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만 외치다 멋쩍은 검찰, 재심 사각지대 피해자 최종 제주 4.3희생자 결정

고 한상용 유족 측은 일반 재심 절차 이어갈지, 특별재심 밟을지 고민

2024-08-15     이동건 기자

검찰의 계속된 반대로 제주가 아닌 광주에서 재심 절차를 밟고 있는 고(故) 한상용이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4.3중앙위)’에서 4.3희생자로 결정됐다. 

4.3희생자 결정 절차를 포함해 제주4.3에 대해 무지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으며, 한상용 유족 측은 앞으로 재심 절차에 대해 고민중이다. 

지난 13일 4.3중앙위는 제34차 회의를 열어 4.3희생자 49명과 4.3유족 8747명을 추가 결정했다. 이로써 2002년부터 누적 제주4.3 희생자는 총 1만4817명, 유족은 11만9241명으로 늘어났다. 

새롭게 4.3희생자로 결정된 49명 중 1명은 고 한상용이다. 

1927년 9월29일생인 한상용은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다가 토벌대에 끌려간 4.3희생자다. 

1949년 신원불상의 남로당원을 도왔다는 이유로 끌려가 갖은 고문을 당했다. 당시 한상용은 함께 고문을 받아 죽은 사람들이 트럭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목격했고, 한상용은 살기 위해 거짓 자백해 1950년 군가보안법 위반과 법령 제19호 위반 등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에 처해졌다.

만기 출소한 한상용은 인공관절치환수술을 받는 등 평생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7년 삶을 마감했다. 

한상용의 유족들은 2022년 10월4일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23년 1월16일자로 제주도에 4.3희생자 결정 신고를 했다. 

다른 지역에 살아 4.3 진상규명 이후의 상황을 잘 접하지 못한 유족들은 4.3희생자 결정 절차가 별도로 있었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제주지법이 2023년 1월19일 재심개시를 결정하자, 검찰은 같은 해 1월26일자로 즉시항고장을 제출해 반대하기 시작했다. 

4.3희생자 결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 한상용이 진짜 4.3희생자인지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을 폈다.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통해 4.3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로 규정돼 있다. 토벌대와 무장대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도민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빨갱이’로 살아야만 한 아픈 과거다. 

검찰 주장대로라면 재심 본안 심리를 통해 가리면 될 일이지, 애초 재심 자체를 막을 이유는 없다. 재심은 형사사법절차의 과오를 바로 잡는 모든 국민의 권리며, 4.3과 같은 과거사 뿐만 아니라 일반 형사사건 등에서도 종종 이뤄진다. 

2022년 10월 재심 청구, 2년 가까이 재심 본안도 받지 못한 한상용

진상조사 과정에서 위원들은 치열한 논의 끝에 무장대의 수괴급 인물을 30여명으로 분류했다. 무장대 수괴급 30여명은 4.3희생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논의 결과다.

한상용은 30여명에 포함되지 않을뿐더러, 4.3희생자 결정 과정에 가장 중요한 자료는 유족과 당시 마을 주민 등의 진술이다. 

진술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는지를 4.3실무위원회가 검토하고 또 검토한 뒤 4.3중앙위로 보내고, 4.3중앙위가 최종 결정하는 절차다. 

한상용의 유족들은 제주지법에서 재심 개시 결정이 이뤄지기 전 증인석에 앉아 직접 진술하기도 했다. 제주지법은 유족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지만, 검찰은 4.3희생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심에 반대했다. 

검찰은 한상용의 재심을 반대하는 다양한 의견을 내세웠지만, 현재까지는 관할 법원 문제만 법원이 인정하고 있다. 

특별재심과 직권재심의 경우 4.3특별법에 따라 제주지법이 관할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한상용처럼 특별재심과 직권재심 대상자가 아닌 피해자에 대한 관할 법원 관련 조항이 없다는 판단이다. 

이로 인해 한상용이 70여년전 재판을 받은 광주에서 재심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 광주지법도 한상용의 재심 개시를 결정했지만, 광주 검찰마저 한상용의 재심을 반대했다. 

광주 검찰의 즉시항고는 광주고법이 기각하면서 광주지법에서의 한상용 재심 개시 결정이 정당하다는 판단이 유지되는 가운데, 한상용이 4.3희생자로 결정된 상황이다. 

한상용 재심 사건은 ‘본안’ 심리를 한번도 갖지 못한 채 검찰의 반대가 계속되면서 ‘재심 개시 결정’에 대해서만 제주지법에서 1~3심을 1차례 거쳤고, 현재 광주지법에서 또 1~2심까지 거치면서 유족들의 속앓이만 계속됐다. 

검찰이 4.3희생자와 유족 결정 과정 등 제주4.3에 대해 공부했다면 한상용에 대한 재심을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방증이다.

한상용 유족 측은 고민에 빠졌다. 검찰의 반대로 2년 가까이 미뤄진 명예회복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을 텐데도 다른 4.3 피해자들을 위해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이 얽혔다. 

현재는 4.3희생자 아닌 신분으로 광주에서 재심 절차를 밟고 있는데, 4.3희생자로 결정되면서 특별재심 절차도 밟을 수 있다. 

특별재심은 까다로운 일반 형사소송법과 군사법원법에 따른 재심 절차를 비교적 간소화한 4.3희생자를 위한 ‘특별한 재심’이다.  

4.3희생자가 아닌 일반재판 피해자 자격으로 막바지에 다다른 일반 재심 절차를 마무리해 다른 4.3피해자들을 위한 좋은 선례를 남길지, 제주지법으로 사건 이송을 신청해 4.3희생자 자격으로 특별재심 절차를 밟아 빠르게 명예를 회복할지 등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한상용 유족 측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명예회복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며, 2년 가까이 ‘반대’만을 외친 검찰만 멋쩍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