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만대 주차장 대체 어디에...무너진 차고지 ‘다음 카드는’
[제주의 교통정책] ⑦차고지증명제 인프라 확충 한계점 ‘보완 정책 고민’
제주는 1990년대 본격적인 마이카시대를 맞아 차량이 급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각종 택지개발로 인구도 늘었다. 2010년대에는 관광객까지 밀려들면서 교통인프라가 포화 상태에 놓였다. 주요 도로는 막히고 도심지 곳곳에서 주차 전쟁이 벌어졌다.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2017년 버스준공영제가 도입됐다. 렌터카총량제와 차고지증명제 등 각종 정책도 쏟아졌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수송 분담률은 제자리걸음이다. 갖은 교통정책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창간 21주년을 맞아 제주 교통정책의 현주소를 순차적으로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다. [편집자 주]
차고지증명의 발단은 차량 증가에 따른 주차난 해소가 목표였다. 자고 일어나면 늘어나는 자동차 탓에 도로는 혼잡해지고 주거지 도심지 전체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해갔다.
실제 2000년대 초 제주 등록 자동차가 20만대에 육박하면서 주택가와 상점가를 중심으로 주차 전쟁이 벌어졌다. 집 앞에 화분이 등장하고 주민 간 갈등은 싸움으로 번졌다.
행정에서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인프라 확충에 나섰지만 차량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원도심의 경우 주차장 건설을 위한 부지확보 자체가 어려웠다.
차고지증명은 발상의 전환이었다. 자동차 구입 단계에서 행정이 아닌 차량 소유주가 보관 장소를 마련하도록 했다. 주차 인프라 비용을 차주에게 부담시켜 수요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2002년 제주시에서 첫 논의가 시작된 이후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법제화가 이뤄졌다. 자동차 관리 특례를 마련하고 도지사에게 차고지 확보 명령 권한을 부여했다.
제도 정비를 마친 제주도는 2007년 2월 전국 최초로 차고지증명제를 도입했다. 반대 여론을 의식해 대형자동차를 우선 적용하고 단계별 도입 방안을 마련했다.
당초 2010년 소형차를 포함한 전 차종 시행을 계획했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2022년에야 실행에 옮겼다. 우여곡절 끝에 본궤도에 올랐지만 도입 3년 만에 정책은 후퇴했다.
헌법상 기본권과 재산권 침해 논란이 발목을 잡았다. 도로교통법상 차량 운행 제한은 가능하다. 반면 특별법을 활용해 보유 자체를 규제하는 곳은 제주가 유일했다.
이에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차고지증명 및 관리 조례’를 개정해 다자녀가정과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등을 차고지증명 대상에서 제외했다.
배기량 1600cc 이하와 경차, 소형차, 1t 이하 화물차, 전기차, 수소전기차도 수혜를 받았다. 결국 대상 차종 37만대 중 약 72%에 해당하는 26만대의 차고지증명 의무가 사라졌다.
조례 시행과 동시에 차고지 말소 신청도 잇따랐다. 비용을 들여 사유지나 사설 주차장 등을 마련한 운전자들이 줄줄이 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실제 제주시에서는 보름 만에 1000여명이 차고지증명 말소 신청에 나섰다. 사설 주차장 임대의 경우 잔여 계약이 남아 있어 말소 사례는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차고지증명은 차량 소유에 대한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지만 동시에 차량 증가를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정책 중 하나다.
1인 가구가 늘고 고도지구 등 규제 완화로 건축면적이 늘면 도심지 주차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단속 카메라를 활용한 또 다른 제재를 내세워야 한다.
제주시는 주차 인프라 확충을 위해 ‘민간(민영) 주차장 설치 지원사업’을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무료개방 주차장 지원사업도 추진했지만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에 주차공유 정책까지 등장했다. 이는 공공은 물론 민간주차장을 함께 사용하고 실시간으로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다. 최근 제주도는 주차공유 조례까지 만들었다.
주택과 상업시설 등 도내 민간 주차면수는 40만대에 이른다. 정보통신(ICT)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하면 이미 조성된 막대한 주차시설을 실시간 확인하고 사용할 수 있다.
만성적인 주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차주는 비용을 지불하고 제공자에게는 혜택이 돌아가는 사회적 합의도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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