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한 장면 보는 듯...민주주의 몸소 배운 살아있는 교과서”

윤석열 불법 비상계엄 지켜본 제주 학교 분위기 “학생들 수업 시간에 잇달아 질문”

2024-12-04     한형진 기자

“선생님, 윤석열 대통령은 왜 계엄령을 선포했나요?”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이 ‘3시간 천하’로 끝난 가운데, 제주지역 학교는 역사의 순간을 두 눈으로 지켜본 청소년들의 호기심과 질문으로 가득 찼다. 교사들은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과정은 학생들에게 말 그대로 살아있는 교과서가 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4일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는 초겨울이었지만 45년 만에 벌어진 비상계엄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밤잠을 설쳤다. 

윤석열 대통령은 3일 밤 10시28분 긴급 담화를 통해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곧이어 밤 11시를 기해 계엄사령부는 정당 활동 금지를 포함한 포고령 1호를 발령했다. 

같은 시각 계엄군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면서 대혼란이 빚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여야 의원 190명은 4일 오전 1시쯤 본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그리고 오전 4시30분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발표한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후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했다. / 사진=오마이뉴스
대통령의 비상계엄 후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했다. / 사진=오마이뉴스

이 과정에서 무장한 특수부대원이 창문을 깨고 국회로 진입하고, 동시에 남녀노소 많은 시민들이 국회로 몰려들어 계엄에 반대하는 장면이 TV와 SNS 등을 통해 전국에 송출됐다. 이번 계엄 사태는 실행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불법성과 함께 야당 주도의 탄핵 추진, 주동자의 내란죄 처벌 등 당분간 한국 사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킬 태풍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제주 학생과 교사들은 TV와 유튜브, SNS 등으로 생생한 현장을 지켜봤다. 특히 계엄령으로 인한 휴교 등 여파 때문에 교사들은 뜬 눈으로 밤을 보냈다.

제주지역 모 초등학교 교사 A씨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순간부터 선생님들 카톡방은 불이 나기 시작했다. 휴교를 하는 건지, 학사일정은 어떻게 차질을 빚을지, 4일에 정해진 일정은 어떻게 소화할지, 계엄사 포고령에 명시된 집단행동 금지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밤사이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아침에 학교에 와서도 교사들 사이에서는 2024년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한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저학년들은 큰 반응이 없었지만 고학년들은 ‘선생님, 어제 뉴스 보셨어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일단 어린 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중요했기에 걱정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안심시켰다”면서 “이번 사태는 있어서는 안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피력했다.

국회 출입구를 봉쇄하는 군인들 / 사진=오마이뉴스

중학교 교사 B씨는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이 질문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왜 계엄령을 선포하는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인지 물어볼 뿐만 아니라, 전날 밤에도 등교 여부를 문자로 물어봤다는 것.

B씨는 “부모님과 함께 밤새 뉴스를 지켜봤다는 아이들부터,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장면 같다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물론 교사로서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고 진정시켰지만, 중학생 정도 되니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계엄 사태를 직접 목격한 이번 경험은, 학교에서 민주주의나 헌법에 대해 글로 배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면화된 학습이 됐을 것”이라며 “대통령의 비상식적인 결정에 국회가 즉각 대응하며 해결했고, 평범한 국민들이 모여서 군인을 막는 장면은 말 그대로 살아있는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고등학교 교사 C씨는 “국정이 워낙 혼란스러운지 몰라도 얼마 전 계엄에 대해 질문한 학생이 있었는데, 어제 사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학생들의 의견에 선생님들이 꽤나 애를 먹었을 것”이라면서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교과서로 쭉 배웠을 텐데, 계엄 사태를 보면서 어느 군부독재 시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혼란스러웠을 수도 있고, 영화 속에서 보던 장면이 등장해 공포심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의식을 가진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어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종 집기들로 바리케이트를 쳐 놓은 모습 / 사진=오마이뉴스
국회 앞으로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 사진=오마이뉴스

고등학교 역사 교사 D씨는 “마침 오늘 수업이 현대사에서 4.19혁명 부분이었다. 비단 역사 수업이 아니어도 오늘 모든 교실은 계엄에 대한 질문 뿐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D씨는 “학생들의 많은 질문과 의견에 대해 현재 정치 상황을 설명하기 보다는, 어제 있었던 사실과 과거 한국에서 벌어졌던 계엄령, 특히 첫 비상계엄이었던 여순사건이 4.3 때 계엄으로 확대되면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흐름으로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학생들은 교과서 속 텍스트로 배웠던 군부독재 시기의 기본권 제한을 바로 어제 비상계엄을 통해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사적인 입장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이 역사의 현장이 될 수 있고, 과거가 오늘 날에도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깨우침도 얻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제주도교육청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실·국장 및 과장급 간부 공무원들을 비상소집해 교육감 주재 회의를 진행한 바 있다. 계엄 해제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업무·학사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