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이식 20년, 여전히 생활고…소수장애인의 외로운 싸움

[조용해서 더 아픈 손가락] ➅ 간장애인 이숙희씨

2025-09-13     원소정 기자

장애인 인구 270만명 시대. 그 중에서도 안면, 심장, 뇌전증, 간, 장루·요루, 호흡기 장애를 앓는 이들은 전체의 1%도 채 되지 않는 ‘소수 장애인’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장애인이라는 소수자 안에서도 또다시 소수로 분류되며, 제도와 사회의 시선에서 더욱 먼 변두리에 서 있다. [제주의소리]는 이중의 소외를 겪고 있는 ‘소수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낯설고 적은 수라는 이유로 정책과 복지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의 현실은 어떤지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한다. [편집자주]


지난 6일 탐라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가명·75)씨가 간장애인으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간 이식을 받은 날은 가족이 준 새로운 생일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기쁨 뒤에는 지원이 줄어든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죠.”

최근 탐라장애인복지관에서 만난 간장애인 이숙희(가명·75)씨는 2003년 막내아들의 간을 이식받았다.

당시 수술비만 8500만원에 달했으며, 이후 치료비까지 합하면 2억원이 넘었다.  당시에는 간 이식 수술이 의료보험 적용이 안되던 시기여서, 빚과 생활고가 평생의 짐으로 남았다. 이에 “아이들을 키우며 사용했어야 할 돈을 쓴 미안함은 평생 가슴에 남아 있다”는 것이 이씨의 고백이다.

이씨의 간 질환은 젊은 시절부터 삶의 발목을 잡았다. 27세 무렵 서독 간호사 파견을 준비해 교육까지 마쳤으나, 건강검진에서 ‘염증이 있다’는 판정을 받아 출국하지 못했다.

그는 “서독 파견을 위해 보건소 일을 그만뒀는데, 결국 일자리와 해외 취업 기회를 동시에 잃었다”며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없어 답답했지만, 당시에는 크게 문제라 생각하지 않고 지나쳤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이후 건강은 점차 악화됐다. 세 자녀를 양육하며 생계를 책임지던 30대 중반, 그는 결국 ‘간 기능이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고, 우울증까지 겹쳤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 뒤 동생의 권유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의료진은 즉각 수술을 권고했다. 세 자녀 모두 간을 내어주겠다고 나섰으나, 결국 막내의 간으로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는 “아이들을 이 정도까지 키웠으니 이제 죽어도 괜찮다”는 체념 속에 수술대에 올랐다.

그러나 간 이식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해야 했으며, 음주는 물론 염분 섭취도 철저히 제한해야 했다.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피로와 감염 위험은 일상 속에서 늘 따라다녔다.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하고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 ‘소수장애인의 복지욕구 및 실태에 관한 연구’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 ⓒ제주의소리

더욱 심각한 문제는 간 이식을 받은 후 장애 등급이 오히려 5급으로 하향 조정됐다는 것. 이씨는 “교통비 지원도 없고 전기·수도요금 감면 혜택도 전혀 없다”며 “살기 위해 이식을 받았는데, 지원은 오히려 줄어든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생활고는 여전히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최근까지 중증장애인 스포츠 활동 지원 근로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으나, 체력 부담으로 내년부터는 중단할 예정이다. “건장한 남성 장애인의 파크골프를 돕고 있으나 이제는 체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간 장애인 모임에 소속돼 도청에 지원을 건의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질적 변화는 없었고, 회의감 속에 모임을 탈퇴했다.

이씨를 비롯한 많은 간 장애인들은 “다른 장기장애인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지는 간 장애인은 혜택에서도 뒤처진다”며 “결국 ‘내 건강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간 이식 환자는 면역억제제 복용으로 인해 감염과 합병증에 더욱 취약하다. 하지만 일부 약제는 보험 적용이 안돼 환자가 직접 부담해야 한다.

이씨는 “다른 질환이 발생했을 때 간 이식 환자에게는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 중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약이 있어 환자들의 부담이 매우 크다”고 전했다.

간 질환은 그의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얼굴 부기 탓에 동창 모임에서 거리를 두는 시선을 경험한 이후, 그는 모임에 나가지 않았다. 남에게 피해를 줄까 늘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소심해지고, 스스로를 숨기게 된다고 했다.

현재 국내 등록장애인은 약 263만1000여명으로 전체 인구의 5.1% 수준. 이 가운데 간 장애인은 1000여명으로 0.6%에 불과하며, 제주지역은 220여명에 머문다. 적은 수라는 이유로 간 장애인은 제도적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쉽다.

이씨는 남은 생애만큼은 조금 더 편안하고 존엄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간장애는 생소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간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갑니다. 간장애인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와 제도적 배려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만큼, 최소한의 제도가 뒷받침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이 인터뷰는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이 주관하고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후원한 ‘소수장애인의 복지욕구 및 실태에 관한 연구’의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로 진행됐습니다. 숙희씨와 같은 1% 미만의 소수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