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려나가겠지 싶더라”...제주형 ‘차없는거리’ 행사, 결국 공무원 동원령

[단독] 제주도, 전 부서-행정시 등 차없는거리 행사 참여 수요조사 뒷말

2024-09-23     박성우 기자

'제주형 시클로비아'를 표방하며 야심차게 준비한 '차 없는 거리' 행사를 앞두고, 제주도청과 양 행정시, 출자·출연기관 등 전 직원에 동원령이 내려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23일 오전 제주도청 본관 탐라홀에서 진명기 행정부지사 주재로 긴급 현안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오는 28일 열리는 '걷는 즐거움, 숨 쉬는 제주!' 행사에 도, 행정시, 출자·출연기관의 참여를 독려했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제주시 연북로 2km 구간에서 진행되는 이 행사는 도민의 건강생활 활성화를 위해 6차선 도로의 차량을 통제하고, 볼거리·즐길거리를 채워넣는 형태로 진행된다.

콜롬비아 보고타시의 '시클로비아'를 모티브로 삼아 차량 탄소발생을 억제하고, 도민의 걷기 활동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겠다는게 주된 목적이다.

다만, 행사 취지와는 별개로 결국 행사장 인원을 채우기 위해 공직 내부 '동원령'이 발령됐다는 점에서 뒷말이 오간다.

제주도는 행사를 앞두고 '차 없는 거리 행사' 사전신청을 요하는 공문을 전 부서와 모든 산하기관에 발송했다.

공문에는 '가족과 함께 임직원들이 걷기 행사에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기관 홈페이지 등을 통한 홍보에도 적극 협조하여 주시기 바란다'는 내용이 담겼다.

독려의 형태를 띄었지만, '행사 참여인원에 대한 사전 수요조사'를 명목으로 기관별 참여예정 인원을 첨부할 것을 요구하며 의미를 퇴색시켰다.

사실상 부서별 참여인원 할당량을 부여한 것이란게 공직 내부의 불만이다.

공무원 A씨는 "차 없는 거리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또 불려 나가겠구나' 하는 생각 먼저 들더라"며 "직원들은 부서장 눈치를 보고, 부서장도 차마 미안한 마음에 직원들 눈치를 본다. 이게 맞는건지 싶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공무원 B씨는 "이번 도정 들어 동원과 관련한 뒷말이 유독 많지 않았나. 삼일절, 광복절 행사에도 공무원을 동원하고, 국회의원 간담회에도 동원해 뒷말이 많았는데, 문제 의식이 없는건가 싶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행사 참여 여부와 별개로 걷기와 관련된 특정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을 모든 직원에게 설치하도록 요구해 '이런 것 까지 관여하려 드느냐'며 또 다른 논란을 키웠다.

직원 동원 외에도 '차 없는 거리' 행사에 대한 우려는 다방면으로 표출돼 왔다. 

제주시내권 주요 도로를 통제하는 행사를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급작스럽게 발표했다는 점은 논란을 샀다. 아무리 차량 통행량이 적은 주말 오전 시간대라 하더라도 차량 통행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행사 구간에 위치한 상권의 피해까지 고려하면 걷기 운동을 장려하는 이 행사가 화급을 다툴만한 사안이었는지, 꼭 연북로를 행사 장소로 선정해야 했는지 뚜렷한 근거가 없었다.

행사 참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당일 500면 가량의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계획도 취지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 제주도 관계자는 "처음 시도하는 행사인만큼 우려가 많은 것 또한 알고 있다. 처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차원으로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