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창옥 부의장 별세…28일 오전 9시 의사당 앞에서 제주도의회․농민장(葬) 영결식 엄수

제주지역 농민운동과 진보정치에 한 획을 그은 큰 별이 졌다.

암과 사투를 벌이던 허창옥 제주도의회 부의장이 23일 밤 10시35분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도민들 곁을 떠났다. 향년 56세.

故 허창옥 부의장은 제주 농업․농촌․농민들에게는 등불과 같은 존재였다. 대정초-대정중-대정고, 제주한라대학을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농민운동에 투신했다.

1987년 제주에서 처음 만들어진 대정농민회 창립멤버로, 故 이야성 초대회장과 함께 제주지역 농민운동을 이끌었다. 이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으로 실무를 맡아오다 제주도연맹 의장(2010년), 전농 부의장(2011년)까지 역임했다.

허 부의장의 아내 김옥임씨 역시 여성농민운동 1세대로 지난 2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에 당선돼 활동하고 있다.

진보 깃발을 들고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정치의 벽은 높았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농민후보로 출마했지만 고향 후배인 문대림 현 JDC 이사장에게 아쉽게 패배했다.

기회는 뜻 밖에 찾아왔다. 2012년 당시 문대림 의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의원배지를 내놓으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도청 국장 출신을 65표 차이로 누르며 드라마틱한 역전승을 거두고 9대 의회에 입성했다.

통합진보당이 분열되자 허 부의장은 2014년 무소속으로 출마해 새누리당 후보를 2867표 차이로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1299표 차이로 낙승하며 3선 고지에 올랐고, 11대 의회 전반기 부의장에 선출됐다.

도의회에 입성한 뒤에는 농업 등 1차산업 다루는 농수축경제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했고, FTA대응특위 발족을 주도해 WTO와 FTA 등으로 위기에 놓인 제주농업 보호를 위해 혼신을 다했다.

최근에는 고향인 송악산 개발 반대 목소리를 내왔고, 지난 2월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추진하는 첨단농식품단지 사업이 농업인들의 요구나 동의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JDC가 또다른 방식으로 땅장사를 하고 있다고 각을 세우기도 했다. 아쉽게도 이 논평이 그의 마지막, 공식활동이 되어 버렸다.

의정활동에 임하면서는 늘 진지하면서도 열정이 넘쳤고, 공직자들에게는 추상과 같은 존재였다. 집행부 견제라는 본연의 역할 때문에 목소리를 높일 때가 많았지만 직접 농사를 짓는 입장에서 나오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에 공무원들조차 쩔쩔 매기 일쑤였다.

이러한 활발한 의정활동은 각종 수상실적으로 이어졌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주관한 동료의원·공직자들이 뽑은 ‘Best of Best 의원’ 상임위원회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대한민국 위민의정대상 단체부문(FTA대응특위) 우수상,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주관한 제4회 우수의정대상 등을 수상했다.

고인을 아는 지인들은 한결 같이 “매사 진지하면서도 참 정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고충홍 전 의장은 “고인은 성실하면서도 소신이 있고, 매사에 열정적이어서 정말 믿음이 가는 분이었다”며 “농민을 위한 마음, 진정성에 바탕을 둔 의정활동은 정말 모범이었다”고 말했다.

SNS 등에서도 추모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허 부의장과 9대 의회에서 의정활동을 같이 했던 박주희 전 도의원은 “늘 농민과 약자의 편에서, 또 미래의 제주도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높이 내셨고, 그 목소리에는 언제나 진심과 열정이 가득했다”고 썼고, 필명 바람소리 님은 “사람냄새 나는 소탈한 분으로 기억한다. 너무 일찍 가서 애통하다”는 글을 남겼다.

제주녹색당은 24일 조사(弔詞)를 통해 “지난해 9월 도내 대규모사업장의 행정사무조사 요구서를 발의하는 등 도정 견제와 난개발 문제 부각에 앞장섰던 도의원으로 기억한다. 고통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드시라”고 추모했다.

한편 故 허창옥 부의장의 장례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농민장(葬)으로 엄수된다. 28일 오전 9시 의사당 앞에서 진행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양지공원에서 화장한 후 제주시 천주교 황사평 성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빈소는 대정 상모가든에 마련됐고, 조문은 25일부터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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