 보고서에 제시된 사업들 가운데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안을 살펴보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오영훈 도정 문화·예술 정책이 번번이 논란(관련 기사 : “정책·예산은 없고 간섭·무시만 있다” 오영훈 도정 문화예술행정 향한 질타)이 되는 가운데, 제주예술포차는 현장 예술인들이 필요로 하는 복지·창작 정책과는 거리가 먼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