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 단단한 울음–노래
[BOOK世通, 제주 읽기] (335) 허유미,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걷는사람, 2025.
1.
허유미 시인은 그의 청소년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2020)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해녀의 삶의 갈피를 청소년의 시선으로 제주의 역사문화적 사회생태적 풍정(風情)을 노래하는 시적 내공은 다음 시집을 기대하도록 하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의 시편들은 한층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 허유미의 시 세계를 드러낸다. 시집의 시편 중 어느 하나 모자랄 게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해녀의 딸이 그 어미(들)의 삶을 가차운 곳에서 목도하고 그 굴곡이 만들어낸 생의 서사와 노래와 춤을 시의 언어로 토해내며 삶터로서 제주 바다와 함께하는 뭇 존재의 비의(秘意)를 허유미는 노래한다.
2.
가령, 아래의 시를 음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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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담배를 물고 불안으로 늙고 있었다/노래를 따라가 보니 물속이었다/무슨 노래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일요일의 아침 햇살 같은 물빛이었다/섬에서는 늙는다는 건 비밀이 될 수 없다/덜 먹고 덜 기대하고 덜 꿈꾸는 것이 비밀이었다/비밀을 없애기 위해 물에 드는 여인들의 노래는/바다의 상상이었다/여인들의 얼굴은 눈이 부시었다가 흐릿해졌다/명령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낭만도 아니었다/순전히 노래가 가는 방향이 물이었기 때문이다/불안과 비밀을 나눌 곳이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노래는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했다/돌고래만 지나는 물길을 잊어도/노래를 잊지 못하는 건 바다의 상상 끝에 가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물속에서 마주한 여인의 표정이 나이고/나는 여럿이고 봄밤이 가라앉고 있었다/노래는 춤인 듯하고 춤은 물의 윤곽인 듯했다/거기서부터 알면 된다는 듯 손금이 늘어났다/서툰 만큼 울어도 되는 곳/열다섯을 지나는 그곳에 나는 있었다 ― 「첫 물질」 전문 |
한평생 물질하고 있는 엄마는 “불안으로 늙고 있”는 중이다. 짐작건대, 엄마는 물질 경험이 풍부한 시쳇말로 베테랑 해녀인 상군(上軍) 해녀의 내력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엄마와 같은 해녀들은 바다의 온갖 생태와 악전고투를 치르는가 하면, 바다의 생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바다에 몸을 맡겨 깊디깊은 바닷속을 자맥질하며 숨비소리를 셀 수 없이 내었을 터이다. 그런 엄마와 함께 해녀들의 부르는 “노래가 가는 방향이 물”이듯, 이 노래는 바다의 도도한 흐름처럼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그래서 “바다의 상상” 속으로 그들은 자맥질한다. ‘상상’의 비의는 이처럼 끝을 알 수 없는 것, 즉 ‘끝의 부재’를 해녀는 온몸으로 노래한다. 더욱이 이 노래는 “춤인 듯하고 춤은 물의 윤곽인 듯” 바다의 리듬과 서사와 율동이 한데 어우러진바, 우리는 ‘해녀=(해녀)노래=(바다)상상=바다’의 관계로부터 ‘첫 물질’의 순간을 마주한 여인(들)의 서툰 울음을 듣는다. 그리고 엄마(들)이 통과한 ‘첫 물질’의 생의 “그곳에” 시적 화자 ‘나’도 있(었)다. 여기서, ‘나’는 예의 해녀들과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물속에서 마주한 여인의 표정이 나이고/나는 여럿”인 복수(福數)의 존재로서 해녀들과 연결돼 있다. 그리고 허유미 시집 곳곳에 존재하는 여인들의 구체성이 바로 ‘제주(바다)’에 있다는 것을 주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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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을 기억하는 날은 앓았다/물이 고막을 찢고 머리를 가득 채웠다/이런 날 여인들은 무자맥질을 한다/바다에 길들여지는 일이란/제 몸이 물의 뿌리라는 걸 아는 것/어둠 속에서도 바다를 쥐고 물어뜯으며/아슬아슬 뻗어 나가 온 섬을 감싸면/바다보다도 지독한 푸른 여자로 핀다고/떠나려면 제주를 버리지 말고/제주마저 업고 떠나야 했다// 여인들은 메고 온 길을 부리고/수십 번 가슴을 쓸어내리며/이를 악물고 다시 물로 간다/살다 힘들면 별자리처럼 이어진 뿌리를 본다/네 힘으로 내 힘도 생긴다는 뿌리들 노래로/단단해진 울음이 제주이다// 살다 힘들면 내 힘으로 네 힘도 생기는/뿌리가 되어 가는 중인 것이다/제주를 키우고 있는 중이다 ― 「제주이다」 부분 |
‘나’가 해녀들과 연결돼 있는 이유를 헤아려봄직하다. “어둠 속에서도 바다를 쥐고 물어뜯으며/아슬아슬 뻗어 나가 온 섬을 감싸”온 해녀는 “제 몸이 물의 뿌리라는 걸” 생득적으로 알고 있다. 이 뿌리들이 제주 바다에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고, 해녀의 딸로 생장한 ‘나’는 생득적으로 ‘나’의 생의 뿌리도 그들과 이어져 있음을 감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바다의 상상’을 통해 좀 더 구체적 심상을 허유미의 시에서 만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해녀=(해녀)노래=(바다)상상=바다’는 ‘뿌리의 상상’이 더해지면서 뿌리들이 서로 교차하며 연결돼 뿌리를 지닌 존재가 서로 생의 버팀목 역할을 해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생의 난바다 사위에 갇혀 아무리 고되고 힘든 현실에 직면하더라도 “네 힘으로 내 힘도 생긴다는 뿌리들 노래로/단단해진 울음”으로 살아낼 수 있다. 여기에는 바다를 땅과 대비되는 물리적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을 넘어 제주 사람들에게 바다는 대지의 상상력과 분리되지 않는, 그리하여 바다의 물질은 땅에서 농사짓는 것보다 결코 폄훼될 수 없는, 바다도 또 다른 ‘밭’으로 간주함으로써 시인에게 ‘뿌리의 상상’은 독창적 심상의 언어로 추가된다. ‘해녀=(해녀)노래=(바다)상상=바다=뿌리=제주’의 관계는 허유미의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지배적 심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3.
이러한 지배적 심상은 시적 화자가 겪는 삶의 상처와 고통이 제주의 역사문화와 사회생태의 풍요로운 시적 재현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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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치르기 좋은 넓은 마당이었다 팥죽 있던 솥에 돼지고기를 삶고 창고 정리해 조문객 받을 준비를 했다 상집에 몰려드는 귀신들이 시끄러운 소리에 달아나야 한다며 멍석을 펴고 윷판을 벌이고 술상도 차려졌다 돼지고기 익는 냄새에 보채며 마당을 뛰어다니며 우는 아이를 몰래 불러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어 주며 무 써는 칼질 소리, 그릇 세는 소리, 설거지 소리로 여자들은 울었다 밤새 마당에 불이 켜졌고 손을 새까맣고 보리는 누렇게 여물어 조등처럼 환했다 ― 「보리 익을 때면 멜 철이다」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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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있다/걱정이 있어 전복죽을 끓인다//(중략)//걱정이 있어/걱정이 주는 사랑 있어/더 깊이 웅크리는 등이 있다/등도 표정이어서/등이 등에게만 보이는 시간//등이 등만 보고 지내는 시간에도/물옷 속의 맨살이 식지 않게/전복죽이 식지 않게/그릇을 두 손으로 감싼다 ― 「전복죽」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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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에 아무 데도 마음 쓰지 말고/게우젓만 생각해라 오늘 게우젓/만드는 법을 잘 보고/마음 빈 자리에 넣어라/바닷속에서 숨은 참아도/아픈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은 못 참아/물을 삼켜 코가 찢어질 듯 아프고/눈앞이 캄캄할 때/게우젓 먹일 욕심으로 물 밖으로 나온다며/울먹이며 입안에 넣어 주려다 엄마는 자기 입에 먼저 넣는다 ― 「게우젓」 부분 |
도시화가 가속화된 현실 속에서 제주의 전통 장례 풍속은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그런데 젊은 시인의 기억 속 어딘가 장례 풍속의 한 장면이 오롯이 남아 있다.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해 상가(喪家)에 모여든 제주 사람들은 윷판과 술상과 삶은 돼지고기 냄새와 장례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들과 곡소리 등 한바탕 속에서 제주 사람들 방식으로 슬퍼하고 슬픔을 서로 위무하고 그것을 이렇게 통과한다(「보리 익을 때면 멜 철이다」). 그런가 하면, 말 못할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그것을 함께 하기 위해 해녀는 말없이 등만 보이며 전복죽을 끓인다. 전복죽이 행여 식을까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안은 온기(溫氣)는 걱정의 깊이를 낮춰줄 것이다(「전복죽」). 그리고 아픈 자식을 “먹일 욕심으로” 전복 내장을 ‘게우젓’ 만들어 먹이고 싶은 해녀는 ‘게우젓 맛’이 얼마나 일품인지 “자기 입에 먼저 넣”고 만다. 이것을 두고 신조어 ‘웃프다’고 할까. ‘게우젓’은 이처럼 제주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웃픔’으로 어루만져줄 수 있을 만큼 영험한(?) 토착 음식이다(「게우젓」).
시집을 덮으며, 허유미 시인의 제주와 제주 바다를 향한 ‘단단한 울음–노래’의 이명(耳鳴)이 애오라지 가시지 않는다. 제주어로 ‘요망진(야무지고 당차면서도 총명한)’에 값하는 젊은 시인의 시 세계에 모처럼 흠뻑 취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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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바다에 슬픔을 던져도/의심을 던져도 송곳을 던져도/네가 겪을 바다는 너를 겪을 바다는/고여 있는 순간이 없다/바다는 바다일 뿐/바다 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 「수평선으로 가자」 부분 |
고명철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감응과 교응―‘또 다른 세계’를 향한 시적 응전》, 《세계문학, 그 너머》, 《문학의 중력》,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