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양윤경 시장 31일 기자 간담회...작품 가린 이유 “공연 때문” 

서귀포시가 제주4.3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작가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가리는, 사실상의 검열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왼쪽은 서귀포시에 의해 연미 작가의 작품이 가려진 모습(붉은 색 원), 오른쪽은 양윤경 시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귀포시가 제주4.3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작가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가리는, 사실상의 검열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왼쪽은 서귀포시에 의해 연미 작가의 작품이 가려진 모습(붉은 색 원), 오른쪽은 양윤경 시장.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귀포시가 제주4.3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작가 동의 없이 무단으로 가리는, 사실상의 검열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공연 배경 때문에 작품을 가렸다’고 석연치 않은 해명을 남기면서 진화에 급급하다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양윤경 서귀포시장은 31일 오전 시청 기자실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제주의소리]가 지난 24일 보도한 작품 검열 논란 기사( 부끄러운 서귀포시, 문화도시 기획전 4.3작품 '검열' 논란 )에 대해 “연미 작가와 관계자들께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전시 개막식에서 작품이 가려진지 15일, 작가와 기획자가 입장문을 서귀포시에 전달한지 10일 만이다.

서귀포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문화도시’ 사업을 준비하면서 10월 16일부터 11월 17일까지 기획전 ‘노지문화’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16일 개막식에서 연미 작가의 4.3출품작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복합 재료, 211x170cm)를 흰색 천으로 보이지 않게 가렸다. ‘노지가 미래다!’라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이었다. 작가의 동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작품 노출을 차단하는 ‘사전 검열’을 벌인 셈이다. 

펼침막으로 가려진 이 작품은 4.3이 발발한 1948년부터 1990년대까지 매년 4월3일 제주에서 발행된 신문 1면을 모아 나열한 설치 작품이다. 제주에서 4.3을 어떻게 조명해왔는지의 변화 과정을 언론보도를 통해 가감없이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작가의 기획 의도가 담겼다. 

문제는 서귀포시 문화예술과 관계자가 21일 문체부 문화도시 심사위원들이 전시장을 찾는 동안 또다시 작품을 가리려고 하면서 터져나왔다. 개막식과 달리 심사 과정에서 '작품을 가리자'는 입장을 작가와 기획자에게 전달했다가 반발을 산 것. 더욱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부터 여러차례 서귀포시 관계자들이 4.3 작품에 대해 불편함을 제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와 작품 검열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노지문화 전시에 왜 4.3이냐?"란 지적에서부터 "제주4.3이 아니라 서귀포4.3이면 좋겠다", "신문 역시 서귀포에서 발행된 신문이면 좋겠다"는 취지의 1차원적이고 개념 없는 지적들을 공무원들이 잇따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연미 작가의 작품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가 정상적으로 전시된 모습.(붉은 색 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6일 전시 개막식에서 연미 작가의 작품이 천으로 가려진 모습.(붉은 색 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주민예총은 24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직 4.3 유족회장 출신인 서귀포시장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진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4.3 예술에 대한 몰이해와 시대착오적 문화행정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상황에서 ‘문화도시’ 지정이 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매섭게 비판했다. 

양 시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전시 과정에서 연미 작가의 작품이 작가의 사전 동의 없이 가려진 일이 있었다. 이는 행사준비 과정에서 문화예술 작품에 대한 행정의 이해도 부족으로 발생한 일이다. 이 점 연미 작가분과 관계자들께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유감'이란 표현을 빌려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혔다.

양 시장은 또,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서귀포시는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가 존중되고 예술가가 존중될 수 있는 문화 행정의 기반을 만들도록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애초 전시기획서 상에서 4.3 소재로 작업하는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며 “제주4.3을 다뤘다는 이유로 작품을 가리거나 검열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며 출품 작가나 기획자의 반발 이유와 전혀 다른 답변을 내놓아 '진실공방'까지 자초했다.

사실상의 사과로 읽힐 수 있는 '유감' 표명을 하면서도, 궁색한 변명을 덧붙여 사실관계를 덮으려한다는 또다른 논란을 부르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양승열 서귀포시 문화예술과장은 31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왜 작품을 가렸냐’는 질문에 “개막 공연이 열린 장소가 좁은 복도라서 동선을 고려하면서 적절한 배경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천(펼침막)을 설치해 작품을 가리게 됐다. 작품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공연에 알맞은 배경을 고르다보니 본의 아니게 작품을 가리게 됐고, 알고 보니 그 작품이 4.3 작품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서귀포시가 준비한 펼침막이 연미 작가의 작품만 정확하게 가리는 크기인데다, 시청 직원들이 전시에 앞서 4.3에 대해 불편한 입장을 밝혔다는 점을 고려할 때 궁색한 변명이란 비판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특히 거듭해서 작품을 가리겠다고 요청한 점은 “전시장인 시민회관 뿐만 아니라 다른 행사 장소(소라의 성)에서도 천이나 햇빛 가리개를 설치할 예정이었는데 실무자가 잘못 이해한 것 같다. 고의는 아니었다”고 책임을 다른 직원에게 돌렸다.

문화관광체육국장이나 문화도시센터장 등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전시를 점검하는 자리에서까지 4.3 작품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4.3 70주년도 지났으니 그런 성과를 반영해서 전시하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고 해명했다.

한편, 검열 사태의 직접 피해자인 연미 작가는 이날 본인 SNS에 “예술가의 작품을 검열한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했던 서귀포시가 공개사과한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서귀포시가 모든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며 “앞으로 서귀포시와 서귀포 문화도시센터는 이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에서 4.3을 포함한 일상적 검열에 대한 논의를 통해 문화예술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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