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문지화’ 피해 후폭풍…제주4.3 군사재판 피해자 전원 명예회복 불투명
2022년 2월 첫 청구 군사재판 직권재심, 2024년 12월 이후 청구 중단
위법한 1~2차 군법회의(군사재판)를 받은 제주4.3 피해자 전원에 대한 명예회복이 불가능한 상황에 다다랐다. 멸문지화(滅門之禍) 피해의 후폭풍이다.
2022년 2월10일 첫 군사재판 직권재심을 청구한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의 명예회복 절차가 2024년 12월20일 59차를 마지막으로 멈춰섰다.
희생자 미신고 생존자 2명을 포함해 59차까지 1711명을 청구, 올해 4월까지 청구 대상자 전원(1711명)이 무죄 판결로 명예를 회복했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4.3의 광풍 속에서 허무맹랑한 절차로 이어진 군사재판 피해는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1999년에 당시 초선인 추미애 국회의원이 국가기록원에서 수명인명부를 찾았다. 수형인명부에는 1948년 1차 군법회의, 1949년 2차 군법회의에 회부된 4.3피해자 2530명의 이름과 언도일자, 형량, 복형장소 등이 기재돼 있다.
군사재판 직권재심은 수형인명부를 토대로 신원확인 등 절차를 거쳐 진행됐고, 유족이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재심 절차를 밟은 ‘유족 청구 재심’ 사례도 있다.
2025년 4월 기준 360명의 명예회복 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우려가 극에 달하고 있다.
수형인명부는 한자를 손글씨로 작성해 오기가 상당하다. 또 남아있는 가족 연좌제를 걱정한 피해자들이 일부러 아명(兒名)이나 실제 거주지와 다른 주소, 틀린 한자를 기재했다는 증언도 있다.
합동수행단은 가족관계등록부(호적)와 수형인명부 기재 사실 등을 비교하면서 실제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해 왔지만, 아직도 확인되지 않는 피해자들이 남았다.
멸문지화(滅門之禍)로 인해 피해자의 유족은 물론, 먼 친척조차 남아있지 않아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는 사례다.
또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 강제징용 등을 거친 당시 시대 상황상 가족도 없이 고아로 자란 제주 사람도 많았다. 실제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피해자 중 16명은 무호적자로 확인되고 있다.
피해자는 있지만, 피해 사실을 기억해 줄, 증언해 줄 친인척조차 남아있지 않은 사례다. 신원이 불특정되면 정당한 사법 절차(재심)를 통한 명예회복 자체가 불가하며, 91명으로 추정된다.
신원 미확인 사례를 떠나 4.3특별법 개정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명예회복이 필요한 360명 중 269명은 신원은 확인되지만, 희생자 미신고 상태다. 이들도 남아있는 친인척이 없어 4.3희생자 신고 등 절차로 이어지지 못했다.
제주4.3특별법 제14조(특별재심)에 1항에 ‘희생자로서 제주4.3사건으로 인하여 유죄의 확정판결을 선고받은 사람, 수형인 명부 등 관련 자료로서 위와 같은 사람으로 인정되는 사람은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424조 및 [군사법원법] 제469조, 제473조에도 불구하고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직권재심 대상자를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2530명 전원으로 볼지’,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사람 중 4.3희생자로 볼지’에 대한 해석 차이가 발생해 269명에 대한 재심 청구가 중단됐다.
군사재판은 유·무죄를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위법한 절차로 진행됐으며, 4.3특별법 전면 개정 때도 군사재판 피해자 전원에 대한 명예회복이 입법 취지에 담겼다.
수형인명부에 기재된 것만으로도 특별재심 대상자에 포함하는 골자의 4.3특별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