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40년 전 국가폭력 민낯…양의남·김치병·故김주섭 ‘진실규명’
[제주간첩조작사건] 한라기업사 끌려가 3~4일간 폭행·고문 등 가혹행위 진실화해위 “위법한 공권력 중대 인권침해, 국가 사과-명예회복 조치” 권고
군부 독재정권의 추악한 민낯이 한번 더 드러났다. 죄 없이 잡혀가 각종 폭행, 고문 끝 한순간에 간첩이 된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풀리는 순간이다.
무력으로 국권을 찬탈, 마구잡이로 인권을 유린하고 국민을 죽여버리던 시절 전두환 정권은 민간인들을 굴비 엮듯 줄줄이 ‘간첩’으로 만들었다. 제주에서는 그 피해가 더 심각했다.
[제주의소리]가 꾸준히 보도하고 있는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인 양의남, 김치병, 故김주섭(관련기사 = 일본 여행 다녀왔는데 “이북 몇 번 오갔냐”…생뚱맞은 추궁 ‘끝없는 조작’)이 당한 인권침해가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 이하 진화위)는 24일 제87차 위원회에서 이들이 당한 ‘1984년 제주 보안부대에 의한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로 판단, 진실규명 결정했다.
이들은 1984년 10월 13일 ‘6개망(網) 간첩단’ 조작사건에 휘말린 또다른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서경윤을 알거나 같은 동네에 살았다는 이유로 보안부대에 붙잡혀갔다. 국가는 이들에게 하지도 않은 간첩 행위를 도와줬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웠다.
이들이 끌려간 508보안부대는 민간 기업 형태 ‘한라기업사’라는 이름으로 존재한 보안사의 제주지부다. 당시 도민사회에는 ‘한라기업사에 다녀오면 반병신이 된다’는 소문이 떠돌았고 실제로 다녀온 사람들은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평생 안고 살아가고 있다.
양의남, 김치병, 故김주섭은 1984년 7월쯤 한라기업사에 끌려가 불법 수사를 받던 서경윤과 친분이 있거나 접촉했다는 이유 등으로 영장 없이 연행돼 불법구금 상태에서 고초를 겪었다.
진화위는 국군방첩사령부, 국가기록원, 대법원 판결문 등 수사‧재판 기록을 조사하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사건 담당 수사관 등의 진술을 토대로 이들이 ‘죄 없이’ 끌려가 가혹 행위를 당했음을 확인했다.
진화위 조사에 따르면 양치남은 1984년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3일간, 비슷한 시기 김치병과 故김주섭은 각각 3박4일, 2박3일간 불법 구금됐다. 수사 과정에서 이들은 폭행과 고문을 겪으며 허위진술을 강요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이 연구책임을 맡은 ‘2022년 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에서 양의남은 동네 사람인 서경윤을 아느냐는 질문에 “안다”고 대답한 뒤 다짜고짜 “그와 함께 북한에 몇 번 건너갔다 왔느냐”는 등 답이 정해진 추궁을 받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는 질문이 아니라 당장 북한을 몇 번이나 오갔느냐는 비논리적 질문이었다. 당연히 논리는 없었다. 간첩을 만들어야 했기에 어떻게든 엮어야 했기 때문.
다녀오지 않았다는 대답과 함께 양의남은 입고 있던 옷과 상처가 달라붙어 벗을 수 없는 지경까지 모진 매질을 당했다. 거짓 자백을 한 뒤 풀려난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인조 관절을 심고 지금도 왼쪽 어깨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내게 뭔 죄가 있다고 이렇게 반병신을 만듭니까? 이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부분이죠. 좌우지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문초당하고 죽어가는 일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있어서 안 될 일이라고 보고, 앞으로는 나 같은 억울한 사람이 두 번 다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양의남 씨 인터뷰 중)
김치병 역시 같은 조사보고서에서 서경윤과 함께 간첩 행위를 했다는 억지 주장과 함께 폭행과 협박을 당했다. 그는 당시 수사관이 ‘서경윤에 포섭돼 일본으로 가 간첩 활동을 했다’는 각본을 보여주며 이대로 진술하라고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각본을 그대로 받아쓰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온갖 고문을 받았다. 결국 못 이겨 각본대로 쓰니까 이상하게도 오히려 나를 풀어줬다”고 말했다.
故 김주섭은 보디빌딩 제주도 메달리스트일 정도로 건강했지만, 물고문과 전기고문 등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정신적 후유증으로 매일같이 술을 마시다가 40대 초반, 젊은 나이에 위암과 간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친형인 김무사 씨는 “동생은 한라기업사에 끌려가 물과 전기 등 온갖 고문을 받았다고 했다”며 “집에 돌아온 동생 온몸에는 피멍이 들어있었다. 이후 고문받은 생각만 나면 미쳐버리겠다며 정신적 후유증으로 매일 술을 마셨고 결국 40대 초반 암으로 사망했다”고 말했다.
관련해 진화위는 국가를 상대로 “불법구금, 가혹행위 등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해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다하라”고 권고했다.
한편, 서경윤은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가석방된 뒤 1기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 이후 진행된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번에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양의남, 김치병, 故김주섭은 재판을 받지 않아 무죄 판결을 직접 받을 수는 없다. 다만 진실규명 결정문을 받은 날로부터 3년 이내 국가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다.
▲동아일보 = [간첩 6개망 6명 검거] (중략) 간첩 서경윤은 69년 1월 일본 오사카에 사는 당숙을 찾아 일본에 밀항했다가 친척들을 통해 조총련 공작지도원 서상화에게 포섭돼 군사기밀 탐지 등의 지령을 받고 70년 6월 귀국, 당시 해군 상사인 친형 서병윤(46)을 통해 진해 해군기지의 주요시설 함정 동향 등 각종 군사정보를 수집, 보고. 73년 1월과 81년 5월 두 차례나 일본에 밀항해 김해공항의 사정 등을 탐지, 보고.
▲조선일보 = [간첩 6개망 6명 구속] 국군보안사령부는 13일 북괴지령에 따라 재일동포 모국유학생으로 가장하여 국내에 침투, 군사기밀을 탐지하고 학원소요를 유도하려던 윤정헌(31.고려대 의학과 3년) 등 6개 간첩망 6명을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보안사는 또 군사기밀을 누설한 서병윤(46.전 해군 준위)을 불구속 입건하고 이들을 신고하지 않은 관련자 6명을 훈방조치했다고 밝혔다. 보안사는 “북괴는 이미 미주-동남아 등지의 해외거점을 활성화하여 해외교포 2세 학생들을 포섭하고 이들을 국내에 침투시켜 학원소요를 일으키게 하고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토록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국민 모두의 확고한 안보의식으로 북괴의 적화야욕을 분쇄할 것”을 당부했다. 간첩 6명의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중략) 서경윤(39.무직)=취업차 일본으로 밀항, 고모인 조총련 간부(서상화)에게 포섭돼 해군 군항기지 내 주요시설, 기지내 경비상황, 해안초소 경계태세 등 군사기밀을 탐지 보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