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도시숲, 도시정원의 접근 방향
[제주자연의벗-제주의소리 공동기획] 제주도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제언 ④
제주도당국은 오랫동안 환경수도 등 친환경적인 도시를 지향한다고 공공연하게 거론해왔다. 이 중에 실제로 구체화 된 것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15분 도시’로 보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15분 도시’의 취지는 직장, 학교, 가게, 공원 등이 가까이 있어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적, 생활 편의성이 높은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15분 도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제주 도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필연적이기에 제주자연의벗-제주의소리는 제주도의 ‘15분 도시’에 대한 진단과 함께 제주도 도시 패러다임 전환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기획 연재를 5회에 걸쳐 진행한다. [편집자 주]
도시는 더운 여름과 미세먼지, 극단적 강수처럼 거칠어진 계절을 정면으로 겪고 있다. 바람이 드나들 틈을 잃은 골목과 과열된 아스팔트 위에서 시민들은 그늘을 찾고 숨을 고른다. 도시의 ‘숲’과 ‘정원’은 그래서 더 이상 장식이 아니다. 생활권의 안전망, 기후위기 시대의 필수 기반시설이다. 한국의 도시녹지 정책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제주는 ‘정원도시’라는 이름으로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산림청 도시숲·정원 정책: ‘생활권 녹색 인프라’ 전환
산림청은 도시숲을 단순 조경이 아닌 기후 적응형 인프라로 규정한다. 도시 외곽의 찬 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여 열섬을 낮추고 대기 오염을 줄이는 ‘도시바람길숲’을 2019년부터 전국 17개 도시에서 추진해 왔으며, 실제 선형 숲길을 따라 생활권 환경을 개선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산림청 2025년 업무계획에는 기후대응 도시숲 107개소, 도시바람길숲 20개 도시, 자녀안심그린숲 60여 개 등 대규모 사업이 제시되어 있다. ‘지역 활성화’ 같은 타 부처 사업과의 연계를 통해 도시숲 조성 범위를 넓히겠다는 방향도 분명하다. 즉, 도시숲이 교통·도시재생·복지와 결합하는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는 구상이다.
산림청 정원 정책의 축도 강화되고 있다.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은 정원의 조성·운영·육성의 기준을 정하고, 정원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확장하는 근거가 된다. 2021년 고시된 제2차 정원진흥기본계획은 ‘언제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정원’을 비전으로 삼고 정원 인프라를 2025년까지 약 2400개소로 확대하고 정원 산업 규모를 2조원대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정원은 치유·교육·산업이 결합된 복합공간으로 진화하는 셈이다.
6월30일 기준으로 국가정원 2개소, 지방정원 14개소, 민간정원 164개소 등 180개소가 등록됐으며 생활밀착형(실내·외), 치유, 베란다, 커뮤니티 등 다양한 유형의 정원 조성 사업이 진행 중이다.
올해 ‘보급형 모델정원 개발’ 사업이 추진 중이며 특히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서식처 정원(식물·곤충·미생물 등이 공존하는 생태기반 정원), 폴리네이터 정원(벌·나비 등 꽃가루 매개자를 위한 야생화 중심 정원), 저관리형 정원(기후변화 대응형으로 관리 부담을 낮춘 정원) 등이 중점 모델이다.
도시숲과 정원은 그래서 한 축으로 만난다. 도시의 공기순환·열섬 완화·미세먼지 저감 같은 숲 기능에, 치유·교육·문화·산업이라는 정원의 역할을 포갠 통합 녹색 전략이다. 이 통합적 시각이 ‘정원도시’ 논의로 확장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제주도 도시숲·정원 정책
제주는 민선 8기 공약으로 2022~2026년 5개년 계획의 ‘도민이 행복한 제주숲 만들기, 600만 그루 나무심기’를 추진 중이다. 총사업비 663억 원(국비 265억 원, 도비 398억 원)을 투입해 매년 120만 그루를 심는 계획이다. 2025년 9월까지 461만 그루, 목표의 77%를 달성했다. 이는 연간 2만75t의 탄소를 흡수해 승용차 8365대의 배출가스를 줄인 효과와 맞먹는다고 알리고 있다.
숲의 유형도 다양하다. 애조로·강정동 등 8개소 16ha의 ‘기후대응 도시숲’, 연북로·삼매봉 등 10개소 13.7ha의 도시바람길숲, 신성여고·태흥초·아라초 등 학교 숲과 자녀안심그린숲, 일도2동·복합혁신센터의 생활밀착형숲까지 생활권 중심의 녹지들이 빠르게 늘었다.
2024년부터 ‘제주숲(Jeju is Forest·JIF) 공간혁신 프로젝트 시즌2-숲으로 도시를 품다’를 시작했다. ‘600만 그루 나무심기 사업’에 대해 경관적 조경 디자인 미흡, 도민참여 요구를 반영·공유할 수 있는 창구 미흡, 향토수종을 포함한 수종 다양성 한계 등을 반성하며 △걸어서 10분이면 숲을 만나는 도시 △끊김 없이 이어지는 녹지축 △제주를 대표하는 도시숲 △도민과 함께하는 숲 △데이터 기반 과학적 관리 등 다섯 가지 목표를 세웠다.
공항로를 관문형 그린웨이로 재생하고, 사라봉·삼매봉 같은 상징적 공원은 명소로 키운다. 가로수 생육환경을 개선해 특화거리를 만들고, 디딤·기업·모다드렁 등과 연계한 도심형 힐링숲을 늘린다. 시민정원사 양성, 반려가로수, 게릴라 가드닝, 숲 콘서트 같은 참여 프로그램도 확대한다.
정원과 관련해서는 제주도는 그동안 도민참여 마을정원, 생활밀착형 실내정원 등을 조성했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고 방향성도 보완이 필요했다.
공간혁신 프로젝트 시즌3은 ‘제주숲, 내일의 정원도시로 피어나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2025년 기본계획, 2026년 실시설계, 2027~2029년 조성으로 이어지는 제주형 정원도시 조성 일정을 마련했다. 도시숲을 도시디자인과 생활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려 ‘정원도시’로 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제주도는 현재 ‘제주형 정원 기본계획 및 대상지 타당성 조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용역이 마무리되면 정원도시 기본구상을 좀 더 구체화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본계획 및 기본설계 용역을 추진해 이를 토대로 정원도시를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도시숲을 ‘숲 정원’으로, 정원을 ‘도시의 시스템’으로
최근 정원의 개념이 새롭게 정의되면서, 영역이 점차 확장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도시숲은 규모가 크고 기능이 광범위하지만, 그 안에 휴식·체험·경관 설계가 포함되면 ‘숲 정원’이라는 개념으로 불리고 있다. 가로수·거리녹화·조경공간도 설계·조성·관리 방식이 정원적 맥락과 유사하다면 정원의 범주로 인식될 수 있다.
정원은 이제 ‘꾸민 녹지’를 넘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매개체로 변화하고 있다. 정원도시에서 정원은 더 이상 도시의 장식이 아니라, 도시의 작동 원리이자 생활문화의 매개체라는 뜻이다.
숲은 도시의 숨구멍이자 탄소흡수원이고, 정원은 그 숲을 시민의 일상으로 들이는 매개다. 공기순환과 그늘, 생물다양성과 빗물관리, 길과 광장, 휴식과 치유, 교육과 산업을 하나의 설계로 통합할 때 도시의 풍경은 바뀐다. 산림청이 도시숲을 생활 인프라로, 정원을 치유·교육·산업의 공간으로 끌어올린 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해석이기도 하다.
제주만의 해석도 필요하다. 곶자왈과 오름, 용천수와 밭담, 바람과 현무암, 초지 등의 고유한 생태·지질·기후는 ‘자연이 만드는 정원’의 기초다. 여기에 돌 문화, 마을 숲, 수눌음, 신화 같은 공동체의 삶을 입히면 ‘문화가 만드는 정원’이 완성된다.
제주 도시숲, 도시정원은 어디로?
첫째, 네트워크로 설계하자. 도시숲·정원·가로수·공원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도시 생태축을 구축해야 한다. ‘걸어서 10분 숲(정원)’은 제주 전역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
둘째, 다양하게 정원을 디자인하자. 바람과 현무암, 곶자왈의 그늘과 용천수의 물길을 정원의 언어로 풀자. 식재는 자생종 중심일 수 있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외래종일 수도 있다. 토종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건물, 도로, 하천, 광장 등과 어울려야한다. 지역의 공간적, 지질적 특성도 반영해야한다. 제주는 다양성의 섬이다.
셋째, 도민이 주인인 정원으로 운영하자. 정원은 ‘조성’보다 ‘관리’에 방점이 찍힌다. 주민, 학생, 직장인 등을 정원 설계 단계부터 참여시키자. 시민정원사 양성도 필수적이다. 정원을 가꾸는 도민이 행복해야 지속가능성이 보장을 받는다.
넷째, 정원 기반 경제·관광을 정교화하자. 정원을 잇는 관광루트, 교육·치유 프로그램, 계절 축제를 통해 체류형 콘텐츠를 만들자. 정원 소재 산업과 원예·조경 스타트업의 생태계를 키우자.
다섯째, 데이터로 관리하자. 가로수·도시숲 DB를 구축하고, 열 환경·미세먼지·그늘·생물다양성 지표를 상시 계측해 효과를 숫자로 증명하자. 정원, 도시숲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하는 지표도 도입해야 한다.
유럽의 정원이 ‘질서와 조화’의 미학을 말해왔다면, 제주의 정원은 ‘순환과 공존’의 서사를 쓸 수 있다. 도시의 안과 밖, 자연과 문화, 치유와 산업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정원도시가 태어난다. 공간의 품격과 도민의 참여로 완성되는 도시, 제주의 숲과 정원이 그 길을 먼저 보여줄 수 있다. / 임재영 제주자연문화유산연구회 회장·지리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