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두터운 신망 중문학원장, 제주4.3 ‘중문리사건’ 78년만 명예회복
[4.3재심, 역사의 기록] (111)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총 40명 명예회복
경찰의 발포로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제주 ‘중문리사건’의 중심에 있는 지식인의 억울함이 풀렸다. 제주4.3 초창기 형사처벌을 받은 그의 명예는 78년만에 회복됐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19차(20명), 제20차(20명) 일반재판 직권재심 2개 사건을 병합해 11일 심리, 대상자 4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명예가 회복된 40명 중 1명은 중문면장을 역임해 중문중학원 원장을 맡은 이승조(李承祚) 씨.
1947년 3월1일 관덕정 일대에서 4.3의 시발점인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이 발생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는 제주도민들은 민·관·군 등을 아우른 3.10 총파업에 열었지만, 발포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의 발포가 부당하다며 당시 중문지서에 소속된 제주 출신 경찰 6명 전원이 1947년 3월13일 사직하기에 이른다.
동료까지 동참하는 사태에 당시 제주 경찰은 응원경찰대 20여명을 중문지서에 배치해 중문 일대에 긴장감이 고조됐다. 응원경찰대는 육지에서 ‘제주는 빨갱이 섬’이라는 교육만 받고 파견됐다. 이들의 잔혹 행위는 미군정 내부 보고서에도 존재할 정도다. 응원경찰대와 서북청년회 등의 과도한 폭거가 제주4.3 피해자 규모를 키웠다.
같은 해 3월17일 중문면사무소 인근에 지역주민 1000여명이 모인 대규모 면민대회가 열렸다. 중문 주민들은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수감된 도민들의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중문 사람들은 경찰을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고, 같은 날 중문지서로 몰려갔다. 면민대회 중심에는 이승조 중문중학원 원장과 중문민청 김성추(金性秋) 위원장이 있었다.
일본 간사이대학 법문학부 출신의 지식인인 이승조는 해방 후 중문면장을 역임했으며, 주민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등 지역사회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 김성추는 일제 강점기 노동운동으로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이후 청년운동과 야학운동을 주도했다.
많은 주민들이 중문지서에 모이자 응원경찰은 해산명령을 내렸다. 혹시 모를 상황을 막기 위해 중문지역 유지들은 수감자 석방을 위해 경찰과 교섭하려했지만, 응원경찰들의 ‘불가’ 방침은 완강했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자 응원경찰대는 수차례 해산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발포하기에 이르렀고, 지역주민 8명이 중경상을 입는 ‘중문리사건’이 발생했다.
중문리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된 이승조는 1947년 5월7일 제주지방심리원(현 제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3000원형에 처해졌다.
그는 3.1절 발포사건 책임자를 살인자로 처벌하라고 요구하면서 목적이 관철될 때까지 파업을 실시하고, 중문지서에서 경찰의 해산 명령에 반발하면서 경찰을 협박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11일 78년만에 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되는 기쁨의 순간에는 이승조의 딸이 함께했다.
이승조의 딸 이씨는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머리가 좋은 아버지가 천막에서 주민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눈만 마주쳐도 경찰에 끌려간다는 당시 어른들의 말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후유증에 고통을 받다가 돌아가셨다. 지금이나마 이런 자리(명예회복)가 마련돼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날 재심 대상자들은 무허가 집회, 파업에 참여했다는 등의 공소사실로 처벌을 받은 4.3희생자들이다. 공소사실 속 무허가 집회는 1937년 3월1일 3.1절 기념대회를 비롯해 발포사건 진상규명 집회, 3.10총파업 등으로, 거의 대부분의 제주도민들이 위법행위자로 몰렸다.
이날 40명에 대한 재심 사건으로 무죄가 선고되면서 일반재판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4.3피해자는 누적 241명으로 늘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51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7월16일)
강서학, 강군학, 고시형, 김신생, 이신우, 이맹호, 강창욱, 김창생, 한경보, 신찬호, 신찬희, 오창우, 오병덕, 양지현, 신수정, 문철수, 강계윤, 채수웅, 김기필, 임태권, 김태호, 고석준, 김문, 이완영, 김상호, 송병심, 윤덕빈, 이성규, 김태현, 윤기하
12~1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9월3일)
김두석, 김백연, 김택수, 김희경, 송재규, 양두옥, 박정운, 양상보, 진재선, 차행삼, 양치명, 현천오, 김홍언, 양남보, 임재삼, 김병수, 김광호, 현명하, 김천석, 양창구, 고문옥, 양성익, 백순희, 김창운, 김대운, 양학선, 양성옥, 임태권, 이성규, 김창생
52~53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9월3일)
정생두, 박중돈, 박문재, 김항윤, 김정순, 김관성, 김태보, 김두휴, 이태권, 김영두, 김행문, 김창희, 안상보, 김용규, 김기종, 현치우, 김치옥, 김영필, 박효선, 현두삼, 정인호, 양봉언, 이덕삼, 고재규, 김상진, 김창수, 김성보, 고중호, 양지학, 홍남두, 김태봉, 양봉규, 오중흥, 이춘배(김춘배), 김용수, 양운백(양운주), 강시원(강시구), 한성태, 강순정, 강춘화, 김창홍, 백문수, 강인화, 강삼룡, 박문규(박동규), 박봉규, 이권일, 강태영, 김진납(김진필) 강권희, 송권만(송책삼), 이시우, 조여경(조여향), 김병규, 김정식, 김한보, 김언석(김원석), 신추정, 김두정, 양영백
15~16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박중돈, 박문재, 김항윤, 김기종, 김영필, 김학봉, 강경생, 양항부, 오중효, 김세우, 한성태, 양봉규, 김월성, 김희부, 김봉주, 이덕순, 홍중봉, 한원경, 임경화, 박화진, 양덕순, 김태하, 양인하, 양원곤, 양재하, 고성협, 고성희, 고성아, 진경화, 현규호
54~5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문광호, 강창수, 양두칠, 부윤희, 송두준, 송두선, 강재수, 송두억, 강창우, 양상진, 고승현, 이봉우, 강창권, 정팽종, 고찬옥, 오용남, 오기혁, 강애생, 홍승표, 오재건, 문달화, 고이만, 박자근, 소임송, 이기유, 현순심, 윤군일, 강현국, 김창하, 김병열, 강성진, 김일순, 송옥현, 안두원, 윤대윤, 오진호, 이순열, 임창빈, 채애훈, 현태정, 고원, 문재열, 한상섭, 윤세선, 강상호, 김덕률, 오민주, 한중원, 홍성태, 강만수, 한진섭, 강정순, 박인순, 양태화, 임헌수, 오태익, 오태희, 이원삼, 고선, 김학수
5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강창규, 고기숙, 이달순, 오봉춘, 김명선, 전생금, 문두현, 김영숙, 김여화, 양상진, 강남주, 강길수, 윤동혁, 문종담, 김영찬, 허림, 김순선, 강선여, 김희익, 고승화, 전학종, 김치영, 이정인, 김태호, 이완배, 고난향, 김태경, 강중석, 부덕현(부영진), 전인하
1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양상진, 고승현, 문달화, 양병기, 김원체, 오두석, 문상호, 김태석, 전봉주, 김형택, 김팔부, 장인관, 이을생, 이평규, 이인순, 백문수, 백문옥, 강세규, 진원택, 김영욱
5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김묘생, 박생운, 김여선, 고영규, 김평후, 이창현, 양경하, 고정규, 정병오, 김선익, 김대규, 한만년, 좌중희, 고봉철, 김봉후, 김형인, 현채옥, 이승홍, 이군방, 문계현, 오병현, 윤공례, 이종주, 이종인, 정병하, 양을생, 김용승, 임성범, 진달근, 김영숙
1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한상섭, 한진섭, 김태중, 김원준, 박성택, 양귀, 강중하, 문혁하, 백인명, 오인백, 오병문, 임정길, 오태문, 김갑순, 강재반, 김용숙, 양석보, 김상두, 현창식, 김지담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영주, 강병순, 김승림, 고석부, 현필현, 김용문, 양봉언, 이운경, 박달천, 고태붕, 고승호, 박중원, 김태봉, 강순교, 양창주, 김묘현, 고기백, 고창현, 고두선, 문상림, 김시화, 문창석, 박윤옥, 김호선, 양원민, 오용범, 강대형, 김관진, 김용원, 이승조, 정남흥, 안재흥, 김기석, 임록협, 한명석, 양태옥, 김진호, 김경호, 박기출, 김하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