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원 망신에 “낄낄” 짧은 질문에 ‘박수’...도정질문 품격 어디로?

[초점] 도정질문 '거친 입' 도지사의 반복된 폭주...질문기회 스스로 내던진 의원들

2024-09-06     박성우 기자
제431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첫날인 3일 도정질문 마무리 발언 중인 김황국 제주특별자치도의원과 답변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오영훈 제주도지사.

반환점을 돈 민선8기 오영훈 제주도정의 지난 성과를 되돌아보고, 향후 임기의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한 제431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중 도정질문이 3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제주 제2공항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유의미한 질의가 오갔지만, 질문하는 도의원이나, 답변하는 도지사의 태도는 '품격을 잃었다'는 지적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번 도정질문은 첫날부터 오 지사의 돌발발언으로 파행을 겪었다. 오 지사는 도정질문 첫날인 지난 3일 국민의힘 김황국 의원(용담1.2동)으로부터 백통신원 방문-제2공항 입장 등 민감한 질문을 받고는 상대 의원을 겨냥해 "지적(知的) 수준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나"라는 정제되지 못한 발언을 내뱉었다.

시종 흥분된 태도로 일관하던 오 지사는 예의상 주고받던 의원들과의 악수도 무시한 채 본회의장을 떠났다. 도지사의 이번 막말은 제주 의정사에 전례가 없는 수준이다. 갈등이야 있을 수 있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이 기반됐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었다.

오 지사 스스로도 '아차' 싶었는지 발언 직후에 곧바로 사과했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쉽사리 주워담지 못했다. 이튿날 이상봉 의장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의힘 제주도당의 규탄 논평까지 나오자 거듭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오 지사의 태도가 입방아에 오르내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제415회 임시회, 올해초 426회 임시회 도정질문에서도 감정적 대응을 반복하며 뒷말을 낳았다. 심지어 지난 도정질문 말미에는 "답변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께 성숙되지 못한 표현으로 오해를 불러일으켰거나 마음을 아프게 한 게 있다면 전적으로 저의 불찰"이라며 사과했지만, 또 문제가 불거졌다.

A의원은 "오 지사가 도의원 시절, 또는 국회의원 시절 이와 유사한 취급을 받은 적이 있었는지, 이러한 취급을 받았다면 어떻게 행동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쓴소리를 건넸다.

온전히 오 지사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제주도의회 스스로가 도정질문의 품격을 떨어뜨린 장면도 연이어 목격됐다.

도정질문의 취지는 '견제와 비판', 더 나아가 '대안 제시'에 있다. 제주도백의 발언은 그 자체로 힘이 실리기 때문에 심도 있는 질문으로 확실한 답변을 이끌어내는 것이 도정질문의 목적이다. 도정질문이 '의정활동의 꽃'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제주도의회는 도정질문에 3일간의 일정을 할애하고 있다. 45명의 의원에게 고른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나름의 순번을 정했고, 이번 회기에는 23명이 질의에 나섰다. 도정질문은 그만큼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좋은 기회다.

그러나, 이번 회기 중 질문기회를 행사하지 않고 당일 급작스레 '서면질문'으로 전환한 사례가 연이어 발생했다. 서면질문은 질문지를 제주도에 보내면 추후에 도의회에 답변서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도민들에게 직접 노출되지 않고, 무엇보다 도지사의 직접적인 답변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미가 퇴색된다. 

서면질문으로 전환한 의원들 다수가 당일 본회의장에 출석하고, 점심식사까지 함께한 것을 보면 건강 등 일신상의 이유를 들기도 궁색하다. 이들이 상임위원장급 다선 의원들이 다수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3일간의 일정에 지친 동료의원들을 배려한 것인지, 예산정국에 도지사의 눈치를 본 것인지, 도지사와의 설전에 밀릴 것을 우려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보충질문' 기회 역시 포기하기 일쑤였다. 도정질문은 도지사와 실시간으로 질문을 주고받는 '일문일답' 외에 준비한 원고를 읽고 도지사의 발언을 요구하는 '일괄질문' 등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두 방식 모두 부여된 시간은 40분이지만, 일괄질문 직후에는 '보충질문' 시간이 추가로 주어진다. 일괄질문 방식이 자칫 도지사의 해명만 부각될 것을 우려한 형태다.

3일간의 도정질문에서 일괄질문 후 보충질문이 이어진 것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 어느 때부터 의회 내부에서 보충질문 생략이 '보이지 않는 미덕'이 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다. 퇴근 시간(?)이 빨라진 의원들이야 반색할 수 있지만, 권한을 부여한 도민의 입장에선 의원 스스로 권리를 내팽개친 사례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대하는 동료의원들의 반응이다. 서면질문으로 전환한다는 소식과 보충질문을 생략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면 본회의장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누군가의 박수 소리와 회중에서 터져나온 "역시!"라는 한 마디에 어떤 뉘앙스가 내포됐는지 의회 스스로 되돌아 볼 일이다.

도지사와 의원 간 설전 과정에서 동료의원이 면박을 당하는데도 같은 당 도지사의 편을 들며 분위기를 흐린 사례도 뒷말이 오간다.

오 지사의 '지적 수준' 문제 발언 당시 본회의장에선 지사의 태도가 아닌, 의원의 질문을 문제 삼는 발언이 속속 들려왔다. 독백의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서 충분히 식별 가능한 발언이었다. 심지어 노골적인 비웃음 소리도 새어나왔다.

이를 두고 의회 내부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표출됐다. 아무리 소속 정당이 다르다 한들, 도지사의 의회 경시 발언을 가벼이 여겨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B의원은 "누구 편을 들자는 것이 아니라 도지사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단호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도정질문을 두고 도지사의 '의회 길들이기'라는 도민들의 따가운 시선이 있는 상황에서 의회가 더욱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