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살아있다, 외치고 있다” 내란에 분연히 맞선 제주도민들

[탄핵과 제주/시민광장의 힘] ②비상계엄 이후 탄력 받은 윤석열 퇴진 집회

2024-12-29     한형진 기자

“제주도는 살아있다, 외치고 있다.”

재일동포 뮤지션 박보의 노래 ‘제주4.3’의 노래 가사처럼, 길게는 지난 여름부터 제주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집회는 제주도민들이 살아있다고 결연하게 외친 시간이었다.

민주노총 제주본부를 중심으로 한 ‘윤석열정권퇴진·한국사회대전환 제주행동’(이하 제주행동)은 지난해부터 일본 원전 핵 오염수 무단 방류,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 등 각종 법안에 대한 거부권 문제를 비판하며 꾸준히 집회를 열면서 윤석열 정권 퇴진을 촉구해왔다.

11월 9일 오후 6시 제주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김건희 구속 탄핵촉구 유권자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퇴진 집회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1월부터다. 제주촛불행동과 제주주권연대는 11월 9일 제주시청 앞 마당에서 ‘윤석열 탄핵, 김건희 구속 촉구 유권자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에서 주최 측은 “그간 여러 단체가 각자의 주제를 갖고 윤석열 정부를 성토해 왔는데, 2016년 박근혜 정부 탄핵 때와 같이 힘을 하나로 합치는 과정에 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실제로 현실이 됐다.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검찰총장·감사원장 탄핵 추진, 명태균 리스크, 검찰·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 삭감 등으로 윤석열 정권이 흔들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비상계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

4일 열린 첫 번째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일 새벽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하고 나서, 이날 저녁 7시 제주시청 앞 도로에서는 곧바로 첫 번째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가 열렸다. 제주행동이 주최한 이날 집회는 비상계엄 이전보다 참가자 수가 몇 배 이상 늘어날 만큼 반응은 뜨거웠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아무도 오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아무도 권하지 않았음에도 여기서부터 저 도로 끝까지 우리는 모였고 우리는 외치고 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목소리로, 우리는 반드시 이 무도한 권력을 무도한 정권을 끝장낼 것”이라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5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집회는 5일에도 이어졌다. 이날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김만호 의장은 “지난 3일을 다시 상상해봐야 한다. 군대가 국회를 장악해 국회의원들을 체포했다면 우리나라는 제2의 4.3, 제2의 5.18을 겪으면서 수많은 목숨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6시30분에는 제주청소년기후평화행동, 세월호를 기억하는 제주청소년모임, 제주청소년평화나비, 제주4.3기념사업회 청소년 4.3특별위원회, 대안교육기관 보물섬학교 등 56명으로 구성된 ‘제주청소년시국선언단’도 시국선언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6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6일 집회는 주최 측 추산 1500명이 참여했다. 4일부터 참가자 수는 계속 늘어났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손채희씨(23)는 “오늘 뉴스에서 2차 계엄령 가능성이 점쳐지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확실히 저항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며 “사람들이 모여 한목소리를 내니, 마음속 응어리가 조금이나마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집회에 앞서 제주지역 4개 대학(제주대, 제주국제대, 제주관광대, 제주한라대) 총학생회 연합은 “반헌법적 계엄선포,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고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7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토요일인 7일 집회는 더 많은 도민들이 광장으로 모였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가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의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아쉬움도 나왔지만, “결국엔 승리할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이날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3000여명이다. 이날 집회 참가자는 “몇 십 년 전 故 이한열 열사가 사망했을 때 시청 앞에서 매일 데모를 했던 당시가 생각난다”며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그때 전두환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던 것이다. 윤석열은 이대로 그냥 보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9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주말을 지나 평일에도 집회는 이어졌다. 탄핵소추안 투표 무산 등 여권을 중심으로 한 미온적인 대처가 많은 도민들을 거리로 이끌어냈다. 9일 집회에는 약 1000여명이 참여했다. 특히 촛불을 대신해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대거 등장했다. 집회 참가자를 응원하는 ‘선결제’ 문화도 나타났다. 이날 집회에 참가한 한 여성은 “국민의힘이 ‘1년만 지나면 다 잊고, 또 뽑아준다’는 식으로 말했다더라. 나는 국민의힘에게 투표하고 싶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10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다음 날인 10일에도 집회는 이어갔다. 번뜩이는 해학과 풍자로 제작한 팻말들이 눈길을 끌었다. 올해 수능을 마쳤다는 청소년은 “예비사회인으로서 내가 살아갈 세상을 내 손으로 바꾸자는 생각에 시위에 나왔다”며 “학교에서 국회의원이란 국민의 대표라고 배웠는데, 다음 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은 정치가 고작 이것 뿐인가. 더 이상 이런 행보를 보이면 당신들은 더이상 국민의힘이 아닌 ‘국민의 짐’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11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1일 서귀포에서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집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체감 온도가 부쩍 떨어진 11일에도 도민들은 함께 모여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중년층은 민중가요를, 청년층은 K팝을 부르며 하나된 마음을 공유했다.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을 앞둔 한예진 씨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아직도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며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해도 헌법재판소가 남아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11일에는 서귀포 시민행동이 주최하는 윤석열 퇴진·국민의힘 해체 집회가 서귀포 옛 초원다방 사거리에서 열렸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서귀포고등학교 학생회장 윤지성 군은 “정치고 좌우고 잘 몰라도 국민을 처단한다는 사람이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게 말이 되나”라며 목소리는 높였다.

12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2일은 윤석열의 대국민담화가 있었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정 마비와 국헌 문란을 벌이고 있는 세력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윤석열의 모습에 집회 참가자들은 분통을 터트렸다.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노동자’라고 밝힌 여성은 “오늘 윤석열은 대국민담화에서 ‘야당이 국가보안법을 폐기하려 한다’며 간첩을 어떻게 잡느냐고 말했다”며 “대한민국의 정보력과 치안 유지 능력과 국력이 간첩이 있다고 나라를 멈추고 군사법원을 설치해야 할 정도 밖에 안되나. 그것이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수행하는 자의 국가관이냐”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13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3일은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민들은 여전히 광장을 지켰다. 신성여자고등학교 1학년 최서원 학생은 “당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국가 내란을 일으킨 범죄자의 퇴진과 처벌을 바라며 한겨울 땀으로 맞서고 있다”고 말했고, 제주과학고등학교 3학년 김두아 학생은 “자격 없는 대통령을 모시고 투표를 거부,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먹칠하는 국민의힘은 국제적 망신”이라고 질타했다.

14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두 번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14일 집회는 제주시청 앞 도로에 그치지 않고 주차장까지 참가자들로 가득 찼다. 8년 전 박근혜 퇴진 집회를 능가하는 인파가 몰리면서, 제주 역사를 새로 썼다. 찬성 204표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집회 참가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고 곧바로 기쁨의 행진에 나섰다. “우리가 이겼다, 윤석열을 구속하라”는 구호가 제주시청 일대를 가득 채웠다.

17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는 화요일(17일), 목요일(19일), 토요일(21일)에 열렸다. 17일 집회는 14일 만큼 참가자가 많진 않았지만, 중앙에 단상을 놓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제주행동 측은 “탄핵으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지만,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윤석열과 따라한다면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지속적인 도민대회 개최를 예고했는데, 이 또한 현실이 됐다.

19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9일 집회에서는 재일본제주4.3유족회 회원들이 제주 방문 일정으로 참여하면서 박수를 받았다. 단상에 선 고원수 유족회 사무국장은 “윤석열 탄핵 집회를 최근 일본에서도 개최했다. 오사카에서 제주 사람이 가장 많은 츠루하시역에서 열었는데 100여명이 모였다. 오사카와 한국은 조금 멀지만 마음은 하나이다. 윤석열이 체포되고 퇴진할 때까지 함께 싸워 나가자. 평화를 위한 싸움에서 우리 함께 힘을 합쳐 나가자”라고 힘차게 외쳤다.

21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1일 집회는 싸락눈이 쏟아지는 날씨에도 응원봉을 들고서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 제주중앙여고 1학년 송한비 학생은 “개인적으로 12월 3일 계엄령 선포 다음 날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이라 라이브가 예정돼 있었는데 계엄 때문에 못하게 됐다”며 “또 다른 국민적 피해도 많았다고 생각한다. 국민 뜻을 무시한 윤석열 대통령이 빠른 시일 안에 탄핵됐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28일 열린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 현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행동은 21일 이후부터는 매주 토요일 저녁마다 윤석열 퇴진 집회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28일 집회에서는 일명 ‘남태령 대첩’의 현장에 있던 농민이 단상에 올랐다. 김윤천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지도위원은 “여러분들이 함께하고 우리가 연대하면 못할 것이 없다. 내란수괴 윤석열을 처단하고, 내란공범인 국민의힘을 해체하는 그날까지 우리 전봉준투쟁단은 연대하면서 끝까지 앞장서겠다. 앞으로의 연대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전국여성농민회제주도연합, 전봉준투쟁단은 부스를 차려 떡과 따듯한 보리차를 나눠주기도 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부터 12월 28일까지, ‘윤석열 즉각 퇴진 요구 제주도민대회’는 14차례 열렸다. 최소한 헌법재판소의 결정까지는 지켜봐야 하기에, 아직 광장의 열기는 식지 않았다. 공감 능력 없는 권력자의 독단적이고 무자비한 판단, 그러나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제주부터 서울까지 수많은 도민과 국민들이 일어선 2024년 ‘빛의 혁명’은 대한민국이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한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