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피해 아버지는 진통제 대신 술로 고문 후유증 이겨내셨다”

[4.3재심, 역사의 기록] (114) 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19명 무죄

2025-04-08     이동건 기자

술만 마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해 온 딸이 법정에서 아버지에게 “죄송하다”고 울먹였다. 그는 아버지가 제주4.3 피해자라는 사실을 1년 전에 알게 된 자신마저 원망했다. 

8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단장 강종헌,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1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1명은 1948년 1차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를, 8명은 1949년 2차 군법회의에서 국방경비법 위반 누명을 쓴 4.3 피해자다. 

1948년 7월17일 헌법이 공포됐지만, 제주4.3 때 군사재판 피해자들은 헌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불법 구금·체포, 고문 등 피해를 겪었다. 

고(故) 김군산은 제주시 건입동에 살다가 1948년 12월 23세의 나이로 영문도 모른 채 토벌대에 연행됐다. 억울하게 내란죄를 뒤집어 쓴 김군산은 목포형무소에서 징역 1년 실형을 살았고, 출소해 제주에 살다가 1979년 생사를 달리했다. 

김군산의 장녀 김모씨는 평생 아버지를 미워한 스스로를 다그쳤다. 

김씨는 “다른 집 아버지와 달리 술만 마시는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다. 학창 시절 성적이 좋은 동생이 육군사관학교를 지망했지만, 아버지는 ‘너는 (육사에) 못간다’고만 하셨다. 평생을 이유를 모르고 살았고, 1년 전에야 아버지가 4.3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울먹였다. 

이어 “그제야 술만 마신 아버지가 이해됐다. 아버지 산소를 찾아가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 몾진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온 아버지에게 너무 죄송했다. 아버지의 원한을 풀 수 있게 도와달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 김방하는 제주농업학교에 다니다 1949년 17세 때 토벌대에 연행돼 인천형무소에 수감됐다. 징역 7년형을 받은 김방하는 1950년 6월 풀려났지만, 1955년 다시 체포돼 부산육군형무소와 대전형무소를 거쳐 1959년 석방됐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별다른 생계 활동조차 못하다 2006년 사망했다. 

김방하의 아들 김씨는 “형편이 어려워 아버지는 병원도 가지 못했다. 고문 후유증 등 고통을 잊기 위해 아버지는 진통제 대신에 술을 마셨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너희는 절대 공무원을 할 수 없다’고도 말하셨다. 어느 날 아버지는 동네를 찾은 경찰을 보자마자 숨고, 도망가려 하시기도 했다”며 고인의 한을 풀어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이날 합동수행단은 19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해달라고 구형했고, 변호인들도 4.3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헤아려 달라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이날은 법관 인사·이동에 따른 제4대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 김지영, 정혜미) 구성 이후 첫 재심 사건으로 다뤄졌다. 

평의를 거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해방 직후 벌어진 제주4.3 소용돌이에서 망인들이 피해를 봤다. 개인의 존엄과 희생자의 삶은 피폐해졌다. 희생자의 억울함과 숨죽여 살아온 가족들의 마음을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무죄 선고가 억울함을 푸는 작은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한편, 제주4.3특별법 전면 개정에 따라 출범한 합동수행단은 2022년 2월 첫 군사재판 직권재심 사건을 청구해 이날 59차까지 이어왔다. 

20명에서 30명으로 늘려 청구돼 온 군사재판 직권재심 사건은 59차 때 19명으로 줄었으며, 이날이 군사재판 직권재심의 마지막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다. 아직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군사재판 피해자들이 남아있지만, 오기 등의 이유로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52~53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9월3일)
정생두, 박중돈, 박문재, 김항윤, 김정순, 김관성, 김태보, 김두휴, 이태권, 김영두, 김행문, 김창희, 안상보, 김용규, 김기종, 현치우, 김치옥, 김영필, 박효선, 현두삼, 정인호, 양봉언, 이덕삼, 고재규, 김상진, 김창수, 김성보, 고중호, 양지학, 홍남두, 김태봉, 양봉규, 오중흥, 이춘배(김춘배), 김용수, 양운백(양운주), 강시원(강시구), 한성태, 강순정, 강춘화, 김창홍, 백문수, 강인화, 강삼룡, 박문규(박동규), 박봉규, 이권일, 강태영, 김진납(김진필) 강권희, 송권만(송책삼), 이시우, 조여경(조여향), 김병규, 김정식, 김한보, 김언석(김원석), 신추정, 김두정, 양영백

15~16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박중돈, 박문재, 김항윤, 김기종, 김영필, 김학봉, 강경생, 양항부, 오중효, 김세우, 한성태, 양봉규, 김월성, 김희부, 김봉주, 이덕순, 홍중봉, 한원경, 임경화, 박화진, 양덕순, 김태하, 양인하, 양원곤, 양재하, 고성협, 고성희, 고성아, 진경화, 현규호

54~5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문광호, 강창수, 양두칠, 부윤희, 송두준, 송두선, 강재수, 송두억, 강창우, 양상진, 고승현, 이봉우, 강창권, 정팽종, 고찬옥, 오용남, 오기혁, 강애생, 홍승표, 오재건, 문달화, 고이만, 박자근, 소임송, 이기유, 현순심, 윤군일, 강현국, 김창하, 김병열, 강성진, 김일순, 송옥현, 안두원, 윤대윤, 오진호, 이순열, 임창빈, 채애훈, 현태정, 고원, 문재열, 한상섭, 윤세선, 강상호, 김덕률, 오민주, 한중원, 홍성태, 강만수, 한진섭, 강정순, 박인순, 양태화, 임헌수, 오태익, 오태희, 이원삼, 고선, 김학수

5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강창규, 고기숙, 이달순, 오봉춘, 김명선, 전생금, 문두현, 김영숙, 김여화, 양상진, 강남주, 강길수, 윤동혁, 문종담, 김영찬, 허림, 김순선, 강선여, 김희익, 고승화, 전학종, 김치영, 이정인, 김태호, 이완배, 고난향, 김태경, 강중석, 부덕현(부영진), 전인하

1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양상진, 고승현, 문달화, 양병기, 김원체, 오두석, 문상호, 김태석, 전봉주, 김형택, 김팔부, 장인관, 이을생, 이평규, 이인순, 백문수, 백문옥, 강세규, 진원택, 김영욱

5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김묘생, 박생운, 김여선, 고영규, 김평후, 이창현, 양경하, 고정규, 정병오, 김선익, 김대규, 한만년, 좌중희, 고봉철, 김봉후, 김형인, 현채옥, 이승홍, 이군방, 문계현, 오병현, 윤공례, 이종주, 이종인, 정병하, 양을생, 김용승, 임성범, 진달근, 김영숙

1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한상섭, 한진섭, 김태중, 김원준, 박성택, 양귀, 강중하, 문혁하, 백인명, 오인백, 오병문, 임정길, 오태문, 김갑순, 강재반, 김용숙, 양석보, 김상두, 현창식, 김지담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영주, 강병순, 김승림, 고석부, 현필현, 김용문, 양봉언, 이운경, 박달천, 고태붕, 고승호, 박중원, 김태봉, 강순교, 양창주, 김묘현, 고기백, 고창현, 고두선, 문상림, 김시화, 문창석, 박윤옥, 김호선, 양원민, 오용범, 강대형, 김관진, 김용원, 이승조, 정남흥, 안재흥, 김기석, 임록협, 한명석, 양태옥, 김진호, 김경호, 박기출, 김하균

5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장암, 현봉추, 현진옥, 김공현, 김여량, 양영구, 고성봉, 현진, 임영호, 정명순, 강윤부, 김두천, 문자언, 안한봉, 안해봉, 고점필, 홍찬효, 현병익, 강근택, 강위보, 정관휘, 김택환, 이하윤, 강성희, 이상호, 강순현, 오치홍, 이경수, 김진주, 문수명

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이기찬, 전영윤, 홍중보, 장도현, 김병화, 김군산, 고춘생, 김전호, 현기추, 송인현, 변만조, 고영문, 고일철, 김방하, 이복순, 김범진, 박화춘, 안임생, 김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