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각오로 박정희에게 탄원서 쓴 제주4.3유족, 75년만에 굴레 벗었다

[4.3재심, 역사의 기록] (115) 23차 청구 일반재판 직권재심 20명 무죄

2025-04-08     이동건 기자

군사독재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A4 용지 8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했던 70대 제주4.3 유족이 75년 만에 아버지의 명예가 회복되는 기쁨을 누렸다. 

8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2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2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명은 4.3의 시발점이 된 1947년 3.1절 기념대회에 참석했거나 3.1절 기념대회 발포사건 진상규명 등을 요구한 것이 반정부 활동이라는 굴레에 휘렸다. 또 4.3 때 해안선 5km 이상 마을에 거주했다는 이유로 무장대로 오인받아 징역과 금고, 벌금, 과료 등의 형을 받은 4.3희생자다. 

일제강점기 때 이뤄진 과도한 강제공출이 1946년 미군정 체제에서 부활하자, 당시 제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반대 목소리를 냈다. 고(故) 황승휴도 당시 목소리를 냈던 1명이다. 

황승휴는 1949년 11월 당시 제주지방심리원(현 제주지방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법령 19호 위반, 내란방조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했다. 황승휴는 아내와 2명의 아들을 남겨둔채 목포형무소에 복역하다가 1950년 형 집행정지로 출소했다는 기록을 끝으로 행방불명됐다. 

유복자로 태어난 둘째 아들 황모(75)씨는 이날 직접 재심 법정에 출석, 자신의 기구한 삶을 털어놨다. 

황씨 기억 속 경찰은 한달에 한번 꼴로 집을 찾아오던 사람이다. 경찰이 찾아오는 날이면 황씨의 어머니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는데, 어릴 때 황씨는 그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6살 터울 형은 공군과 해군에 가려 했지만, 결국 육군에 갔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황씨는 형이 공군·해군에 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아버지가 4.3 광풍에 휘말려 어머니와 형제가 ‘빨갱이의 가족’ 신분이라는 사실로, 경찰은 행방불명된 황승휴가 연락이 오면 신고하라는 취지로 황씨의 어머니를 괴롭혀 왔다. 

주변에서는 “공무원을 할 수 없으니 인문계(일반고) 말고 실업계(직업계고, 특성화고)에 가라”고 말했지만, 황씨는 제주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선택했다.  

그는 장교를 꿈꾸며 1년간 학군단에서 훈련도 받았다. 당시 “임관할 수 있게 책임지겠다”는 대령 계급 학군단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신원조회 절차 이후 동기 6명과 함께 장교가 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어야만 했다. 4.3의 연좌제다.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영어교육과를 졸업해 중등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친구들이 모두 3월에 발령을 받았지만, 홀로 발령받지 못했다. 

그는 억울함에 죽을 각오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향해 A4 용지 8장 분량의 탄원서를 보냈다.

황씨는 “수면제까지 준비했다. 4.3때 피해를 본 아버지로 인해 교사로 일할 수 없다면 너무 억울하니까 차라리 북한에 보내달라고 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동기들보다 1개월 늦게 결국 전라 지역 교사로 임용됐다.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 매달 1번씩 저에 대한 동향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됐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친형은 제주에서 살지 못하겠다며 일본으로 밀항을 했는데, 일본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 저는 전라도와 광주를 오가면서 중등교사 생활을 했다.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데, 75년 인생 내내 수모를 겪었다. 평생을 자유롭지 못한 몸으로 살았고, 어머니는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오늘 4.3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며 무죄를 호소했다. 

이날도 다른 직권재심 사건처럼 합동수행단은 무죄를 구형했고, 변호인도 무죄를 항변했다. 또 재판부도 심리 당일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직권재심으로 명예가 회복된 일반재판 피해 4.3희생자는 누적 261명으로 늘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15~16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박중돈, 박문재, 김항윤, 김기종, 김영필, 김학봉, 강경생, 양항부, 오중효, 김세우, 한성태, 양봉규, 김월성, 김희부, 김봉주, 이덕순, 홍중봉, 한원경, 임경화, 박화진, 양덕순, 김태하, 양인하, 양원곤, 양재하, 고성협, 고성희, 고성아, 진경화, 현규호

54~55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0월29일)
문광호, 강창수, 양두칠, 부윤희, 송두준, 송두선, 강재수, 송두억, 강창우, 양상진, 고승현, 이봉우, 강창권, 정팽종, 고찬옥, 오용남, 오기혁, 강애생, 홍승표, 오재건, 문달화, 고이만, 박자근, 소임송, 이기유, 현순심, 윤군일, 강현국, 김창하, 김병열, 강성진, 김일순, 송옥현, 안두원, 윤대윤, 오진호, 이순열, 임창빈, 채애훈, 현태정, 고원, 문재열, 한상섭, 윤세선, 강상호, 김덕률, 오민주, 한중원, 홍성태, 강만수, 한진섭, 강정순, 박인순, 양태화, 임헌수, 오태익, 오태희, 이원삼, 고선, 김학수

56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강창규, 고기숙, 이달순, 오봉춘, 김명선, 전생금, 문두현, 김영숙, 김여화, 양상진, 강남주, 강길수, 윤동혁, 문종담, 김영찬, 허림, 김순선, 강선여, 김희익, 고승화, 전학종, 김치영, 이정인, 김태호, 이완배, 고난향, 김태경, 강중석, 부덕현(부영진), 전인하

1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양상진, 고승현, 문달화, 양병기, 김원체, 오두석, 문상호, 김태석, 전봉주, 김형택, 김팔부, 장인관, 이을생, 이평규, 이인순, 백문수, 백문옥, 강세규, 진원택, 김영욱

5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김묘생, 박생운, 김여선, 고영규, 김평후, 이창현, 양경하, 고정규, 정병오, 김선익, 김대규, 한만년, 좌중희, 고봉철, 김봉후, 김형인, 현채옥, 이승홍, 이군방, 문계현, 오병현, 윤공례, 이종주, 이종인, 정병하, 양을생, 김용승, 임성범, 진달근, 김영숙

1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한상섭, 한진섭, 김태중, 김원준, 박성택, 양귀, 강중하, 문혁하, 백인명, 오인백, 오병문, 임정길, 오태문, 김갑순, 강재반, 김용숙, 양석보, 김상두, 현창식, 김지담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영주, 강병순, 김승림, 고석부, 현필현, 김용문, 양봉언, 이운경, 박달천, 고태붕, 고승호, 박중원, 김태봉, 강순교, 양창주, 김묘현, 고기백, 고창현, 고두선, 문상림, 김시화, 문창석, 박윤옥, 김호선, 양원민, 오용범, 강대형, 김관진, 김용원, 이승조, 정남흥, 안재흥, 김기석, 임록협, 한명석, 양태옥, 김진호, 김경호, 박기출, 김하균

5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장암, 현봉추, 현진옥, 김공현, 김여량, 양영구, 고성봉, 현진, 임영호, 정명순, 강윤부, 김두천, 문자언, 안한봉, 안해봉, 고점필, 홍찬효, 현병익, 강근택, 강위보, 정관휘, 김택환, 이하윤, 강성희, 이상호, 강순현, 오치홍, 이경수, 김진주, 문수명

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이기찬, 전영윤, 홍중보, 장도현, 김병화, 김군산, 고춘생, 김전호, 현기추, 송인현, 변만조, 고영문, 고일철, 김방하, 이복순, 김범진, 박화춘, 안임생, 김춘화

2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임동야, 이상봉, 현봉규, 현두평, 조재두, 정창옥, 고태규, 강석규, 강관주, 안창규, 김태인
장성근, 현철종, 김시보, 우성대, 강진희, 이봉휴, 고신순, 황승휴, 김창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