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제주4.3 재심 ‘사각지대’ 사건 결국 명예회복…제2의 한상용만 수백명
4.3 재심 전담 재판부 있는 제주에서 돌고 돌아 광주에서 고 한상용 ‘무죄’ 판결
제주4.3 재심 사각지대인 고(故) 한상용의 명예가 청구 2년2개월만에 회복됐다. 지속적인 검찰의 반대 등 우여곡절 끝에 ‘무죄’ 판결이 났지만, 같은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주4.3특별법 보완입법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20일 광주지방법원 제12형사부는 한상용에 대한 재심 사건 선고공판을 열어 한상용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1927년 9월29일생인 한상용은 서귀포시 성산읍에서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다가 남로당을 도왔다는 혐의 등을 뒤집어써 1950년 광주지법에서 일반재판으로 징역 2년 실형에 처해진 피해자다.
만기 출소한 한상용은 빨갱이라는 주홍글씨와 고문 후유증으로 별다른 사회생활도 하지 못하고 2017년 생을 마감했다.
검찰이 항고하지 않고 그대로 확정된다면 74년간 전과자라는 불명예를 떠안은 한상용이 사망 후 7년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반대하고 또 반대한 검찰
한상용이 생을 마감하고 5년이 지난 2022년 10월, 유족들은 제주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유족들은 4.3재심 전담을 위해 신설된 제주지법 형사4부 심문기일에 직접 출석해 한상용의 억울한 삶에 대해 직접 진술했다. 한상용은 고문 후유증으로 별다른 생계활동조차 하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취기가 오를때면 유족들에게 4.3때 고문 피해 등을 얘기하긴 했지만, 평소에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까 4.3에 대한 발언을 삼갔다는 취지의 진술이다.
재심 청구 당시 한상용은 4.3희생자 신분이 아니었다.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던 유족들은 별도의 희생자 결정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재판 과정에서 인지하게 됐다면서 제주도에 4.3희생자로 결정해달라고 신청했다.
4.3희생자의 경우 신청서가 접수되면 유족과 각 마을 원로, 4.3 관련 문헌을 토대로 사실조사가 이뤄지며, 이후 국무총리 국무총리 소속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4.3중앙위원회)’에서 최종 4.3희생자로 결정된다.
제주지법은 유족들의 진술의 신빙성이 높고, 4.3특별법 등 관련 재심 사건의 취지와 4.3희생자 결정 과정 등에 비춰 재심의 사유가 타당하다며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즉시항고해 한상용 재심을 반대했다. 4.3희생자가 아닌 한상용에 대해 4.3희생자 결정에 준하는 심사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유족들의 증언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며, 관할 법원도 제주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각종 검찰 반대 주장에 대해 광주고법에 이어 대법원까지 관할법원 주장을 수용했다.
한상용이 1950년 재판을 받은 광주로 재배당되면서 사건을 넘겨 받은 광주지법이 재심개시결정을 내렸는데, 검찰의 반대가 재개됐다.
4.3희생자 결정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 등을 내세워 또 즉시항고했다. 한상용을 진정한 4.3희생자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이전과 달리 광주고법은 관할법원 문제가 해결된 한상용 재심 개시 결정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광주고법이 검찰의 즉시항고를 기각하고 며칠 뒤 한상용은 4.3희생자로 최종 결정됐다.
4.3희생자 결정 후 멋쩍은 검찰은 더 이상 반대 의견을 내지 않으면서 한상용 2022년 10월 재심 청구 이후 2년2개월만인 2024년 12월 명예를 회복했다.
제주지법 재심 전담 재판부 취지 무색
2022년 2월 제주지법은 4.3재심 사건 증가와 신속한 사건 처리 등을 위해 4.3재심을 전담하는 형사합의부인 형사4부를 신설했다.
4.3특별법에 따라 4.3중앙위원회에서 4.3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은 모두 ‘특별재심’ 대상자다. 또 1948년 1차 군법회의와 1949년 2차 군법회의를 아우르는 군사재판(수형인명부 2530명) 피해자들도 특별재심 대상자 겸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이 담당하는 직권재심 대상이다.
대검찰청과 법무부에서 직권재심 확대를 결정하면서 일반재판 피해자 중 4.3희생자로 결정된 사람까지 직권재심 대상자에 포함됐다.
특별재심과 직권재심은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교집합 성격을 갖는데, 이로인해 4.3재심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일반재판 피해자 중 아직 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사람은 특별재심·직권재심 대상자가 아니다. 4.3때 군사재판은 모두 제주에서 한꺼번에 이뤄진 반면, 일반재판은 제주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이뤄졌다.
4.3 관련 재심 사건 중 희생자 미신고 일반재판 재심이 상대적으로 더 까다로운 사건들로 꼽히는데, 이들의 경우 대법원 판례에 따라 한상용처럼 4.3 때 재판을 받았던 지역에서 재심 절차를 밟아야 한다.
4.3재심에 대한 전문성 확보와 조속한 사건 처리를 위해 제주지법에 형사4부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까다로운 사건들이 전국 각 지역 법원으로 흩어진다는 얘기다.
군사재판처럼 수형인명부와 같은 자료가 없는 일반재판 피해자의 경우, 정확한 피해 인원 파악이 어렵다. 4.3 유족회 등은 일반재판 피해자를 1800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중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이 1000명을 밑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상용처럼 제2의 사각지대 사례가 수백건 몰려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반대로 특별재심 등의 사건이 다른 지역 법원에 배당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지만, 희생자 미신고 사건들만큼은 제주지법이 맡아야 진정한 사법 정의 실천과 4.3 명예회복을 실천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4.3희생자 결정을 기다려 특별재심으로 제주지법에서 재심 절차를 밟을 수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4.3희생자 결정은 신청 이후 2~3년 정도가 소요돼 유족들 입장에서는 기약없는 기다림이다. 4.3의 광풍은 70여년전 제주에 몰아쳤으며, 이를 경험한 1세대 유족들마저 이미 고령이다.
길고 긴 재심 과정에서 한상용이 최종 4.3희생자로 결정됐음에도 유족들은 4.3희생자 신분이 아닌 상태에서의 재심 청구 사유를 유지해 결국 무죄 판결까지 받았다.
이는 자신들처럼 지속적인 검찰의 반대 등으로 기약없는 기다림으로 속앓이하는 유족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는 의미의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다.
사각지대에 놓인 4.3재심 사건의 진행과정 등에 대한 선례가 남은 상황에서 ‘희생자가 아니라도 제주4.3사건으로 인해 유죄 확정판결 선고를 받은 것으로 추정될 경우, 재심 사건을 제주지방법원에 배당·이관할 수 있다’는 조항을 4.3특별법에 삽입하는 것만으로 관련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