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치러진 ‘제주 차없는 거리’ 행사...“만족-짜증” 엇갈린 현장 평가
건강지표 개선-탄소중립 '두마리 토끼'...교통혼잡-상권피해 가시화
첫 시작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제주형 '차 없는 거리' 행사가 28일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 짧고 굵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수 많은 방문객이 몰리며 성황리에 행사를 마친 이면에는, 누군가의 피해-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를 남겼다.
'걷는 즐거움, 숨 쉬는 제주!'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날 행사는 도민의 건강 증진과 걷기 문화 확산을 목표로 기획됐다. 건강지표 개선을 위한 걷기 생활을 활성화하고, 차량 통행을 줄여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게 행사의 주된 목적이다.
제주시 연북로 제주문학관에서 메가박스에 이르는 2km 구간의 행사장은 6차선 도로 중 3차선은 걷기 전용으로, 2차선은 자전거·인라인스케이트 전용 도로로 개방했고, 1개 차선은 버스나 비상차량이 이동할 수 있도록 비워뒀다.
적지 않은 방문객이 몰리며 행사장은 이른 시간부터 활기를 띄었다. 아이의 손을 잡은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눈에 띄었고, 유모차를 끌거나 반려견과 함께 걷기에 동참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주시 아라동에 거주하는 정우정씨는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행사의 취지도 좋고, 즐길거리도 많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됐다"며 "막상 아이가 차로만 다니던 도로를 걸어다니는 것을 신기해하는걸 보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특히 2차선 도로를 온전히 누빈 자전거 이용자들은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집 구석에 놓여있던 자전거를 근 1년만에 꺼냈다는 김동균씨는 "평소엔 자전거도로가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다보니 보도로 다닐때나, 차도로 다닐때나 항상 불안하기 마련이었는데, 이렇게 마음 편히 뻥 뚫린 도로를 달려보기는 처음인 듯 하다"며 "이런 기회를 자주 제공해야 자전거를 타는 도민들도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행사장에는 걷기와 자전거 라이딩 외에도 18개의 건강체험 홍보 부스, 버스킹 공연, 체험 프로그램 등이 마련됐다.
개막식에선 도내 주요 기업과 단체 등이 참여한 '걷기 기부 캠페인 업무협약'이 체결됐다. 이날 걷기 행사를 기점으로 11월말까지 2개얼동안 진행되는 이 캠페인은 도민 10억 걸음 달성 시 2억원의 기부금이 조성되는 내용이다. 모바일 앱인 워크온(Walkin)을 통해 도민 걸음 수 1걸음당 0.2원의 기부금이 적립된다.
행사의 취지에 맞춰 대중교통을 이용해 행사장을 찾은 오 지사는 개막식 직후 직접 휠체어 이용자들과 함께 4km 구간을 걸으며 마주하는 도민들을 독려했다.
오 지사는 "도로를 차량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해 왔다"며 "행사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과 불편을 호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건강한 제주와 탄소중립 실천이라는 대의를 위해 도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동참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 주말 아침 도로 통제에 '운전자 짜증 유발'...곳곳에서 실랑이
화려한 행사의 이면에서는 당초 우려됐던 문제들이 적잖이 표출됐다. 우선 도로 혼잡을 피할 길은 없었다. 행사장 양 끝단과 연북로와 연결된 지류 도로 곳곳에서는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사전에 행사 소식을 접하지 못한 차량 운전자들은 불만 섞인 표정으로 핸들을 꺾어야 했고,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운전자들의 짜증을 감수해야 한 것은 현장에 배치된 애먼 안내요원들이었다.
억지 유턴을 유도하려다보니 도로에 멀쩡하게 설치돼 있던 중앙선 분리봉을 뽑아낸 구간도 있었다. 3시간짜리 일회성 행사를 수행하기 위해 도로 시설물까지 철거된 장면이었다.
차선이 그려져있지 않고 수풀이 우거진 농로길에서는 차량이 뒤엉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행사장 초입에서 약 70m 가량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병원을 드나드는 과정에서 혼잡이 빈번했다.
소아과-산부인과 운영을 병행하고 건강검진을 받는 이 병원 출입을 위한 차량 통행이 빈번했고, 한 차선으로 차량 출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정작 연북로 상의 장례식장과 대형마트 주차장에는 사전 협의에 따라 행사 관계자와 간부 공무원 등의 차량이 몰리는 역설적인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 "오전 시간 장사 다 날렸다"...연북로 상권 '개점 휴업'
주변 상권의 피해도 가시화됐다. 연북로는 도로의 특성상 보행자가 아닌 차량 이용자들이 주로 찾는 상권이 형성된 곳이다.
업체와의 계약을 필요로 하는 조명가게 관리자 A씨는 "오전에 찾아오겠다던 손님들의 일정을 다 오후로 미뤘다. 오전 시간 장사는 거의 다 날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A씨는 "직원들이 있는 동안에 (관계 공무원이)행사 개요에 대해서만 슥 말해놓고 돌아가 모양인데, 호소할 길이 없지 않나"라며 "제주도의 제안으로 도로 앞에 별도의 부스를 설치하기는 했는데, 큰 효과가 있을까 싶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 밖에도 영업이 한창이어야 할 한 가구업체는 주인이 자리를 비운 개점 휴업 상태였고, 도로의 차량이 사라지자 존재 가치를 잃은 주유소는 아예 문을 걸어잠궜다. 그나마 평소 드라이브스루로 운영되던 유명 프랜차이즈 업소를 찾는 발걸음은 간헐적으로 유지됐다.
행사 구간에는 제주도내 최대 규모의 장례식장이 위치해 있어 상주는 물론 조문객들도 불편을 겪어야 했다.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 입구에 선 B씨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연신 휴대폰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B씨는 "조문하러 오려는 손님이 '도로가 다 막혀있다'고 해 일부러 나와있다. 어떻게 돌아서 오는지 제대로 안내받지도 못한 것 같더라"라며 "경황이 없는 중에 이런 행사가 열리는 줄 어떻게 알았겠나. 장례식장이 운영중인 걸 뻔히 알면서도 왜 여기서 행사를 기획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터뜨렸다.
◇ 완주 참가자에 탐나는전 5000원 지급...적정한가?
왕복 4km 걷기를 완주한 이들에게는 탐나는전 상품권 5000원권이 지급됐다. 출발점에서 등록 팔찌를 받아 반환점에서 스티커를 찍어오면 상품권을 제공하는 식이다. 자전거나 스케이트 이용자의 경우 왕복 2번을 반복하면 상품권을 제공했다.
상품권 지급 행사는 참여가 줄을 이으며 1시간여만에 준비된 분량이 동났다. 앞서 여러 홍보를 통해 '행사 참가자들에게 소정의 보상을 제공하겠다'는 소개가 있었지만, 현금성 상품권을 지급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다.
이마저도 출발지점과 반환점에 대한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참가자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출발 지점인 제주문학관 측에서 참여한 인원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반환 지점인 메가박스 측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행사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차량을 버려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들은 중앙로 정류장에서 하차했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했다.
◇ 도청 공무원은 '1만원', 행정시 공무원은 '0원'
[제주의소리] 보도를 통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던 '참여 공무원 식대 1만원 지급' 사례도 뒷말을 낳았다. 제주도청 소속 공무원에만 지급되고, 행정시 공무원에는 지급되지 않으면서다.
현장에서 마주한 제주시 직원 C씨는 "뭘 받고자 참여한 것은 아니었고, 아무리 적은 돈이라 하더라도, 도청 직원들에게만 제공되는 것을 보면 시 직원들의 마음은 어떻겠나"라고 말했다.
C씨는 "제주시 내부에서는 전임 시장이 그렇게 열심을 다해 추진하려 했던 '(관덕정)차없는 거리' 행사는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번번이 막아왔으면서, 도지사가 추진하는 행사는 말 한 마디에 성사되는 것을 보고 박탈감을 토로하고 있다"는 뒷이야기를 전해줬다.
전반적인 행사 진행상황과 관련해 제주도 관계자는 "부족한 점이 없을 수 없었겠지만, 도민들의 건강활동 개선이라는 목표에 있어서는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며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에 앞으로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사의 강경한 의지를 통해 행사가 성사될 수 있었다"며 "타 지역에서 모범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차없는 거리' 행사 역시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았다. 이 계기를 통해 정기적으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