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 경력 은퇴 해녀들 테왁 전하며 “제주바당 잘 지켜사허여”

제주해녀문화협회 ‘제4회 해녀은퇴식’ 열어 한림읍 금능‧월령리 26명 축하받으며 은퇴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명예지도자‧스카프 헌정

2024-12-11     김봉현 선임기자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이장 송문철)와 월령리(이장 강한철)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협회(이사장 양종훈)가 주관한 ‘제4회 제주해녀 은퇴식’이 9일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플레이 사계에서 열렸다. 한국걸스카우트연맹(총재 김종희)가 지난 3회 은퇴식에 이어 이번에도 은퇴 해녀들에게 명예지도자증과 세계걸스카우트를 상징하는 녹색 스카프를 헌정했다. ⓒ제주의소리 

“게나제나 75년이나 해녀로 살았수다. 먹엉 살젠허난 바당에 나강 물질 처음 시작헐 때가 생각남수다. 제 나이 아홉 살 때우다. 그때부터 물질을 시작허영 죽도록 살도록 숨이 막히게 일해십주.”(그나저나 75년을 해녀로 살았습니다. 먹고 살려니 바다에 나가서 물질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제 나이 아홉 살 때입니다. 그때부터 물질을 시작해서 죽을 둥 살 둥 숨 막히게 일했습니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이장 송문철)와 월령리(이장 강한철)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협회(이사장 양종훈)가 주관한 ‘제4회 제주해녀 은퇴식’이 9일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플레이 사계에서 열렸다. 

한국걸스카우트연맹(총재 김종희)과 제주해녀서포터즈, NH농협 제주지역본부와 ㈜성우서비스 등이 후원한 행사다. 농협은 해녀들에게 햅쌀을, 성우서비스는 은퇴식 공간(플레이 사계)과 점심 식사를 후원하는 방식인 말 그대로 ‘십시일반’ 후원에 참여했다. 

한국걸스카우트연맹은 지난 3회 은퇴식에 이어 이번에도 걸스카우트 명예지도자증과 세계걸스카우트의 상징인 연초록색 스카프를 은퇴 해녀들에게 헌정했다. 앞으로도 한국걸스카우트연맹은 은퇴 제주해녀들에게 꾸준히 명예지도자증을 전달하기로 했다. 

9살에 해녀가 되어 75년간 제주바다에서 물질을 해 온 한림읍 금능리 홍옥랑(83) 은퇴 해녀는 이날 은퇴식을 마련해주어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의소리

어찌나 힘들고 고달팠을까. 이날 은퇴 해녀들의 나이는 9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고령 혹은 지병 등이 은퇴 사유다. 그 가운데 9살(만 8세) 나이에 시작한 물질이 벌써 75년이 흘렀다는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 홍옥랑(83) 해녀는 이승과 저승을 오갔던 생과 사를 넘나드는 고된 물질을 조금이라도 위안받듯 해녀 은퇴식이 고맙고 감격스러워 몇 마디의 짧은 소감을 말하다 목이 멨다. 

“75년 전 물질 처음 시작헐 때가 생각남수다. 제주도 4.3사건에 집도 다 불타불곡 아무것도 어시 살았수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돈 벌래 가부난 어머니하고 친척집 동네로 피신 왔수다. 친척들이 움막을 지어주난 거기서 어머니하고 어렵게 살아십주. 초등학교도 3학년까지 밖에 못다녔수다. 9살부터 물질을 시작허영 죽도록 살도록 숨이 막히게 일해십주. 바당에 짚은데도 낮은데도 몬딱 다니멍 물질허멍 보난 이 나이 됐수다. 물질허영 3남매 다 공부시키고 이젠 소원이 었수다. 이추룩 은퇴식을 준비해줭 너무 고맙수다.”

(75년 전 물질 처음 시작할 때가 생각납니다. 제주도 4.3사건 때 집도 모두 불타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일본으로 돈 벌러 가시니 어머니하고 친척 집 동네로 피신 왔습니다. 친척들이 움박을 지어줘서 거기에서 어머니하고 어렵게 살았습니다. 초등학교는 3학년까지밖에 못 다녔습니다. 9살부터 물질을 시작해서 죽을 둥 살 둥 숨이 차도록 일했습니다. 바닷속 깊은 데나 낮은 데나 모두 다니면서 물질하면서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됐습니다. 물질해서 3남매 모두 공부시키고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은퇴식을 준비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이날 은퇴 해녀 중 75년이라는 최고 경력의 홍옥랑 해녀뿐만 아니라, 이날 은퇴하는 한림읍 금능리‧월령리 해녀 26명 모두는 누구랄 것 없이 은퇴 공로상을 받아든 후 감격의 눈물을 훔쳤다. 평생 상장이란 것을 받아본 경험이 많지 않은 해녀들은 이날 제주해녀문화협회와 소속 어촌계가 수여한 공로상과 한국걸스카우트연맹이 헌정한 ‘명예지도자증’과 걸스카우트 ‘스카프’까지 받고, 누구랄 것 없이 감격했다. 

공로상과 걸스카우트 명예지도자증은 양종훈 제주해녀문화협회 이사장과 이남근 제주도의회 의원, 양문봉 로타리클럽 3662지구(제주로타리클럽) 차기 총재, 홍준희 금능리 어촌계장 등이 참석해 26명 은퇴 해녀에게 수여했다. 

이번 해녀은퇴식에서 한림읍 금능리 문수열(80) 홍옥랑(83) 양윤정(82) 은퇴 해녀(사진 오른쪽 줄 앞에서 뒤 순서)가 최지은(36) 노진영(46) 문미란(38) 새내기 해녀(사진 왼쪽 줄 앞에서 뒤 순서)에게 제주해녀문화의 전승을 당부하며 테왁과 빗창, 물안경을 전수했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한림읍 금능리(이장 송문철)와 월령리(이장 강한철)가 주최하고 사단법인 제주해녀문화협회(이사장 양종훈)가 주관한 ‘제4회 제주해녀 은퇴식’이 9일 서귀포시 안덕면 소재 플레이 사계에서 열렸다. 은퇴 해녀들에게는 공로상과 함께 한국걸스카우트연맹이 명예지도자증을 헌정했다. ⓒ제주의소리 

이날 백미는 60~70년 이상의 금능리 은퇴 해녀들이 소속 새내기 해녀들에게 ‘해녀 문화 전승’의 뜻을 담아 평생 분신처럼 사용해오던 물질 도구를 전수하는 장면이었다. 문수열(80세, 67년 경력) 홍옥랑(83세, 75년 경력) 양윤정(82세, 66년 경력) 은퇴 해녀가 최지은(36세, 2년 경력) 노진영(46세, 2년 경력) 문미란(38세, 2년 경력) 새내기 해녀들에게 빗창과 ‘눈’이라고 부르는 물안경을 넣은 테왁을 각각 전수했다. “제주바당 잘 지켜사허여”(제주바다 잘 지켜야된다)라는 당부를 전했다. 

이에 노진영 새내기 해녀는 “60년 혹은 70년 이상을 물질해오신 선배 해녀분들이 평생 쌓아놓은 제주해녀문화의 소중함을 더욱 가슴깊이 새기겠다”라면 “제주바다를 지키며 자식들도 훌륭히 키워내신 것처럼 해녀 삼촌과 선배 해녀분들이 살아오신 길을 잘 이어가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남근 제주도의회 의원도 “평생을 바다에서 힘든 물질로 가족과 지역사회를 지켜온 해녀 삼촌들의 노고에 감사드리고 오늘 은퇴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며 “이제는 남은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금능리와 월령리, 그리고 제주해녀문화협회에도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축하했다. 

양종훈 이사장은 “올해 제주 해녀 수는 이미 3000명을 밑돌고, 대부분 고령이다. 거기에다 매년 약 300명의 해녀들이 은퇴하는데, 새내기 해녀들의 어촌계 진입은 아직 한해 30명도 채 되지 않는다”라며 “오늘 은퇴해녀들께서 새내기 해녀들에게 물질도구를 전수하는 아름다운 은퇴식은 제주해녀문화의 보존과 전승을 알리는 중요한 자리”라고 강조했다.

해녀 은퇴식은 오랜 세월 바다에서 가족의 생계와 마을공동체를 위해 헌신적으로 해녀 활동을 이어온 고령 해녀들의 은퇴를 축하하는 자리다. 제주해녀문화협회는 지난 5월 한림읍 귀덕2리에서 첫 ‘해녀은퇴식’을 시작으로, 10월 구좌읍 하도리에서 두 번째 ‘해녀은퇴식’, 지난 11월 한림읍 수원리 해녀들에 대한 세 번째 은퇴식을 열었다. 지난 10월에는 ‘제1회 제주해녀 대상군 명인‧명장 헌정식을 열기도 했다. 제주해녀문화협회는 제주도 내 마을별 해녀 은퇴식을 꾸준히 추진할 예정으로, 일체의 보조금 지원 없이 자발적인 후원금과 재능기부로 행사를 주관해오고 있다.  

▶ 은퇴 해녀 명단(금능리 12명, 월령리 14명) 

양여선(80세, 72년 경력), 문수열(80세, 67년 경력), 김선아 (78세, 64년 경력), 김부자 (81세, 62년 경력) , 현봉옥(83세, 64년 경력), 홍옥랑(83세, 75년 경력), 양윤정 (82세, 66년 경력), 김인하(78세, 61년 경력) ,홍준자(80세, 64년 경력), 임희숙(59세, 48년 경력), 고금선(88세, 72년 경력), 김영아(80세, 55년 경력), 양명자(77세, 40년 경력), 고정자 (82세, 31년 경력), 이문혜(80세, 49년 경력), 박계옥(87세, 56년 경력), 양수열(82세, 45년 경력), 양한정(78세, 43년 경력), 홍화자(81세, 34년 경력), 신창윤(85세, 52년 경력), 홍춘희(79세, 40년 경력), 강정량(55세, 14년 경력), 함경화(71세, 53년 경력), 송인순(96세, 62년 경력), 고유보(85세, 54년 경력), 박순화(88세, 71년 경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