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제자리걸음인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대하여 

도민 여러분께 사죄를 구해야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왜냐고요. 그건 제가 지난 3년 동안 제주도 행정계층구조개편위원회의 위원을 맡아 나름대로 애를 썼지만, 아무런 성과 없이 위원회 참석 수당만 받아 챙긴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년 전에는 아쉬운 대로 시장직선제라도 어떻게든 도입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나마도 정치권의 정략적 이해관계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왜 이제야 이렇게 뒤늦게 다 지난 얘기를 다시 꺼내게 된 이유는, 오늘(19일) 하나의 기사를 접하면서 무언가 얘기를 하지 않고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첫째, 오늘(19일) 제주도가 ‘행정시 권한강화 및 기능 개선 방안’의 후속조치이행을 위한 실행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아직도 계획 중입니다, 뭐 하나 하는 것 없이 말입니다. 아, 하나도 없다는 것은 좀 그렇고요. 4년 전 어떻게든 행정계층구조를 개편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이후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로드맵 제시에 머물고 있습니다.

‘올 10월까지 조례와 지침 개정, 이행계획 수립 등을 통해 후속조치를 마치고 하반기부터 전면 시행할 방침’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이렇게 우근민 도정에서는 무엇 하나 눈에 딱 띠는 그럴듯한 시행은 없이 그렇게 맨 날 논의하고 계획하느라 4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한심합니다. 여기에 제가 위원으로서 일조를 한 것이라는 부끄러움과 죄송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용서를 빕니다. 

둘째, 제주도는 ‘재원조정교부금 제도 도입에 따른 용역을 2월 중 전문기관에 의뢰, 항목별 지표 및 조정율 산정기준을 개발하고 다음해 예산편성지침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합니다. 그저 입만 열면 용역입니다. 다만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이어 해정시장 권한 강화를 용역하고 이번에는 재원조정교부금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 하는 차이입니다. 누군가에게 용역을 주어서 이를 토대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고 하는 도정을 보면서, 참 행정하기 편하다는 생각입니다.

애초에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면 끝까지 이를 추진하려는 노력이나 의지는 온데 간데 없습니다. 그저 도 예산을 갖고 이런 저런 명목과 이름으로 용역하는 데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다음 도정에서는 1년 단위 용역 총액제를 도입하여 도가 돈만 보이면 용역에 쓰려는 안일과 낭비를 과감히 견제하고 고쳐나가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다 제가 위원으로 있으면서 돈만 받아 먹고 성과는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책과 죄송스러움에 도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합니다’고 용서를 빌게 된 사유입니다.  

셋째, 제주도는 ‘(가칭) 행정시 권한강화 및 기능개선 지원위원회를 7월까지 구성, 향후 행정시 권한강화와 기능개선과제 발굴과 이양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제주도가 화끈하게 제주시와 사귀포시에 권한을 넘겨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지원위원회를 7월까지 구성한다고 하는 발표를 들으면서 오늘부터 100일간 지방선거가 본격화되는 시점인데 무슨 지원위원회 운운하는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번에는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사죄하면서, 그 동안의 추진과정을 면밀히 검토하여 다음 도정에서는 이런 저런 방식의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추진해 나가면 좋을 것이라는 제언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도의회의 반대 때문에 못했다고 하면서 그냥 없던 일로 하는 것은 그동안 쓴 돈과 시간 그리고 노고가 아깝지 않습니까. 여기서 문득 언제부터 제주도정이 그렇게 도의회의 말을 잘 듣게 되었는지 의구심이 들면서, 동시에 앞으로 남은 4개월간이라도 그렇게 도의회의 말을 잘 듣는 제주도정이 되길 기원해마지 않습니다.

풀뿌리 주민자치의 민주주의 여망과 도민의 요구를 막무가내로 하고 도와 도의회가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시나리오처럼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없던 일로 해 나간 지난 4년을 지켜보면서 제주도정은 물론이고 새누리와 민주 양당의 정치게임에 대해 분노와 실망을 금치 못합니다.

앞에서 이미 행정계층구조 개편과 관련해서 하는 것 없이 시간과 돈만 축낸 우근민 도정에 대해 비판을 가한 바 있기에 이번에는 특히 민주당의 오락가락과 정치공학적 무분별에 대해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은 괜찮다는 게 아닙니다. 새누리당은 처음부터 행정계층구조 개편을 반대한 정당이기에 굳이 이 아까운 지면을 할애하면서까지 이에 대해 왈가불가할 가치도 느끼지 않을 따름입니다. 

민주당은 도의회 다수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희수 의장과 고희범 전 민주당 도당위원장이 행정시장직선제를 끝까지 반대함으로해서 반쪽이나마 행정계층구조 개편이 이루어지 않은 데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전부 아니면 무’라는 접근방식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최선책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하지 않을 요량이라면 그냥 현행 행정시 체제로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정당정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지사의 마음먹기에 따른 시한부의 임명직 시장과 그래도 4년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시장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행정시장 직선제를 무산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민주당 지도부의 정치적 계산이 무언지 정말 알기가 어렵습니다. 

무릇 정당은 선거로 먹고 삽니다. 아마도 선거가 없다면 정당은 그냥 뜻을 같이 하는 동호회나 친목회에 머물 겁니다. 국가가 그 없는 예산을 쪼개어 보조금 주면서 정당을 키우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는 선거민주주의의 대의를 신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당은 어떻게 해서든 임명직을 줄이고 선출직을 늘려 공직자의 임면에 주민의 의사가 가능하면 많이 반영하도록 애쓸 책무를 집니다. 그렇다면 더욱이 당명이 민주당이라면 더욱 더 임명직 시장이 아니라 선출직 시장을 만드는 데 노력하여야 하는 데, 민주당 제주도당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굴러온 호박을 발로 차버린 것입니다. 오늘처럼 행정시장 권한 강화 운운하는 기사를 보는 날이면 더욱 화가 납니다. 

1년 전에 무언가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주도와 도의회가 손을 잡고 행정시장 직선제를 관철하였다면 지금쯤은 도지사와 교육감 그리고 도의원 외에도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에 출마하여 제주지역 사회에 봉사하려는 풀뿌리 일꾼이 최소한 10명 이상이 열심히 제주 곳곳을 누비고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세 개 나가지 못한 우근민 도정과 이를 발목 잡아 버린 도의회의 민주당 그리고 이렇게 도-도의회간의 삽바싸움을 즐기기만 하면서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도의회의 새누리당에게 또 다시 제주도를 맡겨도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제가 한때는 지지를 표했던 민주당이기에 묻고 싶습니다. 행정시장 직선제를 반대한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우근민 도정이 꼼수로 행정시장 직선제를 밀어붙이고 있어서 반대한다고 듣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우근민 도정에게는 행정시장 직선제 실천이 어떤 정치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행정시장 직선제가 도민에게 이익이 되면 찬성해야 되는 게 아닐까요. 물론 도민에게 손해가 되면 반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들은 바는 우근민 지사가 하니까 반대한다는 것인데, 정치를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요?
 
마지막으로 행정계층구조 개편과 관련하여 제주도 국회의원 3인에게도 이를 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작년 도와 도의회가 서로 으르렁 싸우고 있을 때 3인의 민주당 국회원 분들은 이를 남의 일인양 구경만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행정계층구조개편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제주도정 관계자한테 국회의원에게도 부탁하여 도움을 받아보시라 건의했지만 거의 마이동풍이었습니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도의회가 반대하면 국회의원 한테 도움을 청하면 되는데, 왜 하지 않는지 아직도 그 내막을 알 수가 없습니다. 비공식으로 도움을 청해도 국회의원들이 안 들어 준 것인지 아니면 우근민 도정도 행정시장 직선제를 꼭 할 생각이 없는데 마치 도의회가 반대하니 그냥 안하는 걸로 덮어버린 것인지 그 자세한 실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어떻든 그렇게 도와 도의회가 의견 조율이 안 될 때 국회의원으로서 한마디 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아쉬움은 큽니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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