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보말칼국수로 맺은 인연, 올레길에서 다시 조우하다
[서명숙 올레길 편지] 5. 역 올레, 우연히 고마운 인연을 만나다
이 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이 ‘서명숙의 놀멍 쉬멍 걸으멍 - 길 위에서 전하는 편지’라는 타이틀로 제주올레 공식 블로그에 연재 중인 올레길 단상입니다. [제주의소리]가 ‘서명숙 올레길 편지’라는 이름으로 소개합니다.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누구나 길과 하나가 되어 가슴에 맺힌 상처나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와 행복을 누렸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 편집자 주
1월의 마지막 날 21코스 종점인 종달바당에서 시작한 역 올레가 어느덧 내가 살고 있는 서귀포 가까운 대포항까지 진행되었다. 일정 있는 날은 빼먹고, 걷는 날조차도 대부분 반주에 그쳤는데도, 걷다 보니 제법 걸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올레꾼들도 많이 만났지만, 지역 주민들도 많이 만났다.
올레길은 관광지나 도심 지역보다는 해안가, 마을, 오름 근처를 지나는 경우가 많은지라 농사짓는 분들이나 해녀분들과 마주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해녀 삼춘들과의 만남은 같은 여성이라서 그런지 늘 깊은 여운을 남긴다.
17코스를 지나는 마을, 도두 해녀들의 아주 특별한 은퇴식
3월 초 어느 날 특별한 장소에 특별한 행사로 초대받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바로 도두어촌계와 (사)제주해녀문화협회가 주최하는 도두 해녀들의 은퇴식이 무지개 요트(도두항을 오가는)에서 거행됐기 때문이다.
79세부터 94세까지 해녀 열 명이 짧게는 60년, 길게는 74년간의 긴 물질생활을 끝내고 한날한시에 작별을 고하는 날이자 비창을 내려놓고 테왁을 집으로 들여놓는 날이었다.
주로 바닷가 어촌계 사무실이나 불턱 근처에서 열렸던 다른 마을 은퇴식과 달리, 선주의 호의로 요트에서 열린 은퇴식에서 해녀들은 평생 해온 일을 놓는 서운함보다는 생애의 사명을 다했다는 뿌듯함을 더 느끼는 듯했다. 후배이자 마을 해녀 회장도 ‘선배 해녀분들이 잘 지켜온 바다 명심해서 지켜내 후배 해녀들에게 물려줄 터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라’며 인사말을 했다.
현역 해녀들은 은퇴 해녀들 앞에서 '이어도 사나'를 비롯해 해녀들의 삶과 관련된 노래와 춤을 프로 못지않은 솜씨로 선보였다. 알고 보니 독일, 스페인에까지 초청공연을 다녀왔다는 고수 해녀 삼춘들이었다.
북촌리에서 태어나 4.3으로 부모를 다 잃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 단 하루 만이라도 초등학교 문턱을 넘어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한 80대 초반의 박심준 해녀 삼춘. 그녀는 5남매를 해녀 물질과 농사로 다 번듯하게 키워냈고 분가한 자식들은 이젠 물질을 제발 그만두라고 성화란다. 허나 그녀는 내게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작년, 올해 사이로 손주 셋이 다 대학 들어가신디 그 첫 등록금 하라고 오백만 원씩, 천오백만 원 공평하게 줘수다게. 물질행 내 힘으로 벌엉 손주들 학비 대줄 수 이시난 얼마나 좋우꽈?”
만면에 웃음꽃을 피운 채!
17년 만에 고마운 인연을 우연히 만나다!
지난 3월 초 대평포구에서 8코스를 역 올레 하는 날! 시작은 10년 전에 서귀포로 이주한 여성학자 오한숙희와 그녀가 요즘 돌보는 발달장애인 주연이랑 셋이 함께 했다.
이곳 대평포구에만 오면 정말이지 늘 만감이 교차하곤 했다. 8코스 올레길을 개척할 때 이 마을 출신 성호경(지금은 제주도 어촌계협의회장)의 안내를 받으며 박수기정을 마주한 순간, 그 벅차올랐던 감흥과 놀라움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앗, 이런 비경이 이 듣보잡(당시는 정말 그러했다) 포구에 떡하니 숨어 있었다니, 소정방, 정방, 천지연 폭포 기정(절벽)보다 더 웅장하고 멋진 기정이 존재하는구나!’
나는 그때 호경에게 진 기분이었다. 제주도 구석구석 올레길을 만들면서 보석같은 제주의 풍광들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 뒤 대평포구 박수기정을 찾은 올레꾼들은 처음 보는 절경에 감탄사를 쏟아냈고, 그 감탄은 외부 세계의 대규모 땅 매입과 개발을 불러들였다. 바다 근처 마늘밭 대신에 대형 카페와 리조트가 들어서며 풍경은 달라졌다. 그래서 이곳에만 오면 착잡한 심경에 휩싸이게 된다.
대평포구 출발점(도착점이기도)을 지나 해녀 탈의장에 이르렀는데 앗 해녀삼춘들이 장수복과 테왁을 다 장착하고 주위에 삼삼오오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딱 타이밍 맞추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건만. 하지만 작업 전후의 잔뜩 긴장하거나 탈진한 해녀들에게 함부로 말을 건넸다가는 본전을 못 건지기 십상이다. 거기에 동의 없이 함부로 카메라를 들이댔다간 뼈도 못 추리는 고욕을 당할 수도 있다. 목숨을 건 물질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당당하게 앞서가는 오한숙희에게 넌지시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쓸데없이 말 걸지 말고, 그저 인사만 공손히 해.”
숙희가 내가 시킨 대로 “안녕하세요”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상대방은 활짝 웃으면서 “네, 올레길 걷나 봐요” 친절히 응대까지 하신다.
일단 분위기가 좋길래 나도 얼른 뒤따라 인사를 한다. 웃으며 인사를 받던 그 해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게 “올레 서명숙 이사장이영 잘도 닮은 분이여게” 혼잣말인 듯 내뱉는다. 앗, 이 삼춘도 TV에 방영된 도두 해녀 은퇴식 뉴스를 보셨나 보다, 싶었다.
헌데 그게 아니었다. 내가 맞다고 하자, 그녀는 급 반가워하면서 자신이 8코스 개장식 날 국수를 끓여주었었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갑자기 그때, 2008년 3월의 개장식 풍경이 어젯일처럼 급소환되었다.
2007년 9월 첫 1코스를 연 이래 우리는(이라고 해봤자 다섯 손가락 꼽을 정도의 탐사대와 사무국 식구들이었지만) 서너 달에 한 번씩 새로운 코스를 열었다. 조금씩 길을 걸어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1박 2일 같은 핫한 프로그램에도 소개되고, 바야흐로 올레 열풍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였다.
2008년 3월, 8코스 개장식 그날의 추억
자연히 8코스 개장 행사에는 전국에서 수백 명의 올레꾼들이 몰려들었다. 게다가 이날의 초대 손님은 국민가수 양희은 선배였다. 2006년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산티아고 길로 떠날 때도, 돌아와서 고향 제주에 걷는 길을 내겠다고 할 때도 늘 그 특유의 짧고 굵은 대사로 응원해 주던 선배였다. 그 응원의 마음으로 초대 사례금 한 푼 받지 않고 비행기표와 숙소 비용도 본인이 부담하면서 제주로 내려왔다.
허나 제주 창조 여신 설문대할망이 우리의 제주사랑을 시험하려 한 걸까, 이런 날씨에도 제주를 즐겨야 한다고 가르치려던 걸까.
대포 바닷가에서도, 베릿내 오름에서도, 논짓물에서도, 그 멋진 박수기정이 죄악 신기루처럼 나타나야 할 대평포구에서도 비는 쉬지 않고 쏟아져 내려 시야를 가렸다. 우비를 입고 우산을 썼는데도 흠뻑 젖어서 다들 물에 빠진 생쥐 떼들 같았다.
그런 우리의 고된 여정을 감동으로 마무리 짓고 덜덜 떨리는 빈속을 따뜻하게 채워준 건 포구에서 대평 부녀회가 커다란 가마솥에 끓여낸 보말칼국수였다. 이 외진 마을을 찾아와줘서 고맙고 반갑다고. 그것도 무상으로 제공하는!
먹는 일에 누구보다도 진심인 희은 언니가 보말칼국수를 흡입하듯 먹은 뒤에 날 돌아보면서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명숙아!! 최고의 출연료다! 이걸로 됐어!”
나는 당시 국수를 끓이는 데 동참했었다는 전 어촌계장 강월출 삼춘을 와락 껴안았다. 물질을 앞두고선 어지간해서는 사진을 찍는다든지 애먼 짓을 하지 않는 해녀 삼춘들이 선선히 포즈를 취해준 건 순전히 그날 올레 개장 날의 기억을 함께 간직한 덕분이었다.
아, 길을 나서길 정말 잘했다.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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