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악한 권력의 ‘간첩 낙인’ 지울까…제주 김양진·故김두홍 ‘재심개시’ 결정

[제주간첩조작사건] 법원, 불법체포·감금 등 “재심사유 있다” 뒤늦게나마 억울하게 새겨진 ‘빨간 줄’ 지울 수 있을까 주목

2024-11-06     김찬우 기자

권력을 손아귀에 움켜쥔 추악한 군사독재정권의 희생양이 된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들이 법의 판단을 다시 받게 됐다. 이번에는 ‘합법’ 적인 재판을 통해서다. 

최근 서울고등법원과 제주지방법원은 피해자인 김양진, 故김두홍에 대해 각각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에 따른 ‘재심 권고’ 후속 조치다.

이들에게 씌워진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간첩미수 등이다. 부정하게 권력을 움켜쥔 군사독재정권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국민을 간첩으로 몰고 반공 분위기를 조성했다.

죄 없이 끌려간 피해자들은 각종 고문과 협박 끝에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제대로 된 변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속전속결 유죄판결을 받았다.

과거사 진실을 규명하는 진실화해위는 두 명의 피해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수사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고문, 가혹 행위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이어 재심 등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김양진 어르신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모습. 공안당국은 일본에 살다 온 김 어르신에게 모진 고문을 가해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증거재판주의’ 사라진 재판, 사형→무기징역→15년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 간첩미수 혐의를 뒤집어쓴 김양진(93) 어르신은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 및 몰수를 선고받은 억울한 과거 판결을 다시 끄집어내 심리를 시작하게 됐다.

어르신은 1972년 8월, 간첩을 만들려는 권력에 의해 적법한 영장 없이 불법으로 구금당한 채 구타와 잠재우지 않기, 굶기기 등 각종 고문과 협박, 폭행을 비롯한 가혹 행위를 겪어야 했다. 

공안당국은 김 어르신을 구속영장 없이 불법 연행한 뒤 3일 뒤에서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그러니 구속영장 발부 이전까지 시기는 모두 불법체포, 불법감금에 해당한다.

관련해 진실화해위는 지난 4월 “피고인이 수사기관으로부터 불법연행 및 불법구금, 진술 강요와 가혹 행위 등을 당하고 처벌받아 인격권, 신체 자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진실규명 결정했다.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서울고등법원은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와 수사기관 연행 당시 사정, 그 이후 수사 경과 등을 볼 때 수사관들이 김 어르신을 영장 없이 강제 연행해 구속영장을 발부받기 전까지 불법체포, 감금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불법 구금과 고문으로 얻어낸 허위자백 자술서와 조악한 증거만으로 검찰은 무려 ‘사형’을 구형했고 판사는 속전속결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어르신은 이후 항소심을 통해 최종 15년형을 확정받고 옥살이를 했다. 

“제일 고통스러운 건 육체적인 고통보다 잠을 못 자게 하는 겁니다. 취조관 2명이 서로 교대해 가며 취조 하는데, 하루 이틀까지는 몰라도 잠을 못 잔 채 일주일가량 지속되니까 나중에는 날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했지?”라고 물으면 “예!”하고. “했지?, 예!” 그걸로 끝났어요. 그들은 내게 “그래도 너는 잘 봐준 거다. 재판에 가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했습니다.”(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김양진 씨 인터뷰 중)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자 故 김두홍 씨는 한국전쟁에 뛰어들어 조국을 지켜낸 영웅이었다. 그러나 공안당국은 이런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고 모진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받아낸 뒤 간첩을 만들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 간첩 돼버린 참전용사, 일본 친척 만났다고 징역형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 故김두홍 씨는 일본에 거주하는 큰집의 제사와 벌초를 제주에서 대신한 뒤 초청받은 일본에 관광차 다녀온 이후 한순간에 간첩 누명을 썼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친척을 만났다는 이유로 ‘간첩’이 돼 1983년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 억울함을 이승에 남겨둔 채 떠났다.

고인은 1982년 7월 20일 제주경찰서 대공과 수사관들에게 붙잡혀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8월 5일까지 17일간 불법 구금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진술을 강요받으며 가혹한 고문도 받았다. 

진실화해위는 조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수사과정에서 범죄 사실을 받아내기 위해 진술을 강요하며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 행위가 벌어졌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어 당시 수사관이 ‘검찰 지휘가 있기 전까지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으며 대기하라’고 한 사실, 검찰에서도 고문을 가할까 봐 겁나 자백했다는 고인의 진술 등이 파악됐다.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제주지방법원은 제주경찰서 대공과 소속 수사관들에 의해 임의동행 형식으로 영장 없이 강제연행된 이후 구속영장을 받기까지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무서워하는 게 병이 됐어요. 걸핏하면 “(나를) 잡으러 온다!”고 해요. (나는) “누구 올 사람 없다.”고 해도 막 숨어요. 그땐 땔감으로 보릿대, 유채낭을 사용하던 시절인데, 남편은 누가 자기를 잡으러 온다면서 보릿대를 쌓아놓은 곳으로 가서 그 속에 숨기도 했습니다.” (제주간첩조작사건 피해실태 조사보고서 고정일 씨 인터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