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훈 제주도지사는 8월 말 시한을 이번에는 지켜야 한다
김종현의 '다른 내일' 제주현안 편 : 제주형 기초단체 주민투표 실시 논란 (4) 말이 아니라 실천이 필요했다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확인된다
제도를 개선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 행정체제를 개편하려 하는가? ① 제왕적 도지사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② 도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를 발전시키고, ③ 도민들의 참여, 자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과 '제주형 기초단체 실시'는 그 목적을 실현하려는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시스템을 변화시킬 때, 제도 설계와 계획에 집중하는 방식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제도의 변화는 설계와 계획이 아니라 시민들의 경험에서 나온다. 시민들이 참여를 통해 효능감을 가질 때, 주민 자치는 성장할 수 있다. 제왕적 도지사 권한을 분산하고, 도민을 위한 행정서비스를 발전시키고, 도민들의 참여와 자치를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했다. 지난 3년 동안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도정의 최우선 과제였으나,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실천은 없었다. 진정성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확인된다. 도민들은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오영훈 지사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도지사의 제왕적 권한, 분산은 시도되지 않아
오영훈 지사는 조례를 통해, 행정시장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보장할 수 있었다. 재정과 예산의 배분도 도지사의 재량이 아닌 조례와 제도를 통해 진행할 수도 있었다. 행정시의 기준재정수요액을 계산하고, 체계적인 재정 배분 방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런 시도가 있었다면, 보통교부세 3% 정률에 대한 계산과 제주형 기초단체 재정 방안 마련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관광, 1차산업, 복지, 문화 등 부문별 예산 편성도 민간이 참여하는 협치를 강화할 수도 있었다. 도지사와 관료에 의한 예산 편성 과정에 민간이 참여하여, 함께 검증하고 기획할 수 있다. 그러나 부문별 협치도 발전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 예술계 주체들을 자치와 분권의 수평적 파트너로서 인정해 달라는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
행정서비스 개선을 위한 과대동, 과소동 문제 해결도 방관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의 목적 중 하나는 '생활 밀착형 행정 서비스 구현'이다. 제주도의 생활 밀착형 행정서비스를 위해, 빠지지 않고 논의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가 과대동, 과소동 문제이다. 제주시는 19개 동, 서귀포시는 12개 동이 존재한다.
노형동 인구는 5만5693명이고, 일도1동 인구는 2303명으로 24배 이상 차이가 난다. 서귀포시의 경우, 정방동은 2136명으로 가장 적고, 동홍동이 2만3407명으로 가장 많다. 10배 이상 차이가 발생한다. 인구 편차에 따른 행정서비스의 불균형도 심하다. 노형동은 공무원은 38명이지만, 일도1동에도 15명이 근무 중이다. 인구 규모 차이에 비해, 공무원 수 차이는 크지 않다. 공무원 1인당 주민수는 10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만큼 행정서비스의 질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노형동은 1년에 24만6666건의 민원을 처리하지만, 삼도2동은 700건에 불과하다. 인구가 너무 많거나 적은 행정동 문제로 인해, 행정서비스의 질과 행정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소동을 통폐합하여, 인건비를 효율화하는 대신에 과소동의 재생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을 편성하는 방향이 행정서비스 향상과 균형 발전을 위해서 합리적인 방안이다.
김경학 전반기 도의회 의장은 2022년 7월 1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기초단체 부활과 행정개편 이전에 과대동과 과소동부터 해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영훈 지사는 이에 호응하여, 2023년 1월 관련 검토를 지시하였다. 이후 행정동 조정 TF 구성하고, 제주연구원에 연구도 의뢰하였다. 2023년 9월 한권 의원의 도정질문에도 오영훈 지사는 '임기 내 과소동 통폐합을 마무리하겠다'고 답변하였다. 그러나 이후 방안 제시나 공론화 절차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행정시와 읍면동 예산 비중은 줄고, 참여예산제는 제자리 걸음
오영훈 지사의 임기 동안 행정시와 읍면동 예산은 오히려 비중이 축소되었다. 의회에 제출된 2025년 예산안을 기준으로 하면, 제주도 본청의 예산은 52.6%에서, 56.8%로 확대되었으나, 서귀포시는 17.7%에서 16.4%로, 제주시는 29.3%에서 26.8%로 감소하였다. 금액도 제주시의 경우, 2024년 2조1344억원에서, 2조282억원으로 1062억원이 감소하였다. 읍면동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주시 읍면동 예산은 2025년 937억원으로, 139억원 삭감되었고, 서귀포시 읍면동 예산은 661억원에서 600억원으로 61억원 삭감되었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 자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된 참여예산제도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오영훈 지사는 참여예산제에 일반예산 총액의 1%를 배정하겠다고 공약하였다. 그러나 2024년, 2025년에는 공약 대비 부족한 금액이었다. 2026년에는 공약에 준하는 예산을 편성하였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지역사업이나 지역참여 예산은 늘지 않았다. 행정시, 제주도 본청의 시정참여, 광역사업 예산만 늘어났을 뿐이다. 내년에는 느닷없이 관광사업 예산 30억원을 배정하였다. 시정참여, 광역사업, 관광산업 예산은 참여 예산이 아니라 일반 예산으로 편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6년 기초단체 실시는 현실적으로 실행할 수 없는 상황
행정안전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 이후 실제 주민투표까지는 60일이 소요된다. 제주도는 그동안 8월 말을 행정안전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 시한이라고 했다. 그래야 10월 말 주민투표가 가능하다. 이 시한을 넘길 경우, 선거구 획정, 내년 예산안, 관련 법률안 정비, 조례안 마련, 청사 등 공간 마련, 정보시스템 변경 등 모든 준비를 실행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용역 보고서는 기초단체 실시 준비 시간을 최소한 1년으로 제시했다. 2025년 6월 말까지는 주민투표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 시한을 넘긴 상황이다.
도의원 선거구 획정안은 올해 말까지 준비되어야 한다. 얼마 전, 7월 12일 제주도의회 예결위 회의에서, 진명기 행정부지사는 도의원 선거구 획정과 관련된 질문에 '광역의회 의원들은 현 정수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답변하였다. 행정체제 개편 용역 보고서는 도의원 정수를 45명에서 22명으로 줄이는 방안이었다. 이제까지 제주도는 다른 방안을 이야기한 적도 없다. 도의회 의원 정수를 유지한다는 것은 내년에 제주형 기초단체 실시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년 예산안 마련도 한참 진행 중이다. 각 부서는 9월 초까지 지방재정관리시스템(e-호조)에 입력하고, 제주도는 11월 1일에 예산안을 제주도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주민투표가 진행된다면, 제주시의 경우에는 제주형 기초단체가 실시될 경우와 안될 경우 2가지 예산안을 준비해야 한다. 상반기 예산과 하반기 예산도 정교하게 분리되어야 한다. 이런 예산안이 준비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오영훈 지사는 8월 말 시한을 이번에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오영훈 지사의 공약은 임기 2년 이내에 주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후 주민투표 실시 시한은 2024년 9월, 11월, 12월로 계속 변경되었다. 12.3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에서도 2025년 6월 발의 후 8월 주민투표 실시가 가능하다는 희망 회로를 작동하기도 했다. 이제는 8월 말까지 행정안전부의 주민투표 실시 요구 시한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시한을 지키기 위해서는, 도민 공감대를 재확인하고, 사무와 재정 배분 방안을 제시하고, 국회의원, 도의회 의장 등과 정치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노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일각에서 8월 말 시한을 수정하여, 2026년 초에 주민투표 실시하고, 2030년에 제주형 기초단체 도입하자는 해괴한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4년 뒤 실시할 것을 가지고, 주민투표를 하는 경우는 없다. 행정안전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방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없다.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불필요한 논란을 지속해서는 안된다.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의 몫이다. 8월 말까지 행정안전부의 주민투표 요구가 없으면, 제주형 행정체제에 대한 모든 것은 다음 도정의 과제로 넘겨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각 후보들이 방안을 제시하고, 2030년까지 착실히 준비하면 될 일이다.
지금 제주 경제와 민생은 전대미문의 위기에 빠져 있다. 제주의 주민등록인구는 2022년 67만 8159명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25년 6월 말 기준, 66만6625명으로 1만1534명이 감소하였다. 주민등록 인구 감소 속도는 점점 더 가속화하고 있다. 내국인 관광객 수는 2022년 1380만명을 정점으로, 2024년에는 200만명이 감소한 1186만명이었다. 올해 7월 말까지도 작년보다 8.7%, 60만명이 감소한 상황이다. 국내 경기 부진, 엔저 현상, 일본 관광객수 증가,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적 불안 등 내국인 관광객 감소를 설명하던 외부 요소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럼에도 내국인 관광객 수는 작년 대비 상승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경제 위기 극복과 민생 회복을 위해 집중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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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김종현은?
김종현의 이력은 다채롭다. 다채롭지만 맥락이 있다. 제주의 미래가치에 기여하는 것이 소명이라는 그답게, 그의 행보에는 ‘제주의 더 나은 내일’이라는 일관성이 엿보인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천주교 사제가 꿈이던 그는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인터넷포털 ‘Daum’에 입사해 검색 비즈니스팀장을 지내다 2003년 Daum의 제주 이전 실무 책임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고, 넥슨의 지주회사인 ‘NXC’로 이직, 넥슨 관계사들의 제주 이전과 사회공헌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