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멈춘 검찰, 제주4.3 명예회복 ‘사각지대’ 故 한상용 재심개시 확정
한상용 유족 측, 다른 4.3 피해자 위해 광주에서 명예회복 선례 남기기로
검찰이 아직 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된 제주4.3 일반재판 피해자 고(故) 한상용 재심개시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포기했다.
1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지난달 5일 광주고등법원이 검찰의 ‘재심 인용결정에 대한 즉시항고’를 기각한 사건과 관련, 정해진 기간이 지나도록 검찰이 재항고하지 않으면서 그대로 확정됐다. 법적으로 한상용 사건에 대한 재심개시 결정이 정당하다는 의미다.
재심에 대한 검찰의 반대가 계속된 상황에서 한상용이 4.3희생자로 결정돼 특별재심 대상자가 됐는데, 특별재심은 제주지법이 관할한다.
아직 희생자가 아닌 일반재판 피해자로써 광주에서 재심 절차를 밟을지, 4.3희생자 자격으로 제주지법에서 특별재심 절차를 밟을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상용 유족 측은 광주에서 재심 절차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추후 자신들과 같은 4.3피해자들을 위해 명예회복 선례를 남기겠다는 의미다.
한상용 유족 입장에서는 2022년 10월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뒤 23개월만에 처음으로 검찰의 반대 걱정 없이 본안 심리를 준비하고 있다.
1927년 9월29일생인 한상용은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다가 토벌대에 끌려간 4.3 피해자다.
1949년 신원불상의 남로당원을 도왔다는 이유로 끌려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한상용은 함께 고문을 받아 죽은 사람들이 트럭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한상용은 군·경이 묻는 말에 ‘네’, ‘네’라고 대답했고, 그의 거짓말은 주요 증거로 활용돼 1950년 국가보안법 위반과 법령 제19호 위반 등 혐의로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살았다.
만기 출소한 한상용은 평생을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2017년 삶을 마감했으며, 4.3에 대해 언급하지 않다가 술에 취한 날이면 가족이나 주변 가까운 지인 등에게만 당시 받았던 고통을 털어놨다.
한상용의 유족들은 2022년 10월4일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2023년 1월16일자로 제주도에 4.3희생자로 결정해달라고 신고했다.
당시 희생자가 아닌 한상용의 유족들은 다른 지역에 살다보니 ‘4.3에 대해 언급하면 안되는 줄 알고 살아왔다’며 4.3희생자 결정을 위한 별도의 절차가 있다는 사실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바 있다.
유족 진술 등을 토대로 제주지법이 2023년 1월19일 재심개시를 결정하자, 검찰은 같은 해 1월26일자로 즉시항고해 반대했다.
4.3희생자 결정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 한상용이 진짜 4.3희생자인지 여부를 가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4.3 피해 당사자(한상용)가 아닌 유족들의 진술을 100% 신뢰할 수 없다는 취지다.
검찰의 항고는 광주고법과 대법원이 받아들였는데, 여러 주장 중 관할법원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4.3특별법상 희생자는 특별재심 대상자가 돼 제주지법이 관할하지만, 희생자가 아닌 일반재판 피해자에 대한 관할법원은 명시된 것이 없어 문제가 됐다.
사건은 한상용이 70여년전 재판을 받은 광주로 이송돼 관할법원 문제가 해결되면서 광주지법은 올해 2월 재심개시를 결정했지만, 이 마저도 검찰이 반대했다.
검찰은 4.3희생자가 아닌 한상용에 대한 재심을 반대해 즉시항고했으며, 광주고법이 올해 8월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4.3중앙위)’가 한상용을 4.3희생자로 결정했다.
광주고법의 검찰 항고 기각과 한상용의 4.3희생자 결정이 비슷한 시기 이뤄지면서 결국 검찰이 재항고를 포기한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