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동풍’ 토론회? “제주 섬식정류장 문제점, 1년 전 지적했다”
홍명환 “1년 전 지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나” 일침 자찬 속 날카로운 비판 “보여주기 말고 성능·기능 집중해야”
제주시 서광로 3.1㎞를 대상으로 이뤄진 제주형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고급화 사업이 보여주기식, 토목사업으로 흘러간다는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됐다.
1년 전 토의에서 나온 지적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는 날 선 지적도 이어졌다.
제주특별자치도는 10일 오후 2시 설문대여성문화센터 2층 다목적실에서 ‘제주형 BRT고급화사업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서광로 BRT 사업을 돌아보고 개선점을 찾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주제발표에서부터 이 같은 목표는 무너졌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오동규 박사는 ‘BRT 소개 및 이해’를 주제로 BRT에 대한 설명과 향후 기대효과 등 내용을 발표했다.
서광로 BRT 사업을 냉정하게 되짚고 개선점을 찾는다기보다 국내외 BRT 도입 사례를 소개하며 BRT의 장점, 도입 당위성을 강조했지만 문제점 분석이나 개선점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에 토론 좌장을 맡은 현병주 제주교통방송지사장은 “서광로 BRT 개통 이후 제기된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주제발표의 연계성이 다소 떨어진다”며 “제주형 BRT 사례와 교통 시스템 변화를 따로 발표해줬다면 토론회가 알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에는 △김봉조 삼화여객 운수종사자 △홍명환 전 도시재생지원센터장 △송규진 제주YMCA 사무총장 △김태흥 국토교통부 대도시권 광역교통위원회 사무관 △김거중 한국교통연구원 박사 △박준 도화엔지니어링 전무가 참여했다.
본격 토론에 앞서 현병주 지사장은 “서광로 BRT 개통 이후 민원으로 대중교통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들었다”며 “이번 토론회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다양하게 나타난 개선점을 논의하고 향후 발전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에서 홍명환 전 도시재생지원센터장은 “보여주기식 시설에 너무 집중하고 있지 BRT의 성능과 기능 측면에는 등한시한 것 아니냐”며 “대중교통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이 토목사업으로 흘러가지 말았으면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또 지난해 토의에서 섬식정류장 이용 수요를 설계에 반영하는 문제와 관련해 시간당 승하차 인원보다 순간 동시 승하차 인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모양”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홍 전 센터장은 “제주도민들의 원성과 거리가 먼 발표다. 또 제주형 BRT는 고급화를 논할 단계가 아니라 초급화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의 문제”라며 “물론 BRT를 구현한 중요한 역사를 썼다고 생각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400대 가까이 되는 시외버스는 양문형이 아니라 섬식정류장을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부터 전문가 토론회에서나 설계 용역진에 말한 내용”이라며 “어떻게 할 것이냐 문제를 제기했지만, 결국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직무유기”라고 날을 세웠다.
또 “그렇게 내놓은 대책이 시외버스도 마찬가지로 좌석을 줄이면서까지 양문형 버스로 교체한다는 것”이라며 “1년간 대책을 미뤄놓고 또 2년여 뒤로 미루는 건 대책을 수립하는 행정의 기본적인 자세와 방법이 잘못된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전국적인 창피다.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는데 그중 절반이 3차로를 이용하고 있지 않나”라며 “차선 6개 중 버스가 이용하는 차로만 4개다. 이 같은 문제를 도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수용하겠나. 이런 것은 행정 설계에서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 전 센터장은 “나머지 절반의 실패를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 시외버스의 경우 BRT 진입을 막거나 무정차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며 “또 제주시청이나 한라병원, 탐라장애인복지관, 동광양 등 거점 정류장은 섬식 말고 상대식을 도입하는 등 혼용할 필요도 있다”고 제언했다.
송규진 사무총장은 이번 제주형 BRT 설계과업 총괄 책임을 맡은 박준 도화엔지니어링 전무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처음부터 시스템이 완벽할 수 없다며 서광로 3.1km를 시범적으로 개통한 뒤 여러 가지 문제점을 파악해 보완해나가는 방식으로 추진 중이라는 발언이다.
송 사무총장은 “대중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3.1km를 해보면서 차차 보완해나가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걱했다”며 “제주도민들이 시험 대상도 아니고 행정에서 인프라를 구축할 땐 플랜B, 플랜C 등 계획을 세우고 철저하게 설계를 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이어 “예측 가능한 부분을 사전에 제거하면서 추진했어야 했다. 처음 도입하는 제도인데 당연히 혼선이 빚어지지 않겠나”라며 “또 고급화라는 용어도 쓰지 않았으면 한다. 고급화 기준을 만족한 다음 용어를 사용해야 행정 신뢰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제주도민들의 보행 길이가 짧다. 100m가 넘어가면 차를 이용하는데 200~300m 떨어진 섬식정류장을 이용하도록 하려면 개인형 이동장치(PM)의 연계성을 높여야 한다”며 “유기적 네트워킹이 될 때 운전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가용 운전자를 유인하기 위해 정류장 접근성이나 이용객 편리성을 높여야 한다”며 “그리고 BRT 사업을 통해 대중교통 수송 분담률을 2030년까지 얼마나 올릴지 목표를 세워 점검, 예측 가능성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삼화여객 소속 운수종사자 김봉조 씨는 “문을 닫으려 할 때 뛰어오는 분들이 있는데 양문형 버스 뒷문에 감지 센서가 없어 위험하다”며 “또 전용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속도가 높으니 대형사고로 이어지는데 홍보나 신호체계 보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교통연구원 김거중 박사는 “부정적인 의견은 BRT를 도입하는 모든 지자체가 겪는 성장통”이라며 “인간은 변화에 민감하다. 변화에서 오는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지 BRT 도입 이후 편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어 “승용차 이용자는 당장 불편을 느끼겠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승용차 이용자 편의 개선을 위한 교통체계 개선사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2~3년 내 문제들이 많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도민들이 체감하려면 단계별 BRT를 모두 구축해야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도입 목적을 다시 한번 명확히 체크하고 덜어낼 것은 덜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흥 사무관은 “시민이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앞서 나온 문제들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라면서 “정부도 제도개선이나 예산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