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만 끝나는 제주4.3, 70여년 뒤 겨우 벗어난 굴레

[4.3재심, 역사의 기록] (119) 2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20명 무죄

2025-07-08     김찬우 기자

본가에 다녀오던 길에 붙잡혀 끌려간 뒤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학생, 죄 없이 끌려간 뒤 실형을 선고받고 형기를 마친 것도 억울한 데 다시 붙잡혀가 영문도 모른 채 총살당한 청년.

억울한 재판을 통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뒤 예비검속에 붙잡혀 정뜨르비행장에서 총살당해 바다에 수장된 청년, 죽은 이후로도 내란 전과자라는 오명을 지우지 못한 고인. 

증거 없이 죄인이 된 이들이 70여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8일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노현미 부장)는 ‘제주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제2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 대상자 20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열린 2개 재판과 이번 재판을 포함해 이날 하루 동안 직권재심 일반재판 재심을 통해 명예를 회복한 4.3피해자는 모두 60명이다. 누적으로는 총 321명으로 집계된다. 

이날 고(故) 김두규의 호적상 조카이자 족보상 아들인 김창호 씨는 법정에서 “잘못된 재판을 바로잡아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며 무죄를 호소했다. 고인은 1950년 6월 제주에서 국가보안법 및 법령 19호 위반, 내란죄 등 혐의로 기소돼 금고 2년형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제주4.3 당시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양자가 됐다. 이에 지금도 큰아버지의 제사를 본인이 모신다. 그러나 당시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면서 지금까지도 호적상으로는 조카로 남아있다. 

김씨는 “4.3 이후 태어나 자세한 내용을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께 모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이자리에 와서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를 들어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장손이라 큰아버지(김두규)의 아들로 입양, 아버지가 됐다. 그 기록은 집안 족보에도 남아있다”며 “할아버지 말씀으로 부친께서는 국가 공무원이셨다고 했다. 전혀 이런 사건에 연루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억울함을 표했다. 

그러면서 “잡혀가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네 사람들이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함께 배에 태워진 채 바다로 나갔다고 했고 그길로 돌아오시지 못했다”며 “그래서 가족들은 수장됐다고 생각한다. 그날이 음력 6월 초하루였고 그래서 지금도 이날 제사를 모신다”고 말했다. 

이날 법률상 피고인인 4.3희생자 대부분은 무장대에 식량과 자금을 조달하거나 삐라를 살포하고 5.10 총선거를 방해할 목적으로 도로 통행을 방해하는 등 혐의를 받는다. 징역 실형은 물론 집행유예나 벌금 등 다양한 형태로 죄인이 됐다. 물론 죄를 증명할 증거는 없다.

합동수행단의 무죄 구형에 이어 무죄를 요청한 변호인은 “피고인 상당수는 형을 마친 뒤 반복적으로 검거된 이후 살해되거나 행방불명됐다”며 “단순한 형사처벌을 넘어선 국가폭력이 반복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피고들에 대한 무죄 판결은 늦었지만 억울함을 회복하고 이 땅의 법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삶과 죽음 앞 국가의 책임을 밝혀 판단해달라”고 재판부에 무죄를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실형인지 집행유예인지 관계없이 그 과정에서 겪었을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다”며 “개인의 존엄이 희생되고 삶이 피폐해진 이 사건으로 희생자들과 유가족의 억울함이 얼마일지도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한 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은 직권재심 명예회복 명단(최근 10개 사건)

17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11월19일)
양상진, 고승현, 문달화, 양병기, 김원체, 오두석, 문상호, 김태석, 전봉주, 김형택, 김팔부, 장인관, 이을생, 이평규, 이인순, 백문수, 백문옥, 강세규, 진원택, 김영욱

57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김묘생, 박생운, 김여선, 고영규, 김평후, 이창현, 양경하, 고정규, 정병오, 김선익, 김대규, 한만년, 좌중희, 고봉철, 김봉후, 김형인, 현채옥, 이승홍, 이군방, 문계현, 오병현, 윤공례, 이종주, 이종인, 정병하, 양을생, 김용승, 임성범, 진달근, 김영숙

18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4년 12월10일)
한상섭, 한진섭, 김태중, 김원준, 박성택, 양귀, 강중하, 문혁하, 백인명, 오인백, 오병문, 임정길, 오태문, 김갑순, 강재반, 김용숙, 양석보, 김상두, 현창식, 김지담

19~20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영주, 강병순, 김승림, 고석부, 현필현, 김용문, 양봉언, 이운경, 박달천, 고태붕, 고승호, 박중원, 김태봉, 강순교, 양창주, 김묘현, 고기백, 고창현, 고두선, 문상림, 김시화, 문창석, 박윤옥, 김호선, 양원민, 오용범, 강대형, 김관진, 김용원, 이승조, 정남흥, 안재흥, 김기석, 임록협, 한명석, 양태옥, 김진호, 김경호, 박기출, 김하균

58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2월11일)
김장암, 현봉추, 현진옥, 김공현, 김여량, 양영구, 고성봉, 현진, 임영호, 정명순, 강윤부, 김두천, 문자언, 안한봉, 안해봉, 고점필, 홍찬효, 현병익, 강근택, 강위보, 정관휘, 김택환, 이하윤, 강성희, 이상호, 강순현, 오치홍, 이경수, 김진주, 문수명

59차 군사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이기찬, 전영윤, 홍중보, 장도현, 김병화, 김군산, 고춘생, 김전호, 현기추, 송인현, 변만조, 고영문, 고일철, 김방하, 이복순, 김범진, 박화춘, 안임생, 김춘화

23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4월8일) 
임동야, 이상봉, 현봉규, 현두평, 조재두, 정창옥, 고태규, 강석규, 강관주, 안창규, 김태인
장성근, 현철종, 김시보, 우성대, 강진희, 이봉휴, 고신순, 황승휴, 김창순  

21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한석, 우정생, 정옥련, 문도훈, 김명국, 강원선, 강몽필, 송남규, 양기형, 오남곤, 김태우, 김완봉, 진생남, 고대호, 김봉우, 서인수, 고재철, 김진국, 김탁하, 문팽용

22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오도흠, 김병화, 부규방, 양동직, 문종옥, 오남숙, 오영호, 김종하, 김양선, 강인현, 고성학, 김두석, 고창잠, 고두옥, 양성수, 송만표, 강위옥, 양병오, 강순옥, 김태준

24차 일반재판 직권재심(2025년 7월8일)
김정택, 현봉석, 최운길, 강희진, 문성순, 홍성태, 김홍집, 강순열(이명 강순옥), 채수삼, 김덕수, 오동식, 김기식, 오기봉, 진영숙, 김두규, 고방전, 부덕삼, 안상숙, 오창서, 고군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