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입증된 학교 ‘민원 대응팀’...“소 잃고 외양간 더 이상 안돼”
3월 초부터 두 달 간 민원 고통 교육청도, 학교도 몰라 교사 개인정보 접근 막는 법적 장치, 플랫폼 마련돼야
“우선 교육활동 침해 행위를 예방하기 위하여 각급 학교에 관리자로 구성된 민원 대응팀을 구성, 민원 처리를 교직원 개개인이 아닌 기관이 대응하는 체계로 개선하고 학교장 책임하에 운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광수 제주도교육감 기자회견 가운데 (2023.08.31.)
지난 2023년 7월, 서울 서이초 교사가 악성 민원에 시달린 끝에 세상을 떠난 지 약 한 달이 지나고, 김광수 교육감은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활동 보호 지원방안’을 발표했다.(관련 기사 : 김광수표 교권보호 대책은?...“2학기부터 학교 전화기 녹음”)
지원 방안의 핵심은 민원 처리를 교직원 개인이 아닌, 학교장과 기관이 ‘민원 대응팀’으로 대응하겠다는 요지다. 그러나 기자회견을 발표한지 1년 9개월이 지나고, 제주에서는 동일하게 악성 민원에 지속적으로 고통을 받던 현승준 교사가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제주도교육청(이하 교육청)이 내세운 교육활동 보호 대책은 학교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사실이 입증됨에 따라, 더 이상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도록 교육청과 교육부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역할 실종된 민원 대응팀, 실효성 상실
지난 2023년 8월 31일 기자회견 이후 제주 모든 학교에는 민원대응팀이 만들어졌다. 교직원 개인이 민원을 책임지는 일이 없도록, 민원대응팀에는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이 속해 있다. 민원대응팀에 사안이 접수되면 필요에 따라 행정시 교육지원청과 제주도교육청을 거쳐 추가 대책과 대응이 더해진다.
그러나 현승준 교사 사례에서 보면, 민원대응팀은 허상에 불과했다. 3월 5일 학생 가족으로부터 첫 민원 전화를 받기 시작한 이래, 5월 중순까지 현승준 교사는 하루에도 열 통이 넘는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학생 가족이 5월 16일 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하고, 19일 교육청이 제주시교육지원청으로 사안을 전달하고, 이후 제주시교육지원청이 현승준 교사의 학교로 민원 내용을 전달하면서, 사실상 정상적인 절차를 역행하는 과정을 보였다.
심지어 해당 학교 교장은 현승준 교사를 상대로 학생에게 적절한 용어를 사용하라고 조언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두 달 넘게 악성 민원 전화에 시달리는 동안, 학교 민원대응팀도 교육지원청·교육청도 실태를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김광수 교육감은 27일 백승아 국회의원과의 면담에서 “민원대응팀의 가동은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교사 본인의 명예도 있고 정보보호 문제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육현장에서는 민원과 상담 사이에서 판단하기 애매한 사례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승준 교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사로서의 책임감과 열정을 강조했다.
학교 민원 대응팀이 현승준 교사 사례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이런 복합적인 이유가 더해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현승준 교사가 근무했던 학교 교장은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민원대응팀이 사안을 인지했냐’를 질문에 “(저는) 민원대응팀이 가동이 됐다고 말씀 드리겠다”는 말만 남겼다. 교장의 답변은 학생 가족이 5월 16일 교육청에 민원을 접수한 뒤 교육지원청, 학교, 현승준 교사까지 전달되는 과정에서의 대응을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학교 민원대응팀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대응은, 학교가 양 행정시 교육지원청 통합민원팀으로 보내 처리하도록 절차가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현승준 교사 사례는 제주시교육지원청 통합민원팀에 보내지 않았다. 학교 차원에서의 기민한 반응이 아쉬운 대목이다.
3월 초부터 두 달 동안 학교 민원대응팀이 인지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현승준 교사의 제자인 고등학교 2학년 최형준 군이 남긴 말이 울림을 남긴다. 최형준 군은 26일 언론 간담회에서 “교사 혼자서 너무 많은 짐과 책임을 짊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했다. 그 사람이 왜 힘든지 어떻게 힘든지를 학교 구성원마다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개인정보 보호 등 촘촘한 제도적 장치 필요
현재 학교 민원 대응팀 체제는 일선 교사의 판단과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가 어떤 사정 때문에라도 알리지 않으면 손 쓸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렇기에 민원 대응팀이 조치하기에 앞서, 아예 악성 민원이 교사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도록 하는 보다 강력한 보호막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광수 교육감도 27일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은 학교 대표전화 하나, 중간에 중재자 정도만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청은 2023년 교육활동 보호 지원방안으로 교원안심번호 서비스를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교원들의 안심번호 가입은 저조한 상황이다. 유치원은 24%, 초등학교 가입률은 51%, 중학교는 36%, 고등학교는 13%에 불과하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가입률은 급격히 낮아지는데, 그 이유는 학생들과 여러 교육활동을 위해 온라인 메신저를 이용하기에 부득이하게 전화번호를 노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7일 제주를 찾은 백승아 의원은 “교사와 학부모 등 외부가 유선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도록,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정부가 제작해 초·중·고등학교에 무상으로 적극 보급해야 한다”면서 더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빠르면 6월 21일 시행을 앞둔 초중등교육법을 보다 세밀하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교육부는 시행령 작성에 공을 들여야 하며, 무고한 아동학대 신고를 막는 ‘아동복지법 개정’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