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한 그릇이라도 나누는 삶”…마음의 위로, 삶의 희망 주는 봉사활동

[설 특집-아름다운 동행] 봉사와 상생 가르치는 어린이집 원장 문정옥씨

2025-01-30     김찬우 기자
문정옥 원장이 이끌고 있는 제주보육사랑봉사회.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깨끗한 물품들을 누군가 필요한 이들에기 기부하거나 재활용하기 위해 물품을 쌓아둔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아이들을 보육하는 기관인 만큼 아이들을 위한 일들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내디딘 첫걸음.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뒤를 돌아보니 십수 년이 흘렀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과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만나며 작은 손길이지만, 내밀어 줄 수 있음에 감사했고 도움을 주는 것보다 되려 위로를 받는 일이 더 많아 감사했다. 

이웃들을 도와줄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작은 힘이지만 누군가를 위해 목욕을 시키고 청소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삶의 희망이 됐다.

사회복지, 돌봄 분야 2024년 제주시 자원봉사 명예의전당에 등재된 문정옥 도두크로바어린이집 원장 이야기다. 그는 전현직 어린이집 원장이 모인 제주보육사랑봉사회장도 맡고 있다.

# 중증장애인 마주한 순간 느낀 충격, 평생 봉사 ‘시동’

문 원장은 2008년 어린이집연합회 소속 원장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보육단체인 만큼 사회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활동을 하자는 뜻을 함께한 타 어린이집 원장들과 함께 애월읍 유수암리 창암재활원을 찾으면서다. 

그들이 찾은 재활원에는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어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일상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이 있었다. TV에서 사연으로만 접했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문 원장은 심한 몸살을 앓았다. 그때부터 꾸준한 봉사를 다짐, 이어왔고 벌써 18년째를 맞았다. 

그는 청소와 목욕 봉사, 식사, 산책 등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펼친다. 그러면서 열심히 봉사에 참여하는 원장들을 모아 조금 더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제주보육사랑봉사회’를 조직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위한 봉사도 추진했다. 

그러던 중 단체는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와 인연을 맺게 됐다. 봉사에 참여하는 한 어린이집 원장의 자녀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과 함께다. 봉사회는 해당 원장 자녀뿐만 아니라 제주에 있는 환자들을 돕기 위해 모금행사를 진행했다. 

그는 제주지역에서 백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200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충격을 받았다. 아이들을 보육하는 입장에서 그 충격은 더 크게 와닿았고 그러다 보니 열악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갖게 됐다. 

인터뷰 중인 문정옥 원장 뒤로 제주시 자원봉사 명예의전당 인증패를 시작으로 각종 공로패와 위촉패, 감사패가 놓여있다. 2017년에는 제주도지사 표창도 받았다. ⓒ제주의소리
올로 사는 어르신 집을 찾아 청소하고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에 담는 등 봉사활동 중인 문 원장. 사진=제주시자원봉사센터 유튜브 갈무리. ⓒ제주의소리

# “참 잘했어요” 고사리손 모은 기부금, 봉사와 상생 가르치는 어린이집

백혈병소아암 환자들의 어려움을 알게 된 그는 바자회를 개최하는 등 활동을 통해 적극적인 후원을 추진했다. 그러면서 어린이집 원아들이 봉사와 상생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비록 적은 돈이지만 기부금을 모을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사랑의저금통’이다.

또래 친구들이 아프면 서로 도와줘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교육적 측면과 실제 단체에 기부금을 전달하는 후원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된 것. 원아들은 사랑의저금통을 통해 자신도 모른 채 나눔과 봉사를 몸에 익혀가고 있었다. 

사랑의저금통은 아이들이 착한 일을 할 때마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100원씩 저금해주는 방식으로 채워진다. 이때 부모들은 착한 일을 한 자녀에게 “아픈 친구를 돕기 위해 착한 일을 했구나”라는 칭찬과 함께 100원을 적립한다. 

즉 아픈 친구를 돕기 위해 스스로 착한 일을 했다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도록 하고 주변에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당연히 저금통에 모인 돈은 백혈병 환자인 또래 친구들을 위해 쓰인다. 

문 원장은 “세 살배기 원아가 아픈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열심히 했다며 저금통을 내민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2023년에는 다른 어린이집에도 함께 하자고 적극 권유했고 3800여개 저금통이 배부돼 1000만원 가까운 후원금이 모였다”고 말했다. 

이어 “집에 누군가 아픈 사람이 있다면 엄청 힘들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힘든 것”이라며 “그런 이들에게 돈을 떠나 힘내라는 응원은 엄청난 힘이 된다. 그래서 원아들이 참여해 그들을 응원하고 스스로는 배움을 얻어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 원장이 이끄는 제주보육사랑봉사회는 '사랑의저금통'을 통해 나눔과 봉사를 원아들에게 교육하고 도움이 필요한 백혈병소아암 아동들에게 힘을 보탰다. ⓒ제주의소리
제주교육사랑봉사회는 다양한 기부 활동에 참여 중이다. ⓒ제주의소리

# 정책 다양하지만 여전한 사각지대, 독거노인 지원 ‘절실’

문 원장은 중증장애인, 백혈병 및 소아암 어린이 돕기뿐만 아니라 각종 후원에 참여하고 엄마 품 같은 마음으로 초등학생들의 멘토를 해주는 맘품지원단,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위해 매주 반찬 봉사 등에 참여 중이다.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인지 물으니 지금도 반찬을 만들어 찾아가는 한 어르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어르신은 요리를 해먹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방문요양사 등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였다. 

문 원장은 어르신 집을 찾을 때마다 하나씩 바꿔갔다. 썩은 음식이 가득한 냉장고를 청소하고 고장난 소형 가전제품도 교체해드렸다. 한사코 도움을 받지 않겠다던 어르신을 계속해서 설득한 그는 도배도 새로하고 전기장판과 이불도 새 걸로 마련해드렸다.

그는 “한참 집안을 치우는 사이 잠시 외출했던 어르신은 아끼고 아낀 돈으로 두유를 사와 건넸다. 그리고 집안을 보더니 환하게 웃어 보이셨다”며 “그 모습을 보면서 엄청난 보람을 느꼈다. 또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들에 대한 지원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또 “홀로 사는 어르신들에 대한 지원 예산이 늘어났으면 한다. 꼭 필요한 것들인데 삭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정말로 써야 할 때를 알고 써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봉사정신을 배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부모님들이 봉사활동을 하러 가면서 아이를 데려가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지금은 아이들이 봉사에 대한 개념을 몰라도 꾸준히 기록하고 나중에 ‘어릴 때 이렇게 남을 잘 도왔다’며 보여주면 그 자체로 교육이 된다”고 말했다.

문 원장은 “설을 맞아 우리 주변을 한 번씩 돌아봤으면 좋겠다. 이웃들에게 말 한마디, 따뜻한 손길 한번 내민다면 좋겠다. 떡국 한 그릇이라도 나눠주는 삶, 나눔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반찬 봉사를 위해 장을 보고 있는 문 원장과 제주보육사랑봉사회원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