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성가족연구원 "탐라광장 여성친화적 공간 조성해야"

제주시 산지천 일대 탐라문화광장 조성을 위해 기존의 시설물들을 허무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시 산지천 일대 탐라문화광장 조성을 위해 기존의 시설물들을 허무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집창촌'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제주시 옛 동문로터리 산지천 일대의 성매매 행위가 여전히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제주도정이 약 600여억원을 들여 '탐라문화광장'을 조성했지만, 더 은밀한 불법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이화진 연구위원은 최근 '제주지역 성매매 집결지 실태와 여성친화적 공간조성 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 연구는 오랫동안 성매매 집결지였던 산지천 주변 지역 실태파악과 지역 활성화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수행된 것으로, 지역주민을 비롯한 성매매 관련분야 담당자의 면접조사, 최근 도시재생 차원에서 성매매집결지 폐쇄를 추진한 타 지역 현장조사 결과 등에 대한 분석이 이뤄졌다.

행정구역상으로 제주시 건입동과 일도동의 경계에 위치한 산지천은 1960년대 관광 진흥사업과 함께 성매매 집결지로 자리잡았다. 당시에는 '성매매 관광' 역시 법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관리돼 왔다.

산지천은 비행기가 교통수단으로 대중화되기 전 제주와 타 지역을 연결하는 거대 관문 중의 한 곳이었고, 제주의 입법·사법·행정이 집중됐던 관덕정 인근에 위치해 있어 성매매 집결지 생성과 관리가 용이하다는 장점이 융합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70~198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제주를 국제관광지로 조성한다는 미명하에 지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성매매가 더욱 성행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제주지역에서 성매매를 알선하는 사업체 수는 전국에서도 인구대비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산지천은 원도심 쇠퇴와 맞물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2006년부터 급격한 변화를 맞았다. '특수업태부'라는 명칭으로 관리되던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특별법 시행 전후로 91명에서 51명으로 줄었다.

성매매 행위가 음지로 숨어들며 이에 따른 부작용도 발생했다. 성매매 여성들은 수백만원의 선금을 치르고 '직업소개소' 경유로 들어온 여성들이 상당수였고, 일부 여성은 업주가 직접 타 지방 집결지에서 데려오기도 했다. 이렇게 산지천에 진입한 여성들은 소개비와 교통여비까지 부채로 떠안아야 했다.

심지어 성매매로 유입된 여성들은 성매매 알선모임인 일명 '백합회'를 만들어 조직화 해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백합회 회원들은 선불금이 300만원 이상의 성매매 여성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여성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활동을 벌인 경우가 있었다고 조사됐다.

보고서는 2019년 현재 산지천 성매매 여성의 수가 20여명 안팎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탐라문화광장 조성 이전 산지천 성매매 집결지는 여관, 여인숙, 민박 등 주로 숙박업소 형태로 퍼져 있었던 반면, 민원과 단속이 심해지면서 업소에서 숙식하며 성매매하는 여성 수는 감소했고, 인근 자취집에 기거하면서 전화로 호출받아 해당 여인숙 등으로 출퇴근하는 여성이 증가한 것으로 봤다.

연구원은 "현재 여성들 일부는 아직도 선불금 정리를 못한 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고, 지금은 간판 없이 가정집에서 성매매를 하는 곳들이 생기기까지 했다"며 "성매매집결지의 존재는 남성 중심의 권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여성폭력의 온상이며 가부장제 질서에 의한 사회적 통념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법적으로 성매매 여성의 강제관리 필요성을 절대적이라 언급하며 관리행정의 지침을 만들어 실행했으나 실제 많은 한계가 드러났다"며 "성매매 여성의 삶을 옥죄는 빚은 해결되지 못했고, 도시개발 과정에서도 성매매 여성의 인권과 생존권은 정책에서 배제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구원은 "성매매방지법에 의거 선불금 등 해결을 위한 민형사상의 지원과 탈성매매를 위한 생계 대안을 제도적으로 마련함은 물론 여성 인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인식개선 방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연구원은 성매매 집결지에서 현재는 '여성 친화공간'으로 거듭난 전주시 선미촌, 아산시 장미마을, 대구시 자갈마당 등을 예시로 들며 탐라문화광장에 여성친화 공간 조성을 위한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성매매 여성의 탈성매매와 자활 지원 확대를 위한 조례 개정 △산지천 주변 환경개선 사업 추진 △탐라문화광장 및 북수구광장 상설 프로그램 운영 △산지천 지역 여성 역사자원을 연계한 문화콘텐츠 개발 △젠더 거버넌스 허브 공간 구축 △주민참여형 공공시설 설치 등을 포함한 지역환경 정비 △유관 기관간 연계 및 협력과 콘트롤타워 설치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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